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염 때문에 야채 주스가 가득든 유리 잔을 들고 걷는 것 같은 불안한 몸 상태였으나 '굿바이 햄릿'은 꼭 봐야 할 공연이었기에 '똥트라볼타'를 각오하고 약을 한 줌 털어 넣고 대학로 '시어터 쿰'을 찾았다.
만약 햄릿을 정극으로 봐야 했다면 그닥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웬만큼 아는 내용이고 무엇보다 내 교양 수준이 배가 찢어지는 코미디에 열광하는 정도이기 때문인데, 굿바이 햄릿은 '굿' 과 '햄릿'이 만나는 블랙코미디라고 해서 냅다 직진했다.
주인공 무녀는 20년차 작가로 햄릿 같은 명작을 써 보고자 세익스피어를 공부하고 연구하다 미치는 지경까지 가게 되어 무당으로 입문하여 굿판 무당 10년을 병행하였다는 데, 세익스피어와 접신을 시도하며 영감을 얻으려 한다는 설정에서 연극은 시작하였다.
100석이 조금 넘는 소극장이니 무대가 넓으면 얼마나 넓겠는가? 그 좁은 무대에 햄릿의 중요 출연자와 새로 설정된 배역의 출연자, 전통음악 반주를 맏은 악사까지 약 15명 출연자가 각자 배역을 연기하며 잔잔한 웃음과 감동을 주었는데, 굿판을 주도했던 무녀, 부산사투리 심하게 쓰는 도깨비, 민머리 햄릿, 우쿠렐레를 매고 나온 오필리어, 나사가 많이 풀린 햄릿 아빠, 몸쓰는게 아주 요염한 햄릿 엄마, 호색한 햄릿 작은아빠, 은근한 껄떡남 오필리어 아빠, 말 더듬는 오필리어 오빠의 등장에 내 인생에 100분 이라는 시간이 순삭 되었다.
햄릿의 배역들이 말했다. 자기들은 현실속에 살았고 세익스피어를 만나 스토리를 불러줬을 뿐인데, 자기들은 죽어 구천을 떠돌고 남 이야기를 도둑질한 도둑놈 세익스피어는 연금 챙겨 한동안 잘 살더라고?
무당은 초혼(招魂)으로 초혼(初婚)의 의식을 열어줘 둘을 합방시켜 원과 한을 풀어주고 가문간 원한도 사슬을 풀고 모두 저승으로 가길 원했으나 지금은 여자도 살만한 세상이 되었으니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오필리어와 '남느냐 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또 고민하는 결정 장애자 햄릿 때문에 한동안 재밌는 상황이 더 펼쳐졌다.
햄릿에 굿이라는 콜라보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던 것 같다. 과거의 작품들을 본적 없지만 기사를 보면 기본 줄거리에 진오귀굿을 올려 각광 받았다 하던데 이번 작품은 코미디까지 더해 아주 심한 낯설게 하기를 보여줘 감동을 줬다.
나도 뭔가에 집중할 때 접신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긴 했었다. 무의식이 가져온 선물인지 진짜 접신을 했던건지는 알 수 없으나 마감에 쫓기는 원고나 기획서 제출, 정산이 그렇듯 그럴 때면 놀라운 집중력으로 시간 맞춰 펜을 집어 던지고 마무리 한 적 있는데, 접신하듯 창의적인 발상과 구성, 진도 씻김까지 더해 만든 작품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서양풍 다시래기' 같았으니 소극장에서 보기 아까운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은 어제가 첫공이고 31일이 막공 이라는데, 들리는 소문에는 전석 매진이라는 것 같다. 아무래도 민원을 넣어 연장공연을 추진해야 하는것 아닌가 싶다.
** 딱 지금 시간이 공연 끝난 시간인데, 극장 근처에서 어제처럼 뒷풀이 하고 계실 배우님들, 매우매우 격하게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