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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음 Feb 27. 2022

강가에서

나를 만나러 갑니다


    만경강가를 걷는다. 봄을 알리는 전령, 바람, 바람이 분다. 겨울바람처럼 차갑지는 않지만, 여전히 옷깃을 여미게 한다. 마주치는 사람은 없어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이제 마스크는 필수품이다. 강가를 걷는 사람 중,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가끔 본다. 이상하게 느껴진다. 밖이라서 코로나 감염을 걱정하지는 않지만, 그 사람이 중요한 무언가를 빠뜨린 것만 같은 불안감을 내가 느낀다. 


     오늘은 아무도 강가를 걷는 사람이 없다. 해가 떨어지려면 시간이 한참 남아서일까. 강과 도로를 사이에 둔 길. 도로에는 쉼 없이 차들이 달려 다닌다. 베이지색으로 변한 억새들이 강가의 가장자리에서 서걱서걱 바람에 흔들린다. 억새숲에서 수많은 소리들이 들려온다.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알아들을 수 없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이름도 모르고 보이지도 않는 새가 청량한 목소리로 강을 노래하고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사람들은 강가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검은 고양이의 집을 지어주었다. 집은 스티로폼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은 좀 볼썽사나운 집이지만, 2층으로 지어진 보금자리였다. 생수병에 물을 가져다주고 먹이도 주었다. 어떤 날은 밥그릇에 우유가 담겨 있기도 했다. 집에서 나오면서 고양이에게 가져다 줄 먹이를 챙겼을 사람들의 마음, 살아 있는 생명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설렘이 내 가슴에도 전해진다. 따뜻하고 애틋한 마음들이 모여 고양이는 토실토실 살이 오르고 윤기가 흐른다. 


     고양이는 입 주위가 마스크를 쓴 것처럼 하얗고, 하얀 양말을 신은 듯 발목까지만 하얗고 온몸이 어둠처럼 새까만,  눈이 노란 커다란 고양이다. 오늘 고양이 집 옆에는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내 팔뚝만 한 생선이 놓여 있다. 집 주변을 맴돌던 고양이가 오늘은 집 2층에 들어가 앉아 있다. 반쯤 졸고 있다. 생선은 전혀 손대지 않은 채 그대로다. 제사상에 올려진 생선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고양이를 들여다본다. 무섭다. 나는 고양이가 무섭다. 고양이의 눈이 무섭다. 용기를 내서 고양이의 눈을 들여다보려 했다. 딸아이가 고양이를 몹시 좋아해서, 나도 고양이를 좋아하려고 해 보았다. 되지 않았다. 졸고 있는, 반쯤 감긴 노란 눈조차 나는 마주칠 수 없었다.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눈,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날카롭고 형형한 눈이 무섭고 두렵다. 너무 많은 죄를 지어서일까. 김종삼 시인의 시 ‘라산스카’의 ‘죽어서도 나 영혼이 없으리’라는 구절이 스친다.


     걸음을 다그쳐 그곳을 서둘러 벗어난다. 일시에 마음의 평온을 되찾고 강물을 바라본다. 햇빛이 강물에 금빛 물결을 드리운다. 오리들이 강물 위에 둥둥 떠다닌다. 오리들은 물결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같지만 목적지를 향해 강물 속에서 부지런히 발을 움직인다. 가끔 나는 나도 오리처럼 강물 위를 둥둥 떠다녔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강물에 떠 있는 오리들을 보며 ‘오리들아, 이 강에서 같이 살자.’하는 노랫말도 떠올렸다. 오리들 옆에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학이 어디 먼 데를 바라보며 서 있다. 한 마리나 두 마리. 학은 언제나 고고해 보인다.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다. 멋지다. 다른 표현을 할 수가 없다. 날개를 퍼덕이지 않고 유유히 하늘을 날다 다시 부드럽고 침착하게, 결코 서두르는 법 없이 물 위에 내려앉는다. 단아한 자태로 꼿꼿이 서서 저 먼 허공을, 세상을 응시한다. 세상을 담는 학의 단아함을 사랑한다. 


     서른의 나이에 늦게 대학에 편입했던 그때의 여름날, 단아한 모습으로 피어있는 백도라지꽃을 만났다. 경기도 외곽에 자리한 대학의 교정에는 산 아래에 작은 연못이 있었다. 연못 둘레에는 나무 의자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고, 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었다. 연못은 아담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는 일이 잦았다. 연못에는 오리도 살았다. 연못 가에는 노란 난초도 피었고, 철쭉꽃도 피었다. 계절마다 연못은 새 단장을 했다. 돌계단을 징검다리처럼 쌓아놓고 돌 아래 작은 꽃들을 살게 했다. 거기 백도라지꽃이 있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였지만, 어째서인지 도라지꽃을 처음 보았다. 그 꽃이 도라지꽃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어떤 꾸밈도 없는 하얀 도라지꽃을 첫눈에 사랑하게 되었다. 나와 같은 처지의 남자(지금의 남편)와 막 사랑을 시작하던 때였다. 나는 여전히 꽃 중에서 백도라지꽃을 제일로 꼽는다. 


     바람은 수그러들지 않고 태양은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밖으로 나온 손이 시리다. 왔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간다. 일몰을 보려면 좀 더 늦은 시간에 강가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이면 어둠이 몰려왔다. 낮이 많이 길어졌다. 한 해의 두 달이 지나가고 있다. 세상은 어지럽다. 먼 이국 땅에서는 전쟁이 일어났고, 가까이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는 이제 감기처럼 우리와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나는 이 만경강가에서 자연을 만났다. 나를 만났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나를 만났다. 자주 강에 나와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강물의 뒤척임을 보고, 바람이 가져주는 냄새를 맡고, 오리들의 천진스러움을, 세상을 초월한 학의 날갯짓을 가슴속 깊이 새겨야겠다. 욕심 없이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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