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할 편지

아빠에게

by 빛별

아빠~! 꼭 이렇게 불러보고 싶었어요. ‘아빠’를 생각하고 이 단어를 불러본 지가 얼마만인지. 햇수로 18년 째네요. 잘 계시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요즘은 일상을 참되게 보내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에요. 이번 주 주제가 ‘부치지 못할 편지’여서 아빠에게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 8살 때 보낸 12통의 메일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 제대로 답장 못 한 아쉬움 때문이에요. 특히 마지막 메일이 가슴 아팠어요.

“오늘도 메일이 안왔구나
메일오는것이 그립구나.
제발 좀.......”

이제 와서야, 이 문장에 담긴 외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메일에 답장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지만, 이제는 이 외로움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써요. 제가 이 편지에서 무슨 말을 해도, 그 자체로 좋아해 주실 거라 믿어요.

어제, 우리 교회에 새로 부임하신 청년부 담당 목사님과 만나 대화를 나누었어요. 특별한 일이 있어서 만난 건 아니었고, 교제를 위한 만남이었어요. 우리는 꽤 영적인 대화를 나누었답니다. 난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회의적이었는데, 공명이 울리는 걸 느끼게 해 준 목사님이거든요. 이런 사람을 난 정말 좋아해요. 자신의 삶에 솔직한 사람이요. 어쨌든, 어제 상호작용 하면서 존재가 위로받는 듯한 경험을 했어요. 그리고 목사님과 대화를 하며, 제 삶을 많이 긍정해 주셔서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몰라요. 대화 중에 계신 예수님을 보게 된 느낌이었달까요.

나는 아빠와 같은 병에 걸려서 이제는 조금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아빠가 느꼈을 외로움,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공포, 내가 처한 처지에 대한 슬픔... 이런 것들을 나도 느끼고 있거든요. 그런데요, 어제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며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는 아팠기 때문에 더 삶의 농밀함에 대해 고민했다고.” 말이에요. 지금 생각해 보니 남들과는 달랐기 때문에 변함없이 ‘심령이 가난한 자’로 살 수 있었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고요,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어요. 무엇보다 이렇게 된 게 내가 뭘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아파서 그런 거니까 절대 교만할 수도 없고요.

살아보니까요. 살아있어도 그냥 삶을 유지한 거랑 진짜 살아있듯이 살아 있는 게 있더라고요. 저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현지인들의 사랑을 느낄 때 그걸 깨달았어요. 그리곤 생각했어요. ‘진정 살아있는 시간을 위하여는 내 돈, 시간, 에너지가 하나도 아깝지 않다.’ 그건 마치 천국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성경말씀에 보물을 얻기 위해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땅을 사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마치 그 말씀을 몸에 새기는 경험이었어요.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 성경을 필사하는 시간, 정해진 시간에 걷는 시간 동안 그런 걸 느낍니다. 아무 일이 없는 하루, 그저 그렇게 보낼 수 있지만, 마음을 정해놓고 지켜 나가다 보니 이 활동이 어느새 내 존재를 붙잡아 주고 있더라고요. 특히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오후 5시경에 걷기를 떠나는데, 그때 세상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인달까요. 하루 종일 암울했던 마음일지언정 따뜻한 햇살이 말려주는 느낌이 들어요.

내 사회적 자아는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내가 처한 현실은 변함없어도 나에게 있을 ‘가능성’을 믿기로 했어요. 그 ‘가능성’이 뭔지 몰라도 변함없이 하루를 우직하게 살아내기로 했어요. 저는 잘 있어요. 그러니까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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