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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아빠 Oct 25. 2023

으르렁

포르쉐의 진심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고 내 차 쪽으로 걷는데 시커먼 차 한 대가 어둠 속에서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마치 어두운 덤불 속에 웅크리고 앉아 무심코 지나가는 닭의 목덜미를 물어갈 살쾡이처럼, 음습한 구석에서 시동을 켜고 으르렁 거리고 있으니 마치 내가 닭이 된 것 같아 기분이 굉장히 언짢았다.


가만 보니 포르쉐,


시커먼 무광택 칠을 했으니 나름 스텔스 기능도 있을까 싶은 비싼 차였는데, 언제 누구한테 들은 우스갯소리지만 스텔스 도색을 한 차는 음주 단속이 보이면 멀찍이 차를 세우고 중립 주차 된 차를 밀듯 도로에서 밀고 가면 경찰 눈에도 안 띈다나? 그 허풍 같은 소리를 들었던 그런 차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길을 가야겠기에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는데, 마침 그 차도 출발해 어쩌다 보니 내 뒤에 붙었다.


어라?


지하 주차장에서 지상으로 가기 위해 경사면을 오르는데 으르렁 소리가 더욱 켜졌다. 긴장과 언짢음에 신경을 바짝 세우고 들으니 그 소리는 차의 개조된 머플러, 즉 배기구 소리였고 지하공간이라 공명되어 더 크게 들린 것이었다.


붕.붕.붕.붕~


왜 그렇게 운전을 신경질적이고 터프하게 하는지 지상으로 올라와 도로에 올라 선 뒤에도 으르렁은 계속되었고 신호등에 걸려 섰을 땐 내 차 뒤에 어찌나 바짝 붙었는가 후방 접촉센서가 "삑삑" 소리를 내며 추돌을 경고하는 바람에 내려서 멱살을 잡을까 했더니 신호가 휙 바뀌었다.


신호가 바뀌고 골목을 지나 차선이 넓은 대로로 진입하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으르렁은 번개 같은 급차선변경으로 내 차를 앞질렀지만, 고속도로가 아닌 시내에선 신호등 앞에 장사 없으니 백여 미터 달리다 결국 나란히 서게 되었다.


같은 아파트 사람인데 누굴까? 안면이 있는 사람인가? 세대도 많지 않은 아파트에 한 십 년 살았으니 아는 사람도 제법 있어 뚫어져라 봤지만, 암만 얼굴을 뜯어봐도 사회적 시간두기를 평생 해 온 사이처럼 전혀 모르겠는 조카뻘이 핸들을 잡고 있었다.


빨간불 다음 초록으로 신호가 바뀌는 찰나, 초록도 아닌 샤인머스캣처럼 연두가 보일까 했던 순간, 으르렁이 아까 들었던 소리는 애교였다는 듯, 열 배는 될 듯한 소리를 내며 머플러가 찢어질 듯 맹렬하게 달렸다. 마치 미사일이 날아가는 것처럼,


그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보다 보니 화는 사라지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급한 일이 있나? 누가 돌아가셨을까?'


그러나 스타트라인 같던 신호등에서 이백 미터나 갔을까? 갑자기 속도를 줄이더니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싸고 맛 괜찮은 콩나물국밥 집으로 우회전을 했고 지나치며 룸밀러로 본 광경은 더 놀라워 단박에 정면 주차를 마치는 것이었다.


'아~

배가, 고팠구나'


추측해 보니 그 비싼 포르쉐는 오천오백 원 콩나물 국밥이 간절히 먹고 싶어 지하 주차장부터 여기까지 내 뒤에서 으르렁거렸던 것인데, 응급차에 차선 양보하듯 비켜줄 걸 하는 미안한 마음이 아주 쪼끔 들며 철 모르는 동네 청년을 이해해 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 소리는 '으르렁'이 아니고 철부지가 밥 달라고 시위하는 '꼬르륵'이었던 것 같다.


모두 평화로운 가을 날 되시길~ ^^


이미지 출처 https://mblogthumb-phinf.pstatic.net/20090909_89/juni20c_12524657630273iSmE_jpg/0_juni20c.jpg?type=w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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