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들을 주워 들고 보니
J에게
요즘은 아침마다 사무실 출근해서 오전에 네게 편지를 쓰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사실 글을 쓴다는 의미에서 나는 무척 기쁘단다. 네게 의무감처럼 편지를 쓰고는 있지만, 결국은 내가 어찌 됐든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니까.
나는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어. 그렇다고 공무원은 아니고 일자리사업으로 몇 개월씩 일하는 공공근로자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책임을 가지고 특별히 하는 일은 없어. 사무실의 잡다한 일들을 한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사무실 일이 또 많은 것도 아니야. 그리고 사람들도 다 자기들 일은 자신들이 알아서 한단다.
너도 경험해 봤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일 없이 그냥 앉아있는 것이 더 힘든 일이지. 다행히 여기에서 이어서 계속 3년은 아니지만 띄엄띄엄 3년을 근무한지라 사람들과는 다들 친한 데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상관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눈치껏 책을 읽거나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들을 가끔 갖는단다. 책 읽기를 좋아해서 망정이지 날마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라고 해봐, 얼마나 힘들겠니. 미안한 말이지만, 나로서는 이런 일을 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적은 돈이지만, 돈도 버는 일석이조, 금상첨화의 직업인 셈이지.
대신, 나는 누가 일을 시키기 전에 먼저 무슨 일이 눈에 띄면 내가 먼저 해 버린단다. 시킨 일이 아닌 내가 하는 일이라 기분도 상하지 않아. 살다 보니까 누가 나한테 뭔가를 시키면 참 하기 싫고 화가 나는데,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하면 기분도 좋고 일도 더 능률적이던데, 아마 너도 겪어보았을 테지. 그리고 나는 공무원이 아니니까, 이 사람들은 공무원이 되기 위해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한 사람들이니 그들과 내가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한 처사라고 나는 생각한단다. 이곳에는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이 많아. 오히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한두 명뿐이지. 가끔, 아주 가끔 이들로부터 소외되고, 상처 받는 상황이 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거기에서 상처를 받지 않으려 노력한단다. 기실, 상처를 받을 필요도 없지. 오히려 여기에서 받는 것들이 많아서 고마운 마음이 더 많단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니.
J야, 어제 글쓰기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실감 나게 하는 일이 있었다고 했지. 10평 원룸에서 살면서 아이 둘을 낳았어. 그런데 둘째를 낳고 병원에서 퇴원한 후, 이모부가 허리디스크로 몸져눕게 되었어. 허우대는 멀쩡한데 허리가 아프니까 꼼짝도 못 하고 누워만 지내는데, 겨우 화장실만 다녔어. 나는 태어난 아기 젖 먹여야지 미역국 끓여먹어야지 큰아이도 돌봐야지, 그런데 거기다 이모부까지 밥을 떠먹여 주어야 했단다. 세 사람이 누워서 나만 바라보는데 정말이지 앞이 캄캄하고, 암담하기만 했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신없이 보내다 저녁에 애기 젖을 먹이려면 미역국을 먹어야 하는데, 밥을 말아 미역국을 떠먹으면, 미역국 속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단다.
물론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 상황을 어디에도, 부모나 형제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지. 그냥 내 몫으로 내가 감당할 몫이라고 생각했어. 어디다 말은 못 하고, 너무나도 힘든 이 상황을 이겨낼 방법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저녁에 모두가 잠들면 혼자 일기를 썼단다. 일기를 쓰면서도 울었지. 지금도 가끔 그때의 일기장을 꺼내서 읽어보는데, 지금 읽어도 눈물이 나오더구나. 그때 알았단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이요,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만약 내가 그때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단다. 그 힘든 날들을 견뎌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이모부는 한 달 정도 그렇게 누워 지내다 혼자서 여러 가지 운동 등 디스크와 관련된 운동 등을 통해 병을 떨치고 일어나 돌아다녔어. 그래, 그랬었다. 지금 네게 편지를 쓰면서도 그때의 일들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J야!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가장 후회하기도 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책 읽기다. 책을 읽지 않았던 때를 후회하고, 책을 읽음으로써 정신적으로 성장한 내 모습이 자랑스럽구나. 너도 지금까지 그다지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다면 내 편지를 받은 나에 대한 예의로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내 희망사항이지만, 실행에 옮겨준다면, 나는 기쁠 것이고 네게는 많은 것들을 선물할 것임을 절대적으로 믿는다. 그만큼 책이란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생각도 깊이 해야겠지. 무조건 책에 맹신하라는 것은 아니란다.
나는 기본적으로 소설, 시, 동화 등 인문학 서적들을 주로 읽는단다. 사회과학이나 철학, 음악, 예술 다방면에 걸쳐 두루 읽어야 좋겠지만, 노력은 하는데, 그렇게는 못 하고 시, 소설을 날마다 읽고 시를 쓰거나 에세이를 쓴단다. 네게도 먼저 시나 소설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에게 공감하고, 같이 아파하고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만약에 책이 읽고 싶다면 네 엄마께 말씀드려. 그러면 내가 네 엄마와 상의해서 책을 골라줘도 되겠지.
J야,
내가 쓰는 편지들이 내 삶을 너에게 고백하는 것 같구나. 그러면 또 어떻겠니. 글을 쓴다는 것이 나를 고백하는 일인 것을. 다만 이 글들이 네게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라. 너무 긴 글이 네게 부담이 될까 저어되는구나. 혹시 그렇더라도 옛날이야기를 읽는다는 생각으로 이 편지들을 읽어주길 바라면서. 안녕.
2021.6.30.(수). 넷째 이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