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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정 Mar 01. 2022

오늘도 '갓생' 살아 버렸다.

취미로 돈 벌기<중학생 편-1>


17년도 도쿄 여행 시 찍은 사진


첫 용돈벌이 그리고 통장 개설

‘덕질’하면서 용돈벌이 하기

 

중학생 때는 아이돌을 좋아했다.

왜? 다들 사춘기 때는 본인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들으며 본인만의 세상에 빠져있지 않는가. 나 역시 그랬다.


어렸을 때 '덕질'이라는 건 노래를 듣고 가수의 컴백을 기다리고 컴백하면 무대를 보며 응원하고, 그들의 스티커를 사서 다이어리에 붙이는 정도였다. 어린 나이에 비싼 콘서트는 무리였기 때문에 딱 여기까지였다. 그래도 행복했으니 된 거 아닌가?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이 사람... 왜 갑자기 덕질한 이야기야?'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덕질 이야기를 꺼낸 궁극적인 이유는 덕질을 하면서도 소소한 용돈벌이를 할 수 있었던 경험이 있어 그 이야기 하고 싶어서다.


지금부터는 어린애가 어떻게 '덕질'로 돈을 벌었는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중학생, 첫 용돈을 벌어보다.


연예인 스티커는 문구점에서도 판매했지만, 팬들이 *비공식 굿즈로 스티커를 만들어 중고나라나 블로그에 판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식 굿즈도 있었지만, 공식 굿즈보다는 팬들이 판매하는 스티커가 더 예뻤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소속사보다는 팬들이 애정을 가지고 만들었으니까.

(*비공식 굿즈: 팬들이 만들어 판매하는 것. 반대의 개념으로 공식 굿즈가 있다. 공식 굿즈는 소속사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것.)


하루는 중고나라에서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스티커를 사기 위해 둘러보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스티커 판매가 질려서 싼 가격에 모두 양도하려고 한다.'라고 올리는 사람들의 글을 봤다.

나는 그 글들을 보고 '저 스티커들을 내가 양도받아서 팔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나는 충동적으로 스티커 판매자에게 스티커를 구입하겠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입금 후 배송이 오기를 기다렸다.


두 번째 발견한 글은, '000 포스터 종류별로 구매합니다.' 같은 글이었다.

문득, '아이돌을 덕질하는 사람들이 본인이 얻지 못하는 물품들을 얻길 원하는데 그런 물품들을 구해다 중고나라에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구해서 팔아야겠다!"였다.


저 사람들이 원하는 아이돌의 브로마이드 외 물품들은 어떻게 얻어낼까? 고민하다가 결국 발로 뛰기로 했다.


아이돌이나 배우가 광고한 브랜드의 가게를 가면 책자나 브로마이드, 등신대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시즌이 바뀌거나 신상품이 나오면 바뀌게 되는데 그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서 필요 없게 되면 꼭 저에게 연락해서 달라고 부탁드려놓고 연락이 오면 모두 쓸어왔다.

동생들이 옷이나 신발을 사거나 교복을 사면 꼭 따라가서 광고 모델인 연예인 물품들을 모두 받아왔다. 동생들이 사은품으로 받은 굿즈도 받았다. 뺏은 건 아니다. 동생들은 이런 곳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받아도 방치하다가 언젠가는 버릴 것들이었다.


"윤정이가 아이돌 브로마이드나 그런 거 받아서 판대."

"그게 돈이 돼?"

"몰라. 그런 가봐."


이모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이모부가 힘을 보태주셨다. 이모부네 회사가 주류회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주류 광고한 아이돌이나 연예인 브로마이드를 달라고 부탁해 얻어냈다.


"이런 것도 괜찮니?"


네. 괜찮아요. 다 주세요. 이모부가 주신 브로마이드는 굉장히 많았다. 게다가 인기 연예인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통장만들기


자!! 이제 판매할 물건들은 다 준비 됐다!! 이제 판매를 해야 한다. 판매를 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통장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때까지 엄마가 내 이름으로 적금해주고 있는 적금 통장 빼고는 통장이라는 존재가 없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부탁해 함께 은행에 갔다. 통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엄마의 걱정 섞인 말이 들렸다.


“그냥 엄마가 용돈 줄 테니까 공부만 열심히 하는 건 어때?”


하지만 나는 내 손으로 용돈을 벌어보고 싶었다. 중고나라에 중고품을 팔 때 엄마의 통장으로 입금을 받았었는데, ATM기로 엄마의 통장을 정리할 때마다 지지직, 소리가 나면서 입금액이 찍히는 게 기분 좋았고, 이제는 그게 내 통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돈을 벌려고 하는 딸이 안쓰럽게 느꼈던 거 같다. 하지만 돈을 직접 관리하고 싶었고, 돈에 대한 쾌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판매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내 이름 석자가 적힌 통장이 만들어졌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통장도 만들었겠다. 두 번째 할 일은 포장재를 구입하는 일이었다.

