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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음 Apr 10. 2022

'희망'이라는 신기루

바리스타 자격증, 그깟 게 뭐라고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사는 게 뭐야?”라고 물으면 언제나 남편은 “지금 사는 것이 사는 거야.”라고 대답한다. 오늘도 나는 이 물음을 남편에게 했고 남편은 똑같이 대답해 줬다. 


    ‘산다는 것’, 나는 ‘지금’을 살고, ‘지금’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아직, 그래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벌써 세 달을 넘기고 네 달째 접어들고도 한참이 지났다. 이렇게 쉽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겠지!’하는 우연과 희망에 기대어 하루를 살고, 한 달을 살고, 일 년을 살고, 십 년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붙잡을 수는 없지만, 가까이 있는 것 같고, 곧 잡힐 것 같은데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을 애써 잡으려고, 때로는 발버둥도 쳐보고 안 보는 척 실눈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까짓것 필요 없다고 너스레도 떨어보면서, 지금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 것이라는 생각이 흘러가는 물처럼 거침없이,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넘나 든다. 그 ‘무엇’은 나를 추동하는 힘이면서 슬쩍슬쩍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는, 나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는, 한껏 부푼 풍선이었다가 피시식 허공을 날다 땅 위로 곤두박질치는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신과 같이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신기루. 


    나는 ‘뭐라도 하기 위해’, ‘뭐라도 하면서’ 지금을 살기 위해, 지금 바리스타 2급 취득 과정을 요리학원에서 배운다. 15일 과정으로 56시간. 이론과 실기로, 이론 시험은 지난 토요일에 보았다.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60점 이상만 넘으면 합격한다고. 필기는 한글을 아는 사람이니 외우면 됐다. 그러나 실기는 그렇지가 않았다.

 

    오늘, 바리스타 수업시간의 일은 예전의 나를, 다시 지금 현재의 내 앞으로 소환시키는, 사소하지만, 내게는 심각한 사건이었다. 


