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 통제하기

by 구천개의 생각


일상은 수많은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은 일'과 '안 해야 하는데 계속하게 되는 일'로 가득 차있다. 이 행동들은 그것을 하는 순간에는 편하지만, 반복적으로 할 경우 '무기력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늘 의식적으로 경계해야 한다.


아기가 먹고 싶어 하는 단 음식을 모두 먹이고, 아기가 만지고 싶어 하는 위험한 물건을 다 만지게 해주는 것이 어른의 도리가 아니듯이, 내가 그 순간 원한다는 이유로 모두 허용해주는 것 또한 '나'의 베이비시터로서 지킬 도리가 아니다.


보호자가 아기의 나쁜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저 이모/삼촌이 이놈~!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는 내가 지양해야 할 행동을 할 때마다 나만의 호환마마를 불러왔다. 그것은 실재하지도 않고 물리적인 힘을 가진 것도 아니었지만, 겁주기용으로는 아주 효과적이었다.





해야 하는 일을 안 하게 되는 경우 - 더 싫은 선택지 제시하기


이이제이(以夷制夷) :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는 뜻으로, 어떤 적을 이용하여 다른 적을 제어함을 이르는 말


나와 같은 세대에게 오랑캐로 다른 오랑캐를 쳐본 적 있느냐고 물어보면 아마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았다가 별안간 청소를 시작해본 경험이 있느냐 물어보면 100명 중 98명은 해본 적 있다고 답할 것이다.


청소 거리가 있다는 것은 그동안 '청소'도 꽤 나쁜 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눈앞에 '공부'라는 더 나쁜 놈이 나타나면 '청소'는 더 이상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니게 된다. 결국 나는 '청소'와 손잡고 '공부'에게 대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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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것을 역이용하기로 했다. 애초에 '해야 할 일'을 플랜 B로 포지셔닝하는 것이다.


방법은 이렇다. 첫 번째로, 딱 2가지의 선택지만 제시하는데, 기존에는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은 A'와 '하기 싫지만 A보단 덜 싫은 B'를 제시했다면, 이번에는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은 A'와 'A보다 더 싫은 B'을 제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시간제한'이라는 조건을 붙인다. 예를 들어 지금이 1시 42분이라면, 아주 가까운 시간인 2시 내에 이 활동을 시작하게끔 상상 속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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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법 또한 "그래서 어쩌자고?"라는 반문에서 시작된다. 보통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때, 온전히 쉬는 것도 안 쉬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만 반복하게 되는데, 그 생각의 멱살을 잡고 "그래서 뭐 어쩌자고? 계속 고민하고 있어 봤자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n시 n분에 이거 시작하지 않으면 B를 해야 해!"라고 엄포를 놓아 빨리 해치우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A의 자리에 '집에서 과제하는 것'이 있을 때, B의 자리에 '스터디 카페에 가서 과제하는 것'을 집어넣었다. 사람이 바깥에 나갈 때 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을 싫어하는 나에게 "n시 n분까지 과제를 시작하지 않으면 바로 스터디 카페에 가는 거다"라고 선전포고를 하면, 호환마마 같은 샤워와 옷 입기, 짐 챙기기가 무서워져 바로 책상에 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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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B의 자리에 '더 싫어하는 일'이 아닌 '또 다른 해야 할 일'을 집어넣는 것도 좋다. 나는 이 방법을 무지 피곤한데도 쉽게 잠들지 못할 때 자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잠자리에 누운 지 1~2시간이 지났는데도, 눈을 감고 자려고 노력해봤는데도 자꾸 잡생각이 들고 계속 핸드폰을 집어 들게 되면, 그때 시간을 기점으로 하여 30분 단위로 "이 시간까지 안 자면 그냥 일어나서 ○○을 하자"라고 결심한다. 그 시점이 1시 16분이면 1시 30분을, 1시 38분이면 2시를 기준으로 하는 식이다.


보통 이 정도 상황에 다다르면 결국 일어나 앉는 경우가 많다. 이 다짐 후에 눈을 감아도, 또다시 "아니 근데"로 시작하는 말들이 번뜩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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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법에는 "네가 아직 덜 졸리구나. 더 피곤하게 만들어주마!" 하며 나 자신을 괘씸해하는 마인드가 조금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만약 일어나게 되면 몸 쓰는 일, 머리 쓰는 일을 가리지 않고 한다. 어쨌든 남아있는 에너지를 쥐어짜서 다 써야 다시 누웠을 때 잠이 올 테니 말이다.


이 방법은 기나 긴 새벽 동안 '조금이라도 잘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딱 '지금 할 활동'만 생각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에너지 사용의 측면에서도, 시간 사용의 측면에서도 굉장히 효율적이다.


만약 1시까지 잠들지 못하고 있다면, A 활동을 하고 다시 누워서 잠을 청해보고, 그럼에도 또 잠이 오지 않으면 B 활동을 한 후에 다시 잠을 청해보고, 이후에 또 잠이 안 오면 다시 일어나 C 활동을 해보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새벽 1~2시에 잠들지 못할 때, 막연하게 "그냥 밤새자", "그냥 n시까지 자지 말자" 하는 것보다 시간을 알차게 쓸 수 있고, 여러 번 다시 잠들 기회를 받으니 잘만 하면 다음날에 쓸 에너지도 예상보다 많이 축적할 수 있게 된다.





