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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누구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가족

by 오리아빠

혼잣말, 신호등을 깜빡하고 질주, 늙어가는 육체.

주인공 윌리는 아이들과 세차하던 추억을 회상하며 평온한 일상을 살려 하지만, 능력과 다르게 방황하는 큰아들 비프와 윗사람이 죽기 전엔 승진의 미래가 없다는 둘째 해피, 그리고 평생 남편이 하는 말을 믿고 따르며 헌신하는 아내 린다의 모습에서 곧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흥얼거리게 될, 나도 비슷한 나이의 아들 둘이 있는 우리 집이 보였다.

지출은 정해져 있지만, 물건이 얼마나 팔릴지, 꿈자리같이 대박 나서 가족들 앞에서 어깨에 힘주고 너스레 떨 수 있을지 세일즈맨은 미래를 알 수 없다.

12시간 일하면 겨우 가능할까?

가장의 무게의 짓눌려 출장과 긴 시간 영업에 지쳐가지만, 불륜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이율배반 속에서 은밀한 사생활을 유지한 윌리.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자식교육으로 갈등이 생겼던 것이 결국 들켜버린 사생활 때문이었던 것을 관객은 나중에 알았다.

"엉터리! 위선자! 사기꾼!"

그러나 무한책임의 가장으로 살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며 신호등 무시하고 질주했던 모습이 간간히 자살을 시도했던 의도된 자동차 사고였는지 모른다.

누구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가족,

도박에서 돈을 잃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늘 큰돈을 따고 유쾌한 일만 있었던 것처럼, 가족은 서로에게 좋은 소리만 했다.


상처 주기 싫고 걱정할까 봐.

쭈그러진 체력에 쪼그라진 수입을 감당하기 힘든 가장은 텃밭에 가족이 먹을 채소의 씨앗을 뿌리고, 결국 자동차 사고로 극단적 선택을 한다.

작품은 극적 연출로 허공에 관을 띄웠고 식구들은 울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사라지고 혼자 남은 린다가 이렇게 절규했다.

"대출도 다 끝났고, 자유로워졌는데, 아무도 없어요, 엉엉..."

4.19에 노원문화예술에서 열린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초대받은 모임에 첫 상견례 성격의 단체 관람이었다.

'극단 즐거운 사람들'의 대표이자 노원에서 마을공동체 활동으로 존경받은 김병호 선생님이 오남에서 예술가의 연대를 끌어내며 손잡아 주신 것 같은데, 덕분에 관록의 배우 박근형, 손숙 님의 명품 연기를 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죽을 맘은 1도 없는 화창한 날, 날씨 좋으니 모종 몇 개 사다가 양동이 텃밭에 가족의 미래를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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