    한 사람씩 나가 머신을 다루어 에스프레소 4잔과 카푸치노 4잔을 추출하여 15분 시간 안에 제출하여 60점 이상이면 바리스타 2급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다. 처음 기계를 다루어 커피를 내리고 우유 스티밍(거품을 내는 것)을 하는 것은 당연히 서툰 일이다. 모두들 처음부터 잘하지는 않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카푸치노에 라떼아트를 그리는 마지막 관문까지 가게 된다. 한 사람씩 나가서 시연을 해야 하는데, 같이 배우는 학생들 10명은 차례를 기다리며 지켜본다. 먼저 에스프레소 4잔을 추출하여 쟁반과 잔에 받쳐 시험과 똑같이 “실례합니다. 주문하신 에스프레소 4잔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멘트와 함께 찻잔을 내려놓고 돌아와 다시 카푸치노 4잔을 준비하여 ‘에스프레소’를 ‘카푸치노’로 바꿔 멘트를 하고 간단한 청소를 하면 시험은 끝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기계 앞에 서서 시작만 하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게 되고,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별 것이 아니라고, 까짓것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해도 소용없다. 안정이 되지 않는다. 어제까지는 시간 안에는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별 실수 없이 끝을 맺었다. 물론 준비된 커피를 내려놓는 과정에서 찻잔을 내려놓지 못할 정도로 손이 떨렸다. 나이 먹은 분이 놀리긴 했지만, 그냥 웃고 넘어갈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만 커피 양도 확인하지 못하여 다시 추출한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그만 우유 스티밍을 하다가 손을 기계에 부딪쳐 손가락에서 피가 흘렀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면서, 피를 닦아가면서 마지막까지 하기는 했지만, 마음이 착잡했다. 벌렁거리는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내려놓는 내 자신이 참 초라하고 불쌍했다. 다른 사람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훨씬 어린 사람도 비슷한 사람, 그 누구도 나처럼 덜덜 떨지는 않았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떨린다고는 했다. 그렇지만 나처럼은 아닌 듯싶었다. 물론 나보다 더 떨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 같았으면 정말로 당황하여 끝까지 마치지도 못하고 혼자 남몰래 눈물을 찍어 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렇지는 않고, 내가 왜 그렇게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서투른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좀 창피하지만, 나를 바보라고 멍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남보다 못하는 것이 있고 또한 내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애당초 사람들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는데 서투르다. 남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일이, 내가 썼던 글을 읽거나 손을 들고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는 일들이 늘 곤욕스럽다. 나이를 많이 먹고 대학을 갔지만, 나이 하고는 상관없이, 남들 앞에 서면 가슴이 두 방망이질을 해 대는 통에 밖으로 나온 내 목소리는 사시나무 떨듯 떨기 일쑤였다. 사람들 앞에 서는 일들의 반복으로 말하는 데는 어느 정도, 가슴을 진정시키고 하고자 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완전하지는 못 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떨리는 음성이 나온 후 차츰 안정을 찾게 되지만, 또 ‘그렇지만’이 붙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친한 친구와 대화하듯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되지 않을뿐더러 말의 속도는 빨라지고 숨이 차 오르며, 무엇보다 동사의 선택이 어려워 용두사미의 문장이 된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가끔은 이런 내 모습이 어색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행동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가난해서였을까. 어디를 가든 당당한 적 없이, 귀퉁이로, 끝으로, 뒤로 숨으려고만 했다. 무슨 일이든 늘 내가 미안했다. 내가 잘못했어도 미안했고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미안했다. 다른 사람이, 내가 무언가 하는 양을 본다는 것이, 내가 팔을 올린다거나 발을 든다거나, 짐을 들어 올리는 행동을 하는 나를 본다는 것이 나를 못 견디게 했다. 기차를 타더라도 고속버스를 타더라도 절대로 짐을 짐칸에 올리지 않았다. 꼭 내 옆에 놔두고 행선지로 향했다. 짐을 들어 올리는 내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물며 몸을 흔들어 춤을 춘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꿈에서조차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른이 되었을 때, 야외 광장에서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추체 할 수 없이 흘러내렸던 눈물이 생각난다. 한없이 부럽고,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켜켜이 쌓인 서러움이 꺼억꺼억 터져 나왔다.

 

    왜 그랬을까? 왜 나는 타인의 눈을 이렇게도, 멍청하리 만큼, 주인에게 복종하는 개처럼 맹종하고 의식했을까?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한없이 미워했다. 서른 살까지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 공부를 시작해서 책을 읽고 생각하고 배우면서, 남편을 만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어디를 가든, 어떤 모습이라도, 누구 앞이라도 당당한 사람으로 설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지나치게, 내 마음을 해치면서까지 의식하지는 않게 되었다. 가난하든 부자든, 돈이 있거나 없거나, 많이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무엇에도 상관없이, 하늘 아래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나치게 굽었던 어깨와 허리는 쫙 펴졌고, 웃어도 어둡게 그늘이 졌던 얼굴도 구김살 없이 환하게 피어났다. 


    사람들 앞에서 내 몸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글이나 말로 사람들 앞에 나서기는 했지만, 자존감을 회복했지만, 여전히 몸을 움직여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준 적은 거의 없었다. 아직 극복되지 않았다. 


    바리스타 수업은 앞으로 이틀 남았다. 두 번 정도 실기시험 시연을 할 터이다. 얼마나 마음을 안정시켜 손의 떨림을 멈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떨지 않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험을 보는 날은 청심환을 먹으라는 권유도 받았다. 그러나 두 번의 시연 때는 결단코 청심환이나 안정제를 복용하지 않을 터다. 눈을 똑바로 뜨고, 나 자신과 세상과, 사람들과 맞짱을 뜰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이, 사람들 앞에서 몸을 움직이는 일들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많은 것들을 경험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결심이 든다. 세상에 무서울 것도,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기껏 바리스타 시연 따위를 무서워할 내가 아니지 않은가. 신기루 같은 희망이 언제나 내 곁에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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