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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지 못하는 카나리아와 부엉이

어른을 위한 단편 동화

by 오리아빠

작고 노란 카나리아는 아주 넓고 쾌적한 새장 안에서 사는 사교성 좋고 노래를 잘하는 예쁜 새입니다.


색깔이란 게 그렇지만 비슷해 보여도 조금씩 다른데, 그중에 밝고 노란 깃털을 좋아하는 카나리아는 수시로 털을 고르고 가지런히 정리하며, 먹는 것도 항상 예쁜 빛깔을 유지하기 위해 황금처럼 빛나는 고기와 야채, 소스, 음료만 골라 먹었습니다.

그런 카나리아에겐 부엉이 남편이 있습니다. 부엉이는 밤의 황제답게 낮에는 주로 자유와 평화를 외치며 휴식을 했습니다. 그러다 밤만 되면 여기저기서 사냥하고 친구들과 잔치를 벌이며 매일 밤 흥청망청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이웃엔 고약한 뻐꾸기가 살았습니다. 그 녀석은 뱁새 둥지를 찾아 뱁새가 먹이를 구하러 잠시 자리를 비울 때 뱁새가 낳은 알 사이에 자기가 낳은 뻐꾸기 알을 몰래 놔두고 왔습니다. 한마디로 뻐꾸기는 뱁새가 자기가 낳은 알로 착각해 열심히 품게 하는 얌체 같은 기생조입니다.


카나리아는 뻐꾸기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못된 버릇을 고치고 싶어 남편에게 어떻게 좀 해보라고 했지만, 친구들하고 노느라 시간이 없는 부엉이는 바라만 봐도 예쁜 부인에게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 이젠 우리가 왕이야.”라고 했습니다.


숲은 넓고, 새들도 참 많습니다. 뻐꾸기의 행동이 얄밉고 이해되지는 않지만, 보통 새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되도록 싸우지 않으려 합니다. 싸움이라는 게 한 대도 안 맞고 이길 수는 없잖아요?


보통의 새들은 싸우면 '손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카나리아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봄에 뻐꾸기가 들려주는 예쁜 노래를 듣지 못할망정, 얌체 같은 기생조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느라 바쁜 남편이 '부인 마음대로 하세요' 했으니, 부하인 나이 많은 올빼미 장군을 불러 뻐꾸기를 혼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이 많은 올빼미는 "숲에는 지켜보는 눈이 많아요, 한 대도 맞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게 혼낼 방법은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카나리아는 핑계만 늘어놓는 올빼미 장군이 비겁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장군을 바꾸려고 대상을 눈여겨보던 중 시키는 데로 말 잘 들을 것 같은 조롱이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충성심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기 위해 나쁜 일을 시켜 봤습니다. 아무리 명령이라지만, 나쁜 일은 거의 하지 않는데, 조롱이는 장군이 되고 싶은 욕심 때문인지 매사 큰소리로 자신감 있게 대답하며, 시키면 시키는데도 말을 잘 들었습니다.


카나리아는 이제 마음이 놓였습니다. 한 대도 맞기 싫고, 또 숲의 다른 새들 눈치나 보는, 나이 많은 비겁한 올빼미 대신 씩씩한 조롱이에게 장군 자리를 맡기면 머지않아 뻐꾸기의 교활함도 멈추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씩씩한 조롱이가 어린 조롱이에게 먹을 것을 구해오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비바람 불고 날씨가 무척 안 좋은 날이었지만, 씩씩한 조롱이의 호통이 무서웠던 어린 조롱이는 어쩔 수 없이 비행했고, 강물 위를 날 때 날개를 퍼덕일 힘까지 떨어져 강물로 추락해 실종되었습니다.


실종되었던 어린 조롱이가 죽음으로 발견되었고, 그 후 조사에서는 어린 조롱이의 잘못이 아니라 씩씩한 조롱이가 너무 무리하게 호통쳐 그렇게 된 것이 밝혀졌습니다. 해서 씩씩한 조롱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회의가 열렸습니다.


새들은 씩씩한 조롱이가 장군의 자격이 없다며 장군의 자리에서 내려오라 했습니다만, “어린 조롱이의 잘못도 있는데, 그만한 일로 씩씩한 조롱이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다면, 나이 많은 올빼미를 대신할 장군을 어디서 구할 거야.”라며 카나리아가 격노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 격노는 씩씩한 조롱이를 내세워 뻐꾸기를 공격해 전쟁이라도 하려던 계획이 뜻대로 되지 못한 카나리아의 속셈 때문인데, 새들은 카나리아의 검은 속까지는 알지 못했으니, 격노한 카나리아의 비유를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새라고 해서 모두 머리가 나쁜 건 아니었습니다. 그중엔 또 정의롭고 양심 있는 새들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부엉이와 카나리아가 무서워 소리 내지 못했던 양심 있는 새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가 불행해지는 것을 잘 알기에 괴로움을 느꼈습니다.


명령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수행했다지만, 세계 2차 대전 때 유태인 수용소에서 약자를 모두 죽일 뻔했던 한심한 인간들이 역사를 떠올리며, 양심의 가책을 받고 하나둘 무리를 빠져나왔습니다.


계급사회인 새장에서 최고 지위를 가진 새들은 참 살기 편했습니다. 멋진 집에 살고, 늘 화려한 옷을 입고 매일 파티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머리를 조아리며 시중을 드는 어린 새들이 있어 손도 까딱하지 않고 살아도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민주적인 시대에 평화와 번영을 위해 큰 일 해달라는 작고 힘없는 새들의 부탁 같은 것이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특권이라고 착각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큰일이 났습니다. 정의롭고 양심 있는, 제복은 입었지만 민주시민의 자격이 충분한 새들 때문에 그동안 감춰왔던 검은 속이 드러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숲에 사는 새들의 아우성이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무서움을 느낀 부엉이와 카나리아는 죽은 듯 조용히 집에만 있다가, 어느 날 밤 작은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미련하게 도망을 계획했습니다.


높이 올라가면 멀리 날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 둘은 숲에서 제일 높은 나무에 올라가 먼 곳을 향해 몸을 던졌습니다.

푸드덕푸드덕,


높은 곳에서 멋지게 날아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그들만의 생각이었습니다. 머리 조아리며 시중 들어준 어린 새들 덕분에 편하게 살다 보니 날갯짓은커녕 종종걸음으로 뛰는 것도 힘들었고, 날개를 퍼덕여 횃대 같은 낮은 가지에 뛰어 올라앉기도 어려웠습니다.

카나리아와 부엉이는 새가 가져야 할 제일 중요한 것, 즉 하늘을 나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훨훨 나는 방법을 잃어버린 그들은 작은 새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작은 돌멩이들이 날아왔지만, 너무 많이 맞은 둘은 길에서 처참하게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어이없게 죽은 그 둘의 주검을 본 다른 새들은 안타까웠는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렇게 크게 될 일도 아닌데, 잘 못 했습니다, 벌 받겠습니다. 했으면 끝났을 텐데, 안타깝구먼,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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