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반에는 딱 3가지의 교실 규칙이 존재한다. 첫 번째, 언어 규칙 지키기. 두 번째, 소리 규칙 지키기. 세 번째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기. 평화반의 학급 경영을 소개하는 첫 번째 글에서 나는 언어 규칙에 대한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상 평화반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아주는 가장 중요한 규칙이기 때문이다.
‘언어 규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고개를 좀 갸우뚱할 수 있다. 일상 생활에서는 언어 뒤에 ‘규칙’이라는 낱말을 붙여서 사용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보통은 ‘예절’이라는 낱말을 붙여서 ‘언어 예절’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하지만 굳이 ‘언어 규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실제로 우리 반에서 말하는 방식에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새 학기 첫날, 긴장되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서 교실 분위기를 탐색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안내하는 것은 평화반의 언어 규칙이다.
“지금부터 선생님께 드리는 말씀의 모든 끝이 ‘다’와 ‘까’로만 끝나게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살짝 당황의 빛이 보인다. 그래서 곧바로 왜 그런 언어 규칙을 적용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준다. (참고사항. 이 글에는 다섯 번째 이유까지 기술되어 있지만 학생들에게 안내하는 것은 두 번째 이유까지 만이다.)
첫째, 평화반 언어규칙을 사용하면 평상시에도 자연스럽게 발표 연습을 할 수가 있다. 보통 다수의 사람 앞에서 발표할 때는 ‘~요.’로 끝나는 어미를 사용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이런 말투를 ‘유아체’라고 표현하는데, 발표할 때 유아체를 사용할 경우 자신감이 부족해 보이거나 확신이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평화반체로 이야기하는 습관을 기르면 격식을 차린 자리에서도 알맞은 문장으로 끝맺음을 할 수 있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이미 발표 훈련을 계속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이 말을 시작하기 전에 입버릇처럼 사용하는 “있잖아요~”라는 낱말을 확실히 제거할 수 있다. “있지 않습니까”라는 단어로 문장을 시작하는 것은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둘째, 평화반체를 사용하면 말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한 번 더 문장을 가다듬고 말하는 습관이 길러진다. 요즘 아이들은 쇼츠나 릴스로 인한 짧은 자극에 익숙해졌고, 가정이나 학교 등의 환경에서 발언의 기회가 좀 더 많아져서 그런지 자기 생각을 머릿속에 오랫동안 담아놓기보다는 곧바로 밖으로 꺼내버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발화 환경을 존중해 준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는 말하기가 잘되지 않는 셈이다. 말하지 않고 참아야 하는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해야 할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평화반체를 사용하면 말의 끝을 평상시와 다른 어미로 써야 하기 때문에, 내가 할 말을 미리 머릿속으로 떠올려 한번 정리를 한 다음에야 밖으로 꺼내게 된다.
새 학기 초반에는 이런 작업이 쉽지 않기 때문에 대화 버퍼링이 걸린 아이들의 모습을 꽤 볼 수 있다. “선생님!”하고 일단 나를 불렀다가, 눈동자를 왼쪽으로 한번, 오른쪽으로 한번, 위아래로 굴리더니 “아, 아닙니다.”라고 자리에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귀여워서 몰래 웃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도 평화반체에 곧 익숙해지기 때문에 이런 모습은 보통 3월에만 볼 수 있긴 하다.
셋째, 평화반체를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언어 예절을 익히고 선생님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기를 수 있다. 아이들한테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를 강조하지만, 사실 가장 효용성이 높은 것은 이 세 번째 이유이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이 말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말이 곧 생각을 만들기도 한다. 습관적으로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감사의 언사가 익숙한 사람은 어느 상황이든 좋은 것을 찾는 것처럼.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마치 교실의 폭군이나 독재자처럼 모든 권력을 집중받고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권위가 없는 선생님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 사이에서 기준을 잡아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고, 그 역할은 그 공간에서 유일한 어른인 교사가 갖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평화반체를 사용하면 보통의 어른들에게 사용하는 존댓말보다 한층 더 높은 레벨의 경어체를 사용하게 된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우리 선생님은 예의를 중시하시는 분이야. 우리 선생님은 우리가 좀 더 존중해야 하고, 더 어렵게 다가가야 하는 분이야. 우리 선생님은 우리 반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지신 분이야.’라는 인식을 무의식 중에 쌓아준다. 교실에서 확실한 서열의 기준이 쌓였을 때, 아이들은 교사의 지도나 때로는 조금 마음이 아플 수 있는 훈육을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이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 보이거나, 존경할 만한 사람이 하는 조언은 주의 깊게 새겨듣지만, 뭣도 아닌 것 같은 사람이 한마디 하면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한 반발심이 생기게 된다. 아이들에게 교실의 질서와 기준을 명확하게 알려 주고, 이 작은 사회에서의 준법정신을 익히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강제성이 필수적인데 그것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평화반체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넷째, 다수의 아이들과 늘 의사소통해야 하는 교사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감소시킬 수 있다. 솔직히 이건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교사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상처를 꽤 자주 받는 연약한 영혼이다. 문장의 의미 자체는 물론이고 그 문장을 말할 때의 억양, 톤, 크기, 표정 등을 모두 종합하여 하나의 메시지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상처를 받을 만한 포인트가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 심지어 나는 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주 피곤한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나보다 30살이나 어린 학생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가끔 지나치게 장난스러운 말을 하거나, 말투에 약간의 반항심이 담겨 있다거나, 시큰둥하게 말하는 것 같으면 가슴이 벌렁벌렁 떨린다. 이렇게 연약한 심성을 갖고 있는 나에게 평화반체가 주는 효용이란 어마어마하다. 예를 들어서 어떤 학생이 무슨 잘못을 했다는 이야기가 접수되어, 그 아이를 불러서 사실 여부를 판단하고 결과에 따라 사건 종결 또는 훈육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일반어를 사용했을 때>
나 : 세모야, 복도에서 지나가는 네모한테 발 걸어서 넘어지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네가 그런 거 맞니?
