어릴 적 나는 정말 자유롭게 자랐다. 자유로움을 기준으로 줄을 세운다면, 어느 그룹에 끼든 상위권에 속하리라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로웠다.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되어 그랬던 것은 절대 아니다. 10대가 되기 전까지 살았던 집은 달동네 꼭대기에 있는, 천장이 무너져 내린 아주 열악한 환경의 집이었다.
그럼에도 당당히 자유로웠다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홀로 나와 오빠를 키운 엄마의 교육 방침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고, 하기 싫은 건 하지 않게 해주었다.
그 당시 내 또래 아이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올바른 정신 수양을 위해 태권도 학원도 다니고, 조금 더 컸을 땐 피아노 학원도 다녔다. 지금은 악기 연주하는 걸 사랑하지만 그때는 피아노에 영 흥미가 없었다. 피아노 학원에서는 포도였는지 다른 과일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꼭 한 곡을 다 연습하고 나서 체크 표시를 해야 했다. 그리고 되바라진 나는 늘 한 곡 연습과 나의 감정적 상황을 덧붙여 한번에 3~5개를 연필로 칠하곤 했다. 어린 나는 내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바깥에 있는 선생님께도 들린다는 사실을 몰랐다.
연습 안 한 것을 다 아는데 다 했다고 연습 노트를 들고 나오니 선생님은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크게 혼냈다. 결국 관심도 없고 하기도 싫고 맨날 혼나는 학원보다 바깥에서 친구들이랑 노는 게 훨씬 재밌다고 생각한 나는 약 2주간 무단으로 학원을 가지 않았다.
그 2주가 지난 후에야 내가 학원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마지막으로 학원에 같이 간 날,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꾸짖지도, 더 다니라고 다시 학원에 밀어 넣지도 않고 바로 그만두게 해주었다. 그때 된통 혼날 거라 생각했다가 혼나지 않아서 그런지 이 기억은 유독 나에게 생생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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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쯤에는 사춘기가 찾아온 건지 머릿속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나는 그 복잡함과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별안간 가출을 결심했다. 내 계획은 3일 정도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고, 그 와중에 엄마가 걱정하실까 마음이 쓰여 편지도 알차게 써놓고 나왔다.
그날 저녁 즈음, 그 시간까지 같이 놀 수 있었던 친구 몇 명과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보통의 가출 청소년이라면 전화를 피했겠지만, 난 왜인지 그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가출' 하고 싶다는 의견을 다시 한번 피력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어디서 잘 건지도 말했던 것 같다.
엄마는 가출을 허락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단 연락이 닿은 데다, 어디서 잘 건지, 어느 정도 놔두면 다시 돌아올 건지 술술 말해주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신 것 같다. 그러니까 사실, 이건 가출에 대한 허락이 아니라 3박 4일 외박에 대한 허락에 가까웠다.
엄마의 이런 '풀어주는' 교육 방식은 무척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내 상황과 생각을 이야기하면 분명히 내 편을 들어줄 거라는, 내 입장을 이해해줄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엄마에게 늘 솔직하게 말했다. 그게 가장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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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로라할 자유로움을 누리며 자란 나는 어느새 국가에서 인정하는 성인이 되었다. 그냥 성인도 아니고, 일찍이 사회생활을 시작해 '경제적 자유'를 가진 성인이었다. 한평생 비(非) 자유라곤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 경제적 기반까지 얻었다니, 얼마나 두려울 게 없었을까.
사회생활과 더불어 곧바로 자취를 시작한 나는 일상의 모든 선택을 본능에 따라 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말 그대로 '내 맘대로' 사는 삶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매일 잠들기 전이면 그 이유가 불분명한 우울감이 찾아왔다. 무한한 자유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날 망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그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았다. 나의 성격을 탓하고, 나의 외모를 탓하고, 나의 게으름을 탓하고, 나 하나 건사할 손재주도, 능력도, 지식도 없는 것을 탓했다.
근본부터 잘못 파악했으니 그다음 날이 더 나을 리도 없었다. 또 비슷한 하루를 보내다 잠들기 전이면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자괴감에 빠져들고,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일 년··· 무수히 많은 날들을 덧없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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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면 오히려 몸과 정신 상태가 흐트러진다는 것을, 어느 정도 '통제'되는 '자유'가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매일 '나'의 무분별한 자유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밤낮이 바뀌지 않은 생활을 하기 위해서, 삼시세끼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위해서, 적당한 에너지 섭취와 소모를 위해서, 내가 아는 정상적인 사람들의 삶과 비슷하게 살기 위해서···
별 짓을 다 해본 것 같다. 계획과 목표를 세우는데 수 천장의 이면지를 쓰고, 남들이 하는 효과 좋은 방법을 참고하고, 또 그들이 쓰는 플래너 양식을 베껴 써보고, 좋은 습관을 무작정 따라 해보기도 하고··· 나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효과는 늘 미미하거나 현실과 멀거나 지속적이지 못했다. '나'에게 맞는 방법이 아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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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스스로에게 상벌을 주기도 해 봤다. 무언가 목표한 바를 이루면 보상해주고, 그와 반대로 완료해내지 못하면 피해를 입혔다. 그 보상과 피해는 늘 '돈'이었는데, 내가 숨 쉬며 하는 모든 활동의 기반인 '돈'만이 나에게 보상과 피해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돈이 '내 돈'이라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이 상금을 걸고 "네가 잘하면 이만큼 줄게", "네가 못하면 이거 받을 기회를 날리는 거야"라고 유혹해주었다면 더욱 쉬웠을 텐데, 나에겐 나의 성취에 상금을 걸어줄 이가 없었다. 오직 내 통장에 있는 내 돈만 쥐고 풀 수 있었다.
그렇게 상도 벌도 내가 직접 주다 보니, 늘상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어차피 다 내 돈인데"하는 의구심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정해놓은 활동을 하기 싫을 때면 더욱 그랬고, 결국 이걸론 아무런 동기부여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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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난리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 때, 이미 하고 싶은 건 거의 다 하던 나에게 보상 제도는 무의미했고, 최후의 수단으로 "이걸 안 하면 큰일 난다"는 겁을 주고 싶었지만 그 무기로는 여전히 '돈' 밖에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었다.
매 순간 발전하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마음속에 그득했지만서도, 애써 "다들 나처럼 하찮게 사는 것 같네, 뭐"라며 즐겁지 않은 삶을 즐겁게 살고 있다고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날 겁주는 무기를 바꿔 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강력한 힘인 '돈'마저 통제하지 못한 나의 무분별한 자유를 아주 의외의 것이 막아냈다. 그것은 바로 '실재하지 않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