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할 뻔'자가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생겼는가 생각해 봐도 못 배워 그런가 도무지 기억나질 않았다. 하여 구글에 물어보니 '나무목, 사내남, 계집녀, 나무목' 해서 '수풀림자 사이에 남녀'가 있는 옥편에도 검색되지 않는 한자가 떡 하니 나타났다.
'뻔할 뻔'
어제는 10월 31일이라 쓰고 '잊혀진 계절'의 날이라고 써도 되는 그야말로 새로운 뻔할 뻔자가 난무하는 날이었다. 매일 새날이 밝으면 동생들 착하게 살라고 카톡 주시는 동네 바보형도 새벽부터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 유튜브 소스를 링크 걸어 분위기를 잡으셨는데, 옛날 같으면 '길보드차트'를 운영하던 길거리 리어카에서도 하루 종일 울려 퍼졌을 것이고, 라디오엔 노래에 실린 저마다 사연이 방송을 타고 흘렀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흘러 새로운 소통공간이 된 SNS에는 진화된 카메라 기술로 누구나 사진작가가 되어 저마다의 사연과 더불어 붉고, 노오란 나뭇잎을 배경으로 한 가을 사진으로 도배해 가뜩이나 가을이면 떠나지 못해 한이 된 내 가슴을 벌렁거리게 했는데, 그림의 떡이기도 하고 또 과하면 모자라니만 못 한다고 여기저기서 가을가을 하는 꼴이 못 마땅해 "10월의 마지막 밤을 그렇게 지내면 어쩌냐"라고 안타까워하는 소리를 무시하고 핸드폰 쑤셔 넣고 일찍 잤다.
그렇게 뻔한 가을밤을 보내고 맞은 새벽, 아가들 맛있게 먹을 먹거리 들고 배송 다니는데 비가 왔다.
비구름 때문이었나 여명이 달아난 새벽, 뒹굴던 나뭇잎은 내리는 비를 맞아 모두 얼음이 되어 아스팔트에 납작 붙어 버렸고, 간간히 영업 중인 편의점 좌판은 흥청거리는 손님을 잃고, 바람 빠진 불기둥 간판은 조등처럼 조용히 낮게 앉아 불빛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내 입에선 짜짜로니처럼 자연스럽게 '가을비 우산 속'이 흘러나왔다.
오늘 11월 1일의 뻔할 뻔자는 '가을비 우산 속'으로가 예고되어 가을은 비를 타고 우산 속으로 들어왔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린이집 문 앞에서 비번을 누르는데 열리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생각해 보니 내가 누른 비번은 우리 집 비번이었다.
나는 가을타령 안 해야지 했는데 노래 부르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 길을 잃고 정신을 잃게 할 정도로 감성적인 비 오는 가을날, 낮술 타령이 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