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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음 Jan 06. 2022

J에게 7

우리의 시간은

                                                한지 작품 - 간(흔적)                            2021 전북도립미술관 특별전


      J야, 다시 월요일이다. 어제 너도 쉬었다면 오늘은 또 새롭게 훈련에 임하고 있겠지. 나도 출근해서 오전을 보냈다. 일요일인 어제는 아무것도 못했어. 줌으로 오전 예배를 드리고는 그 후부터는 뒹굴거리기와 잠자기를 반복했어. (내 곁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마냥 그럴 수만은 없이 때 되면 밥은 해 먹고) 그냥 많이 피곤하더라. 쉬어도 피곤하고 잠을 자도 잠만 오고. 후텁지근한 날씨 탓이었는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조금 걸었는데, 무척 더워서 땀을 흘렸어. 그렇게 긴 거리도, 시간도 아니었는데 얼굴에 땀이 흥건했단다. 이젠 완연한 여름이고 정말 무더위가 시작됐구나 하고 실감했었다. 이번 주 지나면 다음 주부터는 너도 자대 배치를 받아 배치받은 곳에서 군대 생활을 하는 거니? 군대 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지라, 군대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생소해서 내가 하고 있는 말조차도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무더위에 군 생활하려면 고생이 많겠다. 


     네 생활이 일상을 떠나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으로 바뀌었지. 말했다시피, 나는 군대에 대해 뭘 알지도 못하지만, 외삼촌이나 여타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힘들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 너도 많이 힘들 것이라 생각이 든단다. 그러나 모두들 그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고 군대를 마치고 사회로 나오면 더한층 성숙한 한 인간으로 세상과 대면하게 되는 것을 보아왔다. 군대가 힘들고, 네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을 수 있지만, 너의 몸과 맘이 성장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는 것, 단점은 최소화하고 장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겠지.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란 것이 없겠지만, 군생활은 더욱더 자신과의 싸움이겠지.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아 자신을 이겨내고 더 단단해지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 군대 생활이라고 생각된다만, 물론 나는 군대 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네가 ‘이모는 안 해봤으니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왕 하는 거 최선을 다하고 즐거운 맘으로 생활하는 것이 최선이겠지. 누군가 그러더구나.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오지 않았으니 우리에게는 언제나 오늘만 있을 뿐이라고. 지금 당장만 있는 거라고. 그렇지 않니. 가만 생각해봐라. 지금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인 만큼 지금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구나. 


     출근할 때, 버스를 탔는데 이런 일이 있었구나. 내가 버스를 타서 단말기에 카드를 찍고 뒤쪽으로 걸어가려는데, 자리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내게 돈을 내미셨어. 대신 차비를 내주라고 하신다는 걸 금세 알아차리고 돈을 받아 돈통에 넣었는데, 할머니가 돈 1,500원을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200원을 남겨오라는 거야. 그래서 나도 돈통에 돈을 넣고 기사 아저씨 옆에 서 있었네. 그랬더니 아저씨가 왜 안 들어가느냐고 물어. 200원 잔돈을 받아가려고 한다고 대답했지.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저씨가 “차비 오른 지가 언젠데 잔돈 타령”이냐고 호통을 치시는 거야.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좋은 일 하려다 비 쫄딱 맞은 생쥐꼴이 되었지 뭐야. 내가 할머니를 바라봤더니,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어서 오라고 부르셔. 차비 오른 것을 깜빡했다고. 나도 차비가 오른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카드로 사용하다 보니 얼마에서 얼마가 올랐는지를 정확히 몰랐지. 그래서 할머니 말씀대로 따랐던 것인데, 일이 그렇게 돼 버렸단다. 


     좀 당황스러웠지만, 차 뒤편에 가서 서 있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잘 내렸어. 예전 같았으면 무안하고 창피해서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나 하고 찾았을 텐데. 더 심하면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젠 그럴 나이는 지났구나. 그리고 내 자존감이 100퍼센트 꽉 차 있거든. 거기다 살다 보면 더한 일들도 많다는 걸 알았으니,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거지. 기사 아저씨가 좀 더 친절했다면 좋았겠지만, 이런 일들에 일일이 마음에 상처를 입고 기분을 상하고, 하루를 음울하게 보낸다면 너무 시간 낭비지 않겠니. 순간을 사는 우리, 매 순간순간, 지금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되지 않겠니.


     J야,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많은 돈이 들지 않더니, 이제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돈이 많이 들 것 같구나. 사실 요즘은 돈을 어떻게 하면 많이 벌까. 그 생각을 하고 있단다. 원래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지 않았고,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살기를 원했어. 그런데 자식들이 무엇을 원하기 시작하고 그것을 ‘돈’ 때문에 못 해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구나. 해서 아이들 공부를 시키고, 또 원하는 예술, 체육 활동 등에 들어가는 학원비 따위를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겠더라. 아이들이 성년이 되면 다시 소박하고 단순한 삶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지금은 또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란 것이 이렇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을 걷는 것과 같은 일이지 싶기도 하다.


     너도 나중에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길러보면 이 마음을 알겠지. 뭐 결혼을 안 하고 자식을 낳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세상에 태어났으니, 기왕지사 뭐든 해 보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두려워하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말고, 뭐든지 해 보면 좋을 것 같아. 특히 젊은 시절에 많고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기를 바라. 경험함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시간들로 너를 채웠으면 좋겠구나.  


    대체로 네게 편지를 오전에 썼는데 오늘은 오후에 쓰고 있다. 오전에 일이 있었어. 종이를 잘라서 붙이는 일이었는데, 자른 종이를 반듯하게 제 칸에 맞추어 붙이는 일이었단다. 처음에는 더디고, 삐뚤게 붙이거나 잘못 붙여서 시간이 지체되었는데, 차츰 여러 번 붙이기를 계속하다 보니, 훨씬 능률적이고 반듯하게 붙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더구나. 세상 모든 일들이 그런 것 같지. 처음 할 때는 더디고 어렵고 힘들지만 차차 익숙해지면 쉽고 빨라져서, 흔한 말로 ‘식은 죽 먹기’가 되지. 지금 너의 군대 생활이 힘들고 어려울 테지만, 식은 죽을 떠먹는 것처럼 편안할 때가 오겠지. 훈련 첫날과 오늘이 무척 다르듯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모든 일들은 시간이 흐르고 부딪히고 이겨내면서 자신의 몸에 착 달라붙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옷으로 탄생하는 것일 테다. 그러니 혹여 힘들더라도 삶의 섭리, 인생을 순리대로 느긋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이만 줄일게. 안녕. 


                                                                                              2021.7.12.(월) 넷째 이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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