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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에게 6

사소함으로 꽃 피우는

by 정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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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야, 오늘은 첫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이다.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은 집에서 쉬었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 양 이틀간을 새벽 3~4시에 자고 그다음 날 아침 11시에 일어났어. 그 시간까지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봤단다. <블랙>, 송승헌과 고아라 주연의 형사 미스터리 극이야. 2017년도에 OCN에서 방영되었던 작품이었어. 너도 봤는지 모르겠구나. 나는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하면 그칠 줄 모르고 보는 나쁜 버릇이 있어. 그래서 집에 TV 없이 지냈는데, 작년부터 넷플릭스를 신청해서 컴퓨터로 보고 있단다. 한 달에 약 만 오천의 비용이 들더구나. 그 돈 만큼보다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해야 해서 부지런히 보고 있단다. 그리고 내 나쁜 버릇이 태권 V의 영희, 철희처럼 결합하여 지난주 내내 <블랙>18편을 보고 말았어.


글을 쓰려면 영화도 많이 봐야 한다고 하더라만, 글쎄, 나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드라마를 보면 잠이 오지 않아서 그리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보게 되는 것뿐. 그렇다 보니 지난주에는 집에서 전혀 책을 읽지 않았지 뭐야. 가끔 이렇게 영화나 즐기면서 그냥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도 해 보는데, 그렇게만 산다면 뭐랄까 뭔가 석연찮은 것 같아. 삶에 알맹이는 없이 껍질만 붙잡고 있다고 할까.


그래서 오늘부터는 다시 집에서도 책을 읽으려고 한단다. 그러고 보면 사람에게 중요한 덕목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절제가 참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나 게임에 열광적인데, 이 두 가지에 바치는 시간을 정해서 줄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여기에서 필요한 덕목이 절제 아니겠니. 무엇인가 계속하고 싶지만, 계속 먹고 싶고, 더 갖고 싶은 마음에 선을 긋고, 여기까지! 하고 멈출 수 있다면 우리는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삶이 아름답기까지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단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는 화분이 많이 있어.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난 화분이 많아.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난 화분들이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따라오거든. 처음에 들어올 때, 화분들은 모두 꽃을 피우고 있단다. 향기를 피우고, 목에 리본을 매달고 의기양양하게 자태를 뽐내지. 사람들의 관심과 환호를 한 몸에 받으며 들어와. 허나 하루만 지나면, 아니 그 순간만 지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로 돌아가고 화분들은 창가에서 누군가 봐주기를, 그래서 물을 주고 사랑을 주기를 간절히 기다린단다. 내가 보기에 그렇게 보여. 화분들은 따뜻하고 자상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듯해.


말했다시피, 나는 그다지 일이 많지 않아서 내가 화분 관리를 도맡아 하고 있어. 집에서 화분을 기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막상 화초에 정성을 들이고 보니, 그 시간이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 되더구나. 잎사귀 하나하나를 쓰다듬으며 잘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흐뭇한 마음과 뿌듯함이 함께 가슴을 채워서 나도 모르게 웃게 돼. 그런 날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돼. 난 화분 물은 이렇게 준단다. 깊은 통에 화분을 잠기게 해서 몇 시간을 둔 후, 건져내어 물기를 빼면 돼. 쉽고 간단하지. 그런데 그게 또 쉽지가 않아. 왜냐면 사랑하지 않으면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지. 목마른 화분을 물속으로 집어넣을 때의 감각과 소리와 마음에 전해져 오는 진동을 네게도 전해주고 싶구나. 메마른 난 화분의 몸체를 물속에 담그면, 화분이 물을 빨아올리는데, 그때의 느낌을 언제까지나 잊을 수가 없을 듯싶구나. 독특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소리지. 빈 배속으로 소주 첫 잔이 내려가는 느낌과 조금은 비슷하다고 할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세상의 아픔, 고통, 분노, 슬픔, 기쁨, 환희, 생의 모든 것들이 물속으로 차분히 잦아드는 느낌이 든단다.


J야, 참 신기한 일도 있단다. 작년 7월에 양난 화분이 한 점 들어왔거든. 분홍색 꽃송이들이 꽃대에 방울방울 매달려 있어서, 보는 사람이 충만한 기분이 들게 하는 화분이었어. 이 화분이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분홍 꽃송이들을 싱싱하게 매달고 있단다. 물론 처음에 피었던 꽃이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니야. 새로운 꽃대들이 올라와 꽃을 피우고 지고 하면서 계속 피우고 있는 것이지. 양난이 1년 동안 내내 꽃을 계속 피운다는 것을 몰랐거든. 그런데 사무실 사람들도 다들 놀라워하더구나. 이렇게 오래도록 꽃을 피우는 화분을 본 적이 없다고 말이야. 내가 화분 관리를 잘해서 꽃이 계속 피고 지고, 난 화분도 다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뿜는 다고, 다들 나를 칭찬했단다. 나보고 ‘금손’이라는 별호까지 붙여주더구나.


그러나 기실 양난이 이렇게 계속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화분이 놓인 장소가 바람과 햇빛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는 곳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을 거라는 생각이란다. 물론 내가 제때에 맞춰 물을 준 것도 한몫했을 테지만 말이다.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것들이 힘을 보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들을 배웠지.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어. 사람에게도 사랑이 중요하지만, 꽃이나 풀도 사랑이 필요한 것이라는 걸 말이 아닌 행동으로 느낀 셈이다. 거기다 나도 행복하단다. 날마다 잎사귀들을 만져보면서 말을 걸어보거든. 잘 자라라고 속삭이거든. 그러면 살랑살랑 이파리를 흔들며 대답한단다.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편지 읽으면서, 이런 말들이 자꾸 나오니까 징그럽고 소름 돋지.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자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표현해야만 내 것이 되는 것 아니겠니. 나도 예전에는 표현에 서툴렀는데, 결혼을 하고 애들을 낳고, 시간을 먹으며 연륜이 깊어지니 그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더라. 그리고 어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지난 시간이 후회스럽기까지 하더라니까. 지금 당장은 너도 안 되겠지만, 노력하기를 바라. 아들만 둘 있는 네 엄마 아빠가 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듣게 되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니. 네가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하고 말해 본적이 언제 적 일인지 모르는 것은 아닌지 싶구나. 특히 아빠한테는.


J야, 내가 네게 보내는 편지(이번이 여섯 통째이다)들이 언제 도착하는지, 네가 받아보기는 하는지 모르겠구나. 어제 네 엄마와 통화를 했는데 내가 지난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보낸 다섯 통의 편지를 너는 아직 한 통도 받지 못했다고 하더구나. 그럼에도 나는 쓰고 또 보낸다. 만약 이 편지가 네 손에 닿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지더라도, 그냥 써서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싶구나. 너로 인해서 이렇게 날마다 글을 쓸 수 있어서 참으로 고맙고 즐겁다.


너도 언제나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를 바란다. 가까이에 너를 사랑하는 너희 부모님과 동생이 있고, 또한 여러 사람들이 너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고, 건강 챙기고, 겸손하고 공손하고 당당하게 세상을 마주하기를 바라. 세상에는 사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기 바라. 꽃이 피고 지는 것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안녕.


2021.7.5.(월). 넷째 이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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