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만약 학생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자기가 말하고 싶을 때마다, 자신이 원하는 크기로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제대로 듣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교실은 요란법석 난리통이 되어버릴 것이다. 같은 크기의 공간이라도 소수의 인원이 생활한다거나, 그 공간에 있는 목적이 배움이나 나눔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면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런 이유로 교실에서는 반드시 소리 규칙이 존재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학생들의 자유를 제약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공동체 생활을 할 때 지켜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선이다. 특정한 행동은 그 행동을 볼 수도 있고, 보지 않을 수도 있다는 확률이 존재한다. 하지만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듣지 않을 수가 없다. 아주 조용한 수업 시간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언어 규칙 다음으로 안내하고 1년 내내 강조하는 것이 소리 규칙이다. 아이들에게 특정한 크기와 상황의 소리를 마치 리모컨의 볼륨처럼 숫자와 연결 지어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단순히 “작게 이야기해요.” 또는 “크게 읽어보자.”라고 했을 때 어떻게 말을 조절해야 할지 애매해서 판단이 어려운 부분을 좀 더 알기 쉽고 명료하게 실천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 0의 소리
말 그대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은 주변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집중해서 활동을 하다가도 옆에서 친구가 한 마디를 시작하면 그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집중 분위기가 깨져버리고 만다. 하루를 차분하게 열어야 하는 아침 시간, 글쓰기를 할 때, 수학 문제 풀이, 영상 및 영화 감상, 독서 시간, 수업 중 개인 작업 활동을 할 때 필요하다.
수업 중이 아니지만 줄을 서서 이동할 때도 0의 소리를 강조한다. 급식실 갈 때나 이동 수업으로 인하여 단체로 움직일 때 줄을 서서 가게 되는데, 이때 주변 친구들과 이야기하거나 장난을 치면 이동 시간이 길어지고 때로는 계단과 같은 장소에서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줄 지어 있는 모든 시간 동안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고, 걷는 상황이 있을 때에만 한정한다. 예를 들면 급식실에 도착해서 배식 순서를 기다릴 때는 주변의 친구들과 조용히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한다.
- 1의 소리
귓속말에 가까운 소리이다. 2명이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안 들리는 소리. 보통 1의 소리는 단독으로 쓰이는 일은 거의 없고, 0의 소리와 같이 절대적인 정숙이 필요한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이야기를 나눠야만 하는 일이 있을 때 허락되는 소리이다. 미술 시간에 필요한 준비물을 다른 친구에게 빌리거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볼 때 사용된다. 1의 소리로 대화를 시작하기는 했으나 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목소리 크기가 점점 커지거나, 다수의 학생들이 서로 1의 소리로 이야기할 경우 2의 소리에 가까워질 때가 있는데, 이 때는 교사가 “지금 소리 규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주위를 환기해주기도 한다. 1의 소리와 2의 소리는 교사의 귀에 명확하게 인지 가능한 낱말이 들리는가 아닌가로 결정되는데, 그래서 교사 가까이에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약간의 불리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 2의 소리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대화 소리이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의 대화, 수업 중 짝 토의나 모둠 토의 시간에 의견을 나눌 때에 허용되는 소리 크기이다. 교사의 별다른 소리 가이드가 없을 때에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평화반 사운드 디폴트 값이라고나 할까?
- 3의 소리
수업 중 발표할 때의 소리 크기이다. 옆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만 들리면 안 되고, 교실 전체의 친구들에게 들릴 정도로 크고 명확한 소리. 큰 소리로 발표하는 것은 사실 꽤 중요한데, 발표가 잘 들리지 않을 경우에는 당연히 친구의 발표 내용에 집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큰 목소리로 쩌렁쩌렁 이야기를 하다가도, 막상 발표를 할 때가 되면 저절로 볼륨이 수그러드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내가 가르치고 있는 고학년에서 더 두드러지는 특징인데, 자신감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친구들 앞에서 틀린 내용으로 잘못된 발표를 하는 것이 엄청나게 창피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저학년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그런 경우가 적긴 하지만, 이때의 아이들은 발표도 자기중심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어서 소소한 tmi를 덧붙이다 보면 발표가 한정 없이 길어지고, 그러다보면 발표의 음량이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학기초에 3의 소리와 그 크기를 알려 주고 발표 연습을 여러 번 해본다. 모든 학생들이 3의 소리로 발표 하는 것은 조금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어찌됐던 아이들에게 기준을 알려 준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 4의 소리
단체로 구호를 외쳐야 할 때 사용하는 소리이다. 나는 단체 구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평상시에 쓸 일이 거의 없긴 하다. 어떤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에도 여러 번 전체 구호를 활용하면서 집중력을 알맞게 유지시키시던데, 나는 불필요하게 아이들이 여러 번 크게 말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특정 아이들만 큰 소리로 말하고 안 하는 아이들은 관심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아이들까지 다 할 수 있게 분위기를 고취시킬 수 있는 스킬이 없다는 것이 솔직한 이유일 것이다.
만약에 수련회에 간다면 교관의 지시에 따라서 가장 많이 사용할법한 소리가 아닐까?
- 5의 소리
사실상 허수에 가까운 소리다. 숫자로는 존재하지만 실제로 교실에서 활용될 일은 없는. 실제로 소리 규칙을 안내할 때도 깜빡하고 넘어갈 뻔했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 5의 소리는 그럼 언제 사용해야 합니까?”라고 물어보길래 대답해 줬다.
“불이 났을 때 쓰면 됩니다.”
1학기 때 안전체험학습을 가기 위해 대절 버스를 이용한 적이 있는데, 학교 외부로 나가는 상황이라서 아이들이 평상시보다 조금 더 들떠 있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차를 타고 가는 시간이 10여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도착할 때가 되었을 때는 서로 더 큰 소리로 말하느라 버스 안이 잔뜩 소란스러워진 상태였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주변 친구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목소리 크기를 조절할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해 보았고, 곧바로 소리 규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선생님 : 평화반 친구들, 지금 이 목소리 크기는 거의 3의 소리에 가깝습니다. 선생님이 버스 안에서 대화를 나눌 때 알맞은 소리 크기를 알려줄게요. 1의 소리로 말해볼까요?
학생들 : (속닥거리는 크기로 말함.)
선생님 : 그럼 이번에는 2의 소리로 말해볼까요?
학생들 : (쉬는 시간에 나누는 이야기 크기로 말함.)
선생님 : 좋아요. 그럼 1보다는 크고 2보다는 작게. 1.5 정도의 소리로 말해볼까요?
학생들 : (너무 작지는 않지만 양 옆의 친구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의 소리로 말함.)
선생님 :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알맞은 목소리 크기는 1.5 정도입니다. 꼭 기억해 둡시다.
이런 식으로 소리의 간격을 세분화하여 응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음번에 버스로 이동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출발하기 전 아이들에게 “버스 안에서 알맞은 소리는 몇의 소리일까요?”라고 먼저 질문하면, 알맞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미리 만들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계속 일정한 크기의 소리만 낼 수 있는 기계와 같은 존재가 아니므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소리는 점점 커지게 되어 있다. 어느 일정 기준 이상으로 큰 소리가 나올 때 교사가 한 번씩 짚어주기만 해도 서로 눈살 찌푸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
2장에서 안내한 언어 규칙은 학기 초에 빠짝 지도하면 그 뒤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아이들이 실천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소리 규칙은 오히려 학기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풀어지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고 수시로 지도해야 하는 부분이다. 때와 장소에 따른 소리의 조절 능력을 기른 아이들이, 후에 공공장소에서의 대화 에티켓을 지키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