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교과서에 실린 사진을 보고 가보고 싶던 장소가 강원도 대관령에 있는 언덕이다. 고향은 전라남도 여수이고 학교는 전라북도 전주에서 다녔던지라 나에게 강원도는 미지의 세계였다. 마음에 울림이 있었고, 언젠가는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는 내면의 소리가 있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인생을 어디론가 던져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도망치듯이 대관령에 가기 위한 기차표를 끊었다. 되짚어 보면 이 여행이 삶을 버티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진정한 나’를 찾는 시간이었고 삶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법을 알려준 여행이었다.
2018. 08. 27 전주 -> 용산
여행의 시작. 무엇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가. 충동적인 결정.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단 떠나는 것. 밖으로는 평범하지만 다른 느낌의 평야가 펼쳐져 있다. 밖의 풍경은 익숙하지만 새롭게 보인다. 새로움은 완전히 주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스스로 느끼는 것에 의해 펼쳐지는 세상.
기차 창밖으로 비친 풍경은 유난히 특별해 보였다. 비가 내리고 있었고 바람을 질러 열차는 빠르게 달렸다. 가까이 비친 풍경은 재빨리 지나가고, 멀리 있는 풍경은 서서히 지나는 것도 특별하게 느꼈다. 세상은 느끼는 대로 사는 것이다. 정해진 기준에 지나치게 맞춰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다.
2018.08.28 서울 청량리 -> 진부. 대관령
막연히 언젠간 가보고 싶었던. 미루어 보건대, 어렸던 나는 단순히 "대관령"이라는 이름 자체에 매혹된 것 같다. 이유 없이 마음이 끌렸던 장소. 여행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깨달음인가. 실망인가. 미지의 세계를 내딛는 탐험가의 심정으로.
꿈에 그리던 대관령에 내딛는 첫 발걸음의 설렘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막연히 가고 싶었던 그곳에서 ‘진정한 나’를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무엇이 발걸음을 그리로 이끌었을까? 가끔은 미지의 세상에 발걸음을 내딛는 설렘이 있어 비록 지금 비루한 일상을 보낼지라도 살만한 게 인생이라는 걸 배웠다.
2018.08.28 대관령. 횡계. 지역 음식점과 한증막.
미치도록 가슴 뛰는 새로움. 언젠가 이런 것을 사랑했다. 따분한 일상이었더라고. 그렇게 여겨왔는가. 피가 고이면 끈적하게 되어 동맥경화를 일으키듯, 삶은 어쨌든 순환되어야 한다. 그러기엔 여기는 최적의 장소다. 완전히 다른 기온과 풍경, 사람들의 말투. 이런 것들이 고였던 피를 다시 돌게 한다. 진정한 삶은 자신의 익숙함을 정리하고, 그곳에서 떠나는 데서 시작한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히 11:8)
God is good. All the time.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완전히 다른 음식, 사람들의 말투, 한껏 떨어진 기온. 삶은 순환될 때 아름답게 느낄 수 있음을 알았다.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불확실성의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미지의 공간으로 삶을 던져 넣으며 신께서 곳곳에 남기신 은혜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2018.08.29 대관령. 양떼목장.
우스운 일이지. 그렇게 오고 싶어 했던. 직접 오지 않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광경을 보고, 오히려 내가 느꼈던 감정은 그리움인걸. 새로움을 찾아왔지만, 이 감정은 아주 옛적에 느낀 애틋한 마음 같았지. 그래서 더 울어 버릴 것 같았어. 지금은 오롯이 나를 위해서, 예정보다 더 이 자리에 머물게. 수고했고, 고마워.
대관령에 들어서서. 그토록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던 언덕을 보고 나서 느낀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왜 그때 그런 감정이 찾아왔을까? 그토록 보고 싶었던 광경을 보고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지 않았나 싶다. 울어 버릴 것 같았던 이유는, 그 어린 내가 위로하는 것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