OPP봉투, 우편봉투 또는 택배 봉투. 택배 봉투와 OPP봉투는 친구와 서울 한 시장에 나가서 대량으로 구매하여 나눴고 우편봉투는 다*소에서 1000원에 100매를 구매했다.

가끔 대량으로 구매하는 사람들은 박스로 보냈어야 했는데, 아버지가 택배박스를 구해다 주거나 내가 깨끗한 박스를 주워 와서 보냈다. 구매자들에게 포장 가격은 따로 받지 않았고 택배비만 받았다.


-판매 사이트


통장을 만들었으면 이제 물건을 판매할 공간이 필요하다.


나는 중고나라는 네이버 카페를 이용했었다. 지금은 당근 마켓이나 번개장터 등 많은 중고 페이지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중고 판매 사이트가 별로 많지 않았다.


제품의 사진을 올리고 그 아래에 가격과 수량이 몇 개 남았는지 적어서 올린다. 그리고 판매되면 그 수량만큼 낮추거나, 아예 다 팔리면 취소선을 그어 판매 완료.라고 적으며 게시글을 수정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안 팔리는 품목들은 다시 모아서 새로 게시글로 올리며 가격을 살짝 낮추는 방식으로 판매했다.


많이 사면 덤을 주거나 할인을 해줬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중학생 때 한 달 용돈이 만원이었는데―물론 옷이나 신발 같은 비싼 건 엄마가 사주셨다― 용돈이 남아서 자율 적금 통장을 만들어 자율 적금을 시작했을 정도였다.


스티커: 남이 제작한 스티커를 대량으로 구입한 후 다양한 스티커를 섞어서 세트 A, 세트 B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였다. 스티커 여러 종류를 구입했던 터라 한 종류씩 섞어서 팔았다.


가격은 1000~2000원 사이로 판매했다. 한 세트 당 200~400원 정도의 마진이 났다.


적은 금액으로 보이지만 그 당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아이돌을 좋아했고 그 아이돌의 스티커를 팔았던 거기 때문에 돈벌이는 쏠쏠했다. 스티커만으로도 한 달에 3만 원~5만 원 정도의 용돈벌이가 됐다. 물론 여기서 포장재 가격이 빠져나갔지만.

브로마이드, 등신대 그리고 책자 등등: 가게나 이모부에게 얻어오는 아이돌 물품들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아닌 아이돌도 있었다. 스티커 판매를 통해 돈 욕심이 생긴 나는 그냥 모두 달라고 했었다.


인기 아이돌의 희귀 브로마이드는 5천 원~1만 원에도 판매했고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던 아이돌들의 브로마이드는 500원~3000원에도 팔았다. (물론 품목마다 가격은 달랐다.) 공짜로 얻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순소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물품들로도 한 달에 거의 3~5만 원은 벌었기 때문에 스티커와 합치면 수익이 꽤 나는 편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꽤 좋은 방법 아닌가?

스티커를 여러 종류로 다양하게 갖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브로마이드나 등신대, 책자 등을 얻기 힘들어서 돈을 지불해서라도 갖고 싶은 사람은 있기 마련이었다. ‘덕후의 수집욕’ 나는 그걸 노렸다.

덕후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이나 캐릭터에 대한 수집욕이 있다. 굿즈, 사진, 그 사람이 하고 나온 액세서리나 의상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 하고, 갖고 싶어 한다. 덕후들의 수집욕은 대단해서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판매가 끝나면, 이제 수익을 확인하러 은행에 갈 차례다.


그 당시에는 뱅킹 어플이 없어서 입금을 확인하려면 텔레뱅킹으로 확인해야 했고, 한 달에 한 번 은행에 가서 ATM기기로 통장정리를 하면 찌지직, 소리가 나면서 입금된 내역이 입력됐다.

판매한 물품이 적으면 한 건당 1000원이 찍혀있는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장수가 넘어갈수록 얼마나 뿌듯하던지!! 이게 엄마의 통장이 아닌 내 통장에 찍히고 있다니! 엄마도 그걸 보고 더 이상 공부만 해라,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지금은 능력 있는 어린 친구들이 많아서 트위터나 블로그에서 아이돌을 직접 그려 만든 스티커나 다이어리 속지도 많더라. 그런 친구들을 보면 내 어릴 적이 생각나서 귀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덕질도 애정이 있어야 하고 그 애정에 돈까지 따라오게 되니 나는 한동안 덕질을 끊지 못했다. 좋아했던 아이돌을 탈덕해도 다른 덕질을 하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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