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돌아보면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존재 자체로 나를 기뻐해 줬던 사람들이 있던 그때로 돌아가 본다. 29살에 나는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해외 봉사 활동을 갔던 적이 있다. 그것도 무려 일 년 반 동안 있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도 시골로 발령받아 한국 사람은 동료 단원 한 명과 내가 전부였다. 생김새가 전혀 다른 동양인 나를 모든 사람이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한마디라도 붙여 보려고 관심을 표현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는 여성이 10대인 조기에 임신하는 경우가 30%를 웃돌 정도로 많았다. 이는 가계 파탄으로 이어져 10대 임신을 방지하기 위한 활동을 했다. 학생들에게 성교육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지역사회의 청년 커뮤니티를 지원했다. 나는 지역에 발령된 초창기 단원이었고, 봉사활동을 보낸 KOICA는 한국의 외교부 산하 기관으로 지역에 ‘당신들의 10대 임신 방지 사업을 우리가 돕습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를 느꼈다. 왜냐하면 다음 기수로 올 단원들이 편하게 활동하려면 ‘한국의 KOICA가 우리 사업의 파트너다’라는 생각을 심어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원 활동을 하는 동안, 청년 약 70명을 대상으로 축구와 농구 종목으로 스포츠 토너먼트를 지원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유니폼에 큼지막하게 도미니카 공화국 정부기관의 이름과 KOICA의 이름을 넣어서 제작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다.
활동 1년 반쯤 지난 시간에 갑작스레 전 세계에 코로나가 유행했다. 한국인 봉사 단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집 밖으로 외출을 하지 말도록 권고하다가 결국 전 세계에 나가 있는 봉사단원의 일시 귀국이라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고 사랑을 표현했던 그들을 두고 귀국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마치 나의 여정에 마무리를 제대로 짓지 못한 느낌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사회 복지 시설에 취직해 중증장애인의 생활을 돕는 일을 했다. 도미니카의 경험을 통해 ‘나는 사람들과 부대껴 있을 때 가장 행복을 느껴’를 확인한 나는, 다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 직장에서 3년이 흐른 시점에 어느 날 혼자 등산을 갔는데 내리막길을 못 내려오는 나를 발견했다. 거의 기다시피 하산해서, 병원을 찾아 MRI를 찍었다. 아버지가 희귀성 뇌병변인 ‘소뇌위축증’이 있었고 이 병이 유전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바로 병을 확정할 수 있었다. 병이 발병해 더 이상 일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그때 다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의 슬픔이 찾아와 기생했다.
병을 얻고 직장을 실직한 좌절 끝에 도미니카 공화국에 다시 한번 방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월급을 털었다. 퇴사 시점에 맞추어 비행기를 예매했다. 다시 찾아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그들이 시큰둥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안고 나는 떠났다. 가는 데만 거의 하루가 걸려 도착한 도미니카 공화국. 지역에 방문해 홈스테이 했던 마마를 만났다. 나를 보자 기뻐하는 눈빛으로 나를 숨 막히게 꽉 끌어안으며 ‘내 아들이 왔다’고 좋아하셨다.
‘그래. 나는 이렇게 사랑받던 사람이다. 어느 날 찾아온 어둠이 나를 어쩌지 못한다’
이 주일이라는 짧은 여행에서 살아갈 희망을 발견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체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을 느꼈다. 좋아진 체력을 바탕으로 아침에 일어나 2시간 걷기에 몰두했다. 걷기는 신을 향한 일종의 예배이자 기도였다. 하루를 열며 떠오르는 일출과 함께 내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내 시간이 마치 보너스로 얻은 시간이라고 여겨졌다. 나는 내가 살아갈 방법에 대해 나름대로의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들어가고 싶던 글쓰기 모임에도 들어가 배움의 시간을 가졌다.
얼마 전, 서울 홍대에서 KOICA 팝업 이벤트가 열렸다. 여수에서 오전 5시 10분 첫차를 타고 다섯 시간쯤 걸려서 서울 홍대에 도착했다. 나의 주된 질문은 이거였다. “인생을 돌아보니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봉사단원 일 때였어요. 비록 지금 장애인이 되었지만, 혹시 이런 내가 갈 수 있는 봉사단이 있나요?” 상담해 주시는 선생님은 오늘 너무 잘 왔다고 하셨다.
왜냐면 올해 시범적으로 KOICA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팀제 봉사활동 프로젝트를 했는데, 이게 성과가 좋아서 앞으로 사회적 취약계층의 참여를 늘릴 예정이라고 한다. 본인의 연락처를 알려주시며, 앞으로 문의 사항이 생기면 이 쪽으로 연락하라고 하셨다.
자, 이제 판이 완전히 뒤집혔다. 나는 지금 글을 통해 사람들과 살아갈 방법을 나누고 있고 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내 길 끝에서 또 길을 열어주신 신의 은혜를 경험한다. 누가 너에게 희망이 없다고 선고했는가. 최고의 희망으로 다시 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