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홍 대표가 하는 일을 좋아한다. 이유는 내가 월드뮤직에 관심이 많아서인데, 나 스스로 더듬더듬 알아가던 각 나라의 민족 음악을 실제 내 눈앞에서 보여주고 콜라보하는 작업을 십수 년째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진행되던 SSBD가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지 심심했다. 그러다 '시나위 스펙트럼'을 한다기에 기쁜 마음에 놀라게 해 주려고 조용히 예약하고 갔다.
첫 무대는 남자 플라맹꼬 댄서 '알렉산드로'가 스페니쉬 기타와 김주홍 감독의 노래, 구음에 맞춰 춤췄다.
20년 전 세종에서 '호아킨 코르테스'를 본 후 남자의 플라맹꼬는 참 오랜만이었다. 알렉산드로는 한국에 온 지 오래되었거나 한국을 잘 아는 것 같았다. 플라맹꼬에 동래학춤의 춤사위를 얹은 듯 역동적 동작에 정제된 한국미를 보여줬다.
아쟁산조, 최은지
노란 개나리색 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은 흑인 여인이 등장했다. 워낙 본 적 없는 모습이라 눈이 휘둥그레했는데, 김일구류 아쟁산조를 능숙하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분명 최은지라고 했는데?' 옆에 앉은 유 선생은 나보다 정보가 있는지 카메룬 출신의 진도사람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아마 남다른 가족 이야기가 있겠다 싶었지만, 눈 감고 감상했을 때 어떤 편견도 느껴지지 않았다. 멋있었다.
제비 노정기, 마포로그
판소리 하는 프랑스인으로 얼굴이 알려져 방송에서 본 적 있는 마포로그, 우리 소리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다는 것일까? 발음 구조상 한국인의 소리와는 차이가 있지만, 나도 못하는 소리를 하는 모습에 박수를 치던 차에 다음 대목은 프랑스말로 판소리를 했다.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유럽에서 저 소리로 관객의 이해를 돕는 것도 필요한 역할이라 생각이 들었다. 박수 많이 쳤다.
우즈베키스탄 전통음악
중앙아시아에서 중동을 넘어 아프리카 모로코에서도 연주되는 악기 '사즈'와 손으로 들고 치는 '프래임 드럼'(부르는 이름이 하도 많아 정확하진 않다)의 매력에 홀딱 빠졌다.
시작은 우즈베크 전통 민요로, 수만 년 세월이 만들어 낸 협곡에서 사는 유목민족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불을 피우고 음식을 만드는 엄마와 멀리서 말을 타고 돌아오는 아빠의 모습이 몽환적으로 연주되다, 러시아 폴카처럼 비트가 빨라졌다. 나가서 춤을 춰야 하는가 생각이 될 정도였다.
그 밤의 하이라이트, '시나위 스펙트럼'
꿈아, 무정한 꿈아~ 소리꾼 김주홍은 비음에 매력이 있다.그 소리에 날 듯 가벼운 손가락이 가야금 위를 뛰어다닐 때, 묵직한 콘트라베이스가 플라맹꼬를 불렀다. 툭, 하고 던진 어깨가 장구 장단에 올라탔고, 아쟁이 물려받은 소리에 프랑스 구음이 뒤를 받쳐 민족과 언어의 경계가 없는 무대를 만들었다.
내가 물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만나기 힘든 이웃 민족의 음악과 예술을 만났다. 그것도 입장료 1만 원에. 김주홍 대표에게 미안했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