안 해야 하는 일을 계속 하게 되는 경우 - '재수 없는 일'을 두려워 하기


현대인이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불로소득(不勞所得), 일확천금(一攫千金)의 기회는 로또나 복권에 달려있다. 나 또한 그 당첨 기회를 거머쥐길 간절히 바라며 구매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절대 "2등이라도 당첨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만약 실제로, 숫자 단 한 개의 차이로 운명이 갈라져 2등 당첨이 되어버리면 그 생각을 했던 순간을 깊이 후회할 것 같기 때문이다.


종교는 딱히 믿지 않아도 민속 신앙은 잘 믿는 한국인으로 태어나 그런 걸까. 본능적으로 '재수 없는 일'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것 같다. 뱀이 나타날까 무서워 밤에는 휘파람을 불지 않고, 문지방은 의식적으로 밟지 않고 건너며, 빨간색 펜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쓰는 일은 절대 없다.


솔직히 다 믿지도 않는다. 어릴 적 "밤에 휘파람 불지 마라. 뱀 나온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런 도시에서 뱀이 무슨 경로로 우리 집을 찾아 들어올까? 수로를 타고 오나?'였다. 그 당시에는 자그만 아파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현대 시설로 꾸려진 아파트 단지에 갑자기 뱀이 나타난다는 것이 무척 의아했다.


문지방을 밟으면 안 되는 이유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빨간색 펜으로 이름을 써도 그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왠지 이 행동들은 안 하게 된다. '재수 없을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늘 확실하고 확정된 것을 지향하는 나지만, 이런 상황에서 만큼은 불확실성에 목숨을 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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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해야 하는 일을 계속 하는 것은 매우 소박하면서도 일상을 뒤흔들 정도로 강력하다. 게다가 처리하기도 몹시 까다롭다. 그 이유는 첫째로 맨날 하고 있는 이 행동이 '안 해야 할 일'인지 알아채는 것부터 난항인 데다, 둘째로 중독성이 강하고 유혹적이라 헤어나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몇 개월 전,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 특정 구인구직 사이트에 매일같이 들어갔었다. 이 정도는 취준생으로서 그냥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싶지만, 사실 그게 바로 '안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왜냐면 그때 당시, 당장 구직이 필요했던 것도, 구직을 할 것도 아니었는데 하루에 꼭 두세 번씩 들어가 아이쇼핑하듯 공고 구경만 하다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이트의 주소를 눈 감고 입력할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들어갔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지역 직장 근황을 알고 취업 준비에 도움이 되었느냐? 그랬다면 문제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부동산 시세 알아보듯 "어떤 직장 공고가 올라오나?" 하고 잠깐 살펴보기만 하던 것이 날이 갈수록 내가 관심 가지는 직장에서 찾는 인재의 조건과 나의 조건을 비교하는 시간으로 변질되어 점점 내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말도 안 될 것 같지만 이런 재미없는 일도 중독성이 있었다. 나는 카지노 슬롯머신 앞에서 초점 없이 동전을 넣고 스틱을 내리는 도박중독자처럼, 매일 비슷한 공고만 올라오는 구인구직 사이트의 스크롤을 내리는 직장구경중독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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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않아도 될 시간에 불필요한 돈 걱정, 미래 걱정을 사서 하고 있기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져 이 행동을 금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즉시 특정 날짜를 정해 '이 날짜까지 이 구인구직 사이트에 접속하면 ○○ 하게 된다'는 문구를 크게 적어 자주 앉아있는 책상 앞에 붙였다. 그 내용은 돈을 뺏는다는 것도, 가지고 싶은 무언가를 못 산다는 내용도 아닌,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재수 없는 일'에 대한 내용이었다.


금세 다시 접속해도 할 말 없다며 별 기대 없이 적어둔 그 문구는 의외로 큰 효과를 냈다. 나름 중독이라고 초반에는 괜찮다가 하루 이틀 지나니 다시 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팽배해졌는데, 그때 눈앞에 크게 적어놓은 그 문구를 보면 "아이씨, 지금 들어갔다가 저게 현실이 되면 어떡해. 저 상황이 생기면 지금 이 순간을 무지 원망할 거다" 하며 바로 포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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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법의 포인트는 '일반 미신'이 아닌 '내가 두려워하는 상황'을 '세세하게' 적는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적은 내용은 '이 행동을 할 경우, 평생 무능력한 배우자 뒷바라지하며 산다'는 내용이었는데(새삼 이게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인가 싶어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현재 결혼할 생각도, 계획도, 같이 할 사람도 없지만 왠지 지금 이 행동을 하면 무슨 연유로든 미래에 저렇게 될 것만 같아서 꾹 참았다. 구인구직사이트 한번 안 들어가서 평생의 불행을 막을 수만 있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만약 회사 프로젝트를 n월 n일까지 끝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종이에 '이때까지 못 끝내면 빨간 펜으로 이름 써버릴 거야!'라고 적으면 "그래라"하며 우스워할 테지만, 야구팬인 특성을 살려 '이때까지 못 끝내면 올해 코리안시리즈 7차전에서 4실책 3병살로 우승 못한다'고 적으면 곧 죽어도 마감일 전에 일을 끝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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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하지 않는 일에 대한 두려움'은 맥가이버 칼처럼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나 나를 겁준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것은 끝이 뭉툭한 장난감 칼에 불과하다. 실제로 피해 입는 일도, 피해 입히는 일도 없다. 어릴 때 부모님이 종종 던지는 짓궂은 장난처럼, 그 순간에는 눈물 나게 무섭지만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없을 일에 지레 겁먹는 행동은 "쓸 데 없는 생각을 한다", "사서 걱정을 한다"는 말로 늘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 두려움을 발판 삼아 생산적인 일을 시작하고, 비생산적인 행위를 방지할 수 있다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가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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