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음 Mar 01. 2022

엄마와 딸

영원한 엄마들, 밑 빠진 독에 물 붓다


     우리 엄마는 열심히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계신다. ‘딸’이라는 결코 깨트릴 수 없는 항아리에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물을 지친 기색도 없이, 부지런히 들이붓는다. 


     친정에 다녀왔다. 쌀 가지러 가서 쌀뿐만 아니라 온갖 반찬들과 엄마의 냉장고와 현금을 털어왔다. 


     팔순이 넘은 엄마는 시골에서 혼자 지낸다. 남편을 오십 대에 하늘로 보내고 자식들은 모두 출가를 했다. 광주, 서울, 용인, 호주 등 각지에 흩어져 사는 자식들은 코로나 때문에 고향에 오지 못하고, 전화로만 소식을 전한다. 제일 가깝고 코로나로부터 조금은 안전한 지방에 사는 내가 자주 가서 엄마의 살림을 거덜 내서 가져온다. 한마디로 엄마젖을 쪽쪽 흡혈귀처럼 다 빨아먹고 가져오는 것이다. 


     고향 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광역시’이나 시내로 나다니는 버스는 네 시간에 한 대씩 있고,  마을에는 그 흔한 슈퍼도 없는, 말만 번지르한 광역시이다. 4km 정도에 있는 슈퍼가 가장 가까운 농협 하나로마트이고, 여기에 초등, 중등학교와 우체국, 농협, 동사무소, 병원 등이 위치해 있다. 옆에 사람이 없으니, 자가용은 당연히 없는 엄마는 병원에 다녀오시려고 해도 버스 시간을 맞추고, 병원 진료가 끝나더라도 몇 시간을 기다려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병원 다녀오는 데에 하루가 다 지나가는, 한마디로 시골 촌구석이 내 고향 마을이다. 


     아이들 개학도 얼마 남지 않았고, 엄마가 보고 싶기도 했다. 남편은 엄마를 만나러 가는 것을 나보다 더 좋아한다. 언제나 오케이. 나보다 더 빨리 준비를 마치고서 얼른 가자고 보챈다. 항상 꽃을 준비해서 엄마 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꽃을 꽂는다. 무슨 의식을 거행하듯 차분하고 엄숙하기조차 한 꽃꽂이가 끝나면 미리 준비해 온 소주 한 병을 들고 아빠 산소에 다녀온다. 좀 늦은 시간에 도착하면 다음날 아침 일찍 아빠를 만나고 온다. 나는 결혼한 후에, 그러니까 남편이 아빠 산소를 찾은 후에는 한 번도 아빠 산소에 가지 않는다. 어째서 그렇게 된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남편에게 맡긴다. 남편은 아빠를 본 적이 없지만, 산소를 가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남편에게 엄마께 드리는 꽃과 아빠를 만나러 가는 일은 동시다발적인, 두 분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정 표현인 듯싶다. 


     엄마는 혼자 계실 때는 연탄과 자식들이 사 준 옥돌침대로만 난방을 하시다가 우리가 오면 기름보일러를 돌린다. 자식들이 와야만 비로소 기름보일러가 작동되는 것이다. 썰렁했던 집 안이 사람의 온기와 보일러의 온기로 조금씩 따뜻해지고, 춥다고 방으로만 달려 들어갔던, 이불속만 파고들었던 아이들도 밖으로 나온다. 연례행사처럼 마트에 가서 고기를 사 오고 저녁은 고기를  구워 먹는다. 엄마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위와 손주들을 위해 넉넉하게 고기를 사고 손주들 먹거리를 챙기는 것이다. 절간 같았던 집이 소란스러워지고, 모성이 엄마를 장악한다. 절룩이던 다리는 금세 절룩거림을 멈추고 눕고만 싶었던 온몸에 기운이 넘쳐난다. 


     그러나 잠자리에 눕는 순간부터 다시 팔순의 노인이 되어 시름시름 앓는다. 비어 있는 큰방에서 남편이 자고 엄마와 나와 아이들(딸과 아들)은 엄마가 기거하는 작은방에서 함께 잔다. 엄마는 침대에서, 나와 아이들은 바닥에서 엉겨 붙어 누워서 밤이 늦도록 텔레비전을 본다. 나는 끙끙 앓는 엄마의 팔과 다리를 마사지한다. 주무르고 두드리고 조물조물한다. 엄마는 내 팔이 아플 것을 먼저 걱정하여 연신 ‘그만하라’고, ‘괜찮다’고 하신다. 