세모 : 제가 안 그랬는데요. (이 말을 할 때의 뉘앙스가 중요한데 텍스트로는 다 표현이 안 된다. ‘안’과 ‘그’에 가장 강렬한 점이 찍히는 문장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나 : (세모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말투에 이미 한번 마음에서 생채기가 나고 인내심 게이지가 닳아짐) 그럼 선생님한테 설명 좀 해줄래?
세모 : 그냥 저는 지나가고 있었다고요. 네모가 뛰어오다가 지가 혼자 걸려서 넘어진 걸 제가 어쩌라고요.
나 : 세모야, 너의 말은 잘 알겠지만 선생님이 갈등을 일으킨 당사자가 아닌데 네가 선생님께 전달하는 말투가 공격적이어서 선생님의 기분이 좀 상하구나.
(학생과 대화를 나누게 된 본질이 흐려지고, 학생의 언행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어 갈등 상황이 심화됨)
<평화반체를 사용했을 때>
나 : 세모야, 복도에서 지나가는 네모한테 발 걸어서 넘어지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네가 그런 거 맞니?
세모 : 아닙니다 선생님, 제가 안 그랬습니다.
나 : 아, 그래? 세모가 한 게 아니라면 네모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
세모 : 저는 그냥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네모가 뛰어가다가 제 발에 걸려서 넘어졌습니다.
나 : 그랬구나, 알겠어. 선생님이 네모한테 다시 한번 물어볼게.
(담백하게 상황이 마무리됨)
만약에 내가 학생들의 비언어적 메시지보다 언어적 메시지에만 집중할 수 있는 무심함을 갖고 있거나, 학생이 이러한 상황에서 저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고차원적인 이해심을 갖고 있는 교사라면 평화반체가 없더라도 아이들과 갈등 상황을 조절하는 것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완벽하지 못한 교사고,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좀 더 넓은 이해심을 갖고 있으나, 예의범절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교사로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라고 생각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겠다.
위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평화반체를 사용하여 대화를 나누면 아이의 말하는 방식에서 받는 심리적 타격이 확실히 줄어든다. 또한 학생들도 평화반체로 갈등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서 마음속으로 한 번 더 단어를 고를 수 있으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이에 자신의 말투에 자신이 누그러져서 감정을 좀 더 다스릴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다섯째, 아이들에게 우리 반은 좀 더 특별한 점이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좀 어이없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사실이다. 사실 평화반체를 도입할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선생님께 극존칭의 말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어떤 아이들은 당황함을 넘어 약간의 불쾌감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은 보통 통제된 환경에 대한 불편함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선생님께 이렇게 말하느니 차라리 말을 안 걸고 만다, 의 느낌으로 초반에는 극도로 과묵함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도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는데, 그것은 평화반의 실제 모습이 새 학기의 첫날 예상했던 것만큼 힘든 교실도 아니고, 나도 마냥 엄격하고 무섭기만 한 선생님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적응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평화반체가 오히려 다른 반에는 존재하지 않는 우리 반만의 개성 있는 활동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학생들은 대부분 자기 학급을 일단 제일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자부심이 더해지면 학급에 대한 소속감과 애정도가 높아진다. 그리고 이것은 교실 운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평화반체가 아이들의 언어 습관을 어떻게 바꾸고, 또 교사의 마음까지 어떻게 지켜주는지 이야기해 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평화반체를 운영할 때의 팁과 주의사항을 나눠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