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J에게 4

너도 나도 한발 한발 나아가다

by 정이음
KakaoTalk_20211230_205856334.jpg


J야, 오늘은 목요일이다. 일주일의 절반이 지났다. 하루가 참 빨리 지나간다. 나이를 먹으니까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 같은데, 너는 나와는 반대로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길게 느껴지는지 모르겠구나. 내가 너만큼의 나이를 먹었을 때는 시간이 빨리 가는지 늦게 가는지 느낄 겨를도 없었던 듯싶은데. 혹시 너도 그럴까.


새 날이 밝아서 너에게 뭐라고 편지를 써야 할까 고민했다. 벌써 내 이야기를 다 해버린 건가, 그런 것은 아닌 것도 같은데. 그러면서 혹여 내가 보내는 편지 분량이 너무 많아서 네가 읽지도 않고, 읽더라도 지겨워하는 것은 아닌지, 네게 기쁨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괴로움을 안겨주는 것은 아닌지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편지가 길든 짧든 무슨 상관이 있겠니. 어차피 너는 네가 할 일을 하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인데. 나는 편지를 쓰면 되고 너는 받으면 되는 일, 혹시 네가 읽지 않아도 그것은 내 소관이 아니라 네 맘이겠지.


J야,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온 듯도 싶구나. 방금 점심을 밖에서 먹고 들어왔는데, 햇볕이 뜨겁고 후텁지근해서 천국인 사무실로 얼른 들어오고만 싶더라. 내가 근무하는 곳은 환경도 참 좋아서 더우면 에어컨이, 추우면 난방기가 쾌적한 환경을 마련해 준단다. 지금 너는 훈련을 받느라 땡볕 아래서 고생고생 그래, 너희 말로 하면 개고생을 하고 있을 텐데, 미안하구나.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흔한 속담처럼 지금 당하는 고통이 너의 마음과 몸을 단련시키고 네 정신을 한층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힘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네 엄마가 내게 너한테 편지 쓰기를 제안했을 때, 별 어려움 없이, 막힘없이 줄줄 쓸 줄 알았는데 쉽지만은 않구나.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너로 인해, 네게 편지를 쓰기 위해 이렇게 머리를 굴리고 글을 쓰려고 노력할 수 있어서, 그리고 글을 쓸 수 있어서 고맙구나. 참, 인간의 나쁜 버릇, 누군가의 강제가 없으면 혼자서는 쉽게 그 일을 달성할 수 없고, 강제력이 동원됐을 때에야 비로소 어떻게든 그 일을 하는 나쁜 습성. 인간이 아니라 나만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라고 일반화하기에는 좀 교만한 것 같구나. 그래, 나로 한정하여, 나로서는 이런 버릇을 이겨내는 것이 쉽지 않구나. 네게 편지를 써야 한다는 강제적 상황이 아니라 자발적 상황을 만들어 계속 글을 쓰는 습관에 길들여졌다면, 벌써 등단하여 ‘작가’라는 작가 호칭을 받고 있지 않았을까.


물론 꼭 ‘작가’라는 호칭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오직 글만 써서 먹고살고자 한다면 등단의 문을 거쳐 작가가 되어야 하고, 남의 강요보다는 나 스스로 글을 쓰는 일이 몸에 배어야 하는 것일 테지. 이것이 현실이니까. 현실과 이상은 거리와 차이가 있으니까. 너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모르겠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경제적인 부담만 없다면 그렇게 살고 싶구나.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살 수가 없는 상황에 직면했어. 내 바람이 좀 요원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발 한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적게 벌고 적게 소비하는 ‘자발적 가난’이 가능했지만, 막상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니, 경제적인 삶을 무시할 수 없게 되더구나. 아이 둘을 키우면서 단 한 번도 학원에는 보내지 않았거든. 큰애는 중학교 때까지, 작은애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어떤 학원에도 보내지 않았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데 주력했지. 그러다 큰애가 미술을 한다고 해서 미술학원에 보내게 되었고, 둘째는 피아노와 복싱 학원을 보내게 됐어. 둘 다 자기들이 하겠다고 해서 보내게 됐는데, 이러다 보니 돈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구나.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거지.


그리고 가만 생각해 보건대, 그 흔한 피아노 학원을 아이들이 어렸을 때조차 보내지 않은 것이 많이 후회가 된다.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은 했는데 내 아이들에게 실행할 생각을 못 했구나. 그래서 요즘은 후회가 된다. 애들을 자유롭게 키운 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는데, 그럼에도 ‘책 읽기’라는 내 의지만을 애들에게 너무 강요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고, 정말 애들이 원했던 것이 따로 있었는데 내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단다.


J야, 너도 너희 부모님이 네게 해 주셨던 것들에서 서운한 점이 있겠지. 그러나 아빠 엄마도 한 사람의 미숙한,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 있는 한 사람,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라. 아니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맞을 것 같구나. 이제 네 나이가 스무 살이 넘었고, 군대에서 고생도 하면서 부모님에 대해 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인데, 이 점을 먼저 생각한다면,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더 견고해지지 않을까 싶구나. 내가 내 아이들한테 해야 할 변명을 너한테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좀 우스운 면이 있긴 하지만, 모든 부모는 다 똑같다는 점에서 출발한다면, 네게도 해당되는 말이 되지 않겠니.


J야, 날씨는 덥고 훈련은 힘들겠지만, 살아 있음의 경험이, 고통이 너를 성숙한 사람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미안하지만, 나는 감히 다시 한번 말하고 싶구나. 이 편지를 받고 읽는 동안만큼이라도 네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기를 바라며, 네가 원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한 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군 생활 내내 견디고 이겨내고 더 나아가 즐거워하면서 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성숙해지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만 줄일게. 안녕!


2021.07.01.(목). 넷째 이모 씀


keyword
작가의 이전글J에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