     형제들 카톡방에 엄마한테 갈 거라는 카톡을 남겼더니, 남자로는 하나뿐인 남동생이 전화를 해왔다. 엄마가 넘어지셨으니 잘 좀 확인해 보라고 했다. 엄마가 괜찮다고 하시는데, 정말 괜찮은 것인지를. 엄마는 지금까지 일을 하신다. 농사는 물론이고 다른 집 일을 하고 삯을 받는다. 비닐하우스에서 고추를 따거나 파를 뽑고 상추를 뜯는 등 별의별 일을 다 하신다. 코로나 이전에는 외국인들 차지였지만, 지금은 다시 노인들 차지가 된 일을, 나는 집에만 있는 것보다 활동을 하는 것이 더 좋다는 엄마의 말씀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집에서 쉬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상반된 생각 사이에서 못 이긴 척 엄마의 손을 들어준다. 효자 아들이 알면 ‘일 좀 그만하시라’고 성화일 게 뻔하다. 나는 효녀가 못 되는 것일까. 엄마가 힘들게 번 돈이, 발이 달려서, 나에게로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엄마를 보자마자 남동생과 통화한 이야기를 했다. 개에게 쫓겨 도망가다가 넘어지셨다고 했다. 세게 뛰다가 뭔가에 걸려 한쪽으로 넘어졌는데, 어제는 괜찮았는데, 하룻밤 자고 나니 더 아프다고 하셨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개를 풀어놓지 않는다. 원래 묶여있던 개를 주인이 풀어놓는 과정에서 생긴 일인 것 같았다. 그 집 대문을 다 나서기도 전에 목줄을 풀어놓으니 개가 엄마한테 달려들었고, 깜짝 놀란 엄마는 전속력으로 뛰다가 장애물에 걸려 넘어졌고,   넘어진 순간에는 별로 다친 데 없이, 팔꿈치에 찰과상을 입은 것 빼고는 괜찮으셨던 모양이었다.  아침에는 ‘네가 주물러줘서 훨씬 좋아졌다’고 하신다. 


     나는 효녀가 못 된다. 우리 엄마는 늘 젊고, 건강하고 절대로 죽음과는 상관이 없을 것만 같다. 엄마한테 가면 나는 애기처럼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기 일쑤다. 새벽까지 잠을 안 자고 늦게 일어나서 엄마가 해 놓으신 밥을 먹거나 엄마와 남편이 아침 일찍 일어나 밭이나 논 일을 마치고 올 때까지 일어나지 않고 있기도 한다. 그때서야 밥 준비를 해서 아침 겸 점심을 먹는 일도 잦다. 


     이번에는 늦게 잤지만, 엄마가 일어나실 때 일어나서 엄마랑 함께 아침을 준비한다. 엄마는 말씀하신다. “내가 안 아팠으면 오늘도 늦게 일어났을 텐데. 내가 아픈께 일어났지?” “응, 엄마가 많이 아픈 것 같아서, 차마 인 두껍을 쓰고 안 일어나면 안 될 것 같아서 일어났어.” 내 너스레에 엄마와 나는 함께 웃는다. 남편은 거실을 걸레질하고, 나는 내친김에 아침을 먹은 후 냉장고 청소도 한다. 나는 되도록 매일 엄마와 전화통화하려고 하는데 통화도 30분 정도, 길게 한다. 말을 하다 보면 할 말이 생긴다. 재미있는 일도 이야기해 드리고 내가 일상에서 느끼고 깨달은 것에 대해서도 함께 나눈다. 밥을 하거나 냉장고 청소를 할 때도 할 이야기가 많았다. 나는 수다쟁이가 된다. 엄마와 나는 잘 통한다. 


     내가 내 머리카락 펌을 할 돈은 없어도 아이들 학원에 보내고 옷 사줄 돈은 있는 것처럼 내 엄마도 어쩌다 먹고 싶은 낙지 한 마리 사 먹을 돈은 없어도 ‘딸’이라는 밑 빠진 항아리에 들이부을 돈은 한이 없어서, 몸을 천천히 갉아먹은, 힘든 노동의 대가로 받은 돈을 언젠가 밑 빠진 항아리에 돈이 차기를, 그래서 좀 더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며 딸에게 채워 넣으신다. 언제까지나. 나는 효녀는 못 되지만, 엄마의 마음을 안다. 엄마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실 것을 또한 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가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