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조티시즘과 변형된 오리엔탈리즘
몇 년 사이 중국에서 대단히 인기 있는 트렌드다.
여행지에서 현지 사진가를 고용해 스냅사진을 찍는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건 아니고, 여성들이 주로 애용한다.
호호백발 할머니도 화려한 소수민족 복장을 입고 곱게 화장한 채 해맑게 웃는다.
젊은 남자들도 제법 많이 한다.
핵심은 '코스튬'이다.
지역 특색을 반영한 복장을 착장 하고, 메이크업까지 완벽하게 하고 여행지를 돌아다닌다.
보통은 그 지역 소수민족의 복장이거나, 역사적으로 그 지역이 중요한 시점의 복장을 착장 한다.
예를 들어 윈난성 다리에 가면 바이족 복장을, 시안에 가면 당나라 때 복장을, 핑야오 고성에 가면 명, 청대 복장을 입는다.
중국은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이른바 '고성(古城)'이라 부르는 올드타운이 있다.
그 안에서 코스튬은 이질적이 않다.
오히려 수많은 뤼파이 이용자들이 고성의 풍광을 장식하는 요소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경복궁에서 한복 대여하는 것을 생각하면 비슷하다.
그러나 뤼파이를 보는 내 시각은 좀 다르다.
뤼파이를 중국의 역사, 민족 구성과 결합해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인민 해방'이라는 명분 아래 당사자가 원치 않는 지역을 강제 병합했다.
신장, 티베트 자치구 지역이 증명하듯, 이 역사는 중국 내 민족 갈등의 불씨로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민족의 복색, 문화를 관광상품화하는 것은 엑조티시즘(Exoticism, 타문화를 '이국적' 또는 '원시적'으로 대상화하여 관광 상품으로 소비하는 현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소수민족의 문화와 복장을 상품으로 소비하는 절대다수는 중국 내 한족이다.
한족 중심 사회에서 소수민족의 문화가 관광상품으로 소비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신장, 티베트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혹은 은근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과거 투루판에서 만났던 오스만(가명)과 투르크(가명)는 교육, 취업 기회에서 한족을 우선하고 현지의 위구르족을 차별하는 국가 정책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했다.
몇 년 전 샹그릴라 시에서 만난 장족 남성은 장족 전통 복장을 입고 사원 안에서 웃고 떠드는 관광객들에게 맹렬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윈난성 쿤밍에 있는 '운남민족촌(云南民族村)'에 가면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 관련 강령을 볼 수 있다.
위 이미지에 담긴 내용으로 간단하게 번역,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중국) 56개 민족은 모두 중화민족의 평등한 일원으로, 너와 내가 하나 되는 공동체를 구성하며, 누구도 중화운명공동체를 떠날 수 없다." - 시진핑
'중화인민공화국헌법'
"부강하고, 민주적이며, 문명화된, 조화롭고 아름다운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한다"
'중화인민공화국민족지역자치법'
"중화인민공화국은 전국의 각 민족 인민이 공통 구성하는 통일된 다민족국가다. 민족 지역 자치는 중국공산당국가 기본 정치 제도의 첫 번째 항목인 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해 민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기본 정책으로 삼는다."
민족단결일가(民族团结一家)
1. 하나의 노선: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을 굳건하게 한다.
2. 두 개의 수호: 시진핑 총서기를 당 중앙의 핵심, 전당의 핵심 지위로 결연히 수호한다. 당 중앙의 권위와 집중되고 통일된 지도를 결연히 수호한다.
3. 세 개의 불가분: 한족은 소수민족과 떨어질 수 없고, 소수민족은 한족과 떨어질 수 없고, 각 소수민족 또한 서로 떨어질 수 없다. (관계)
4. 네 개의 자부심: 노선에 대한 자부심,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자부심, 제도에 대한 자부심, 문화에 대한 자부심.
5. 다섯 개의 공동 의식: 위대한 조국, 중화민족, 중화문화, 중국공산당, 중국의 특수한 사회주의에 대한 공동 의식
종합해 보면 중국 정부 역시 한족 중심의 사회 구조,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헌법에도, 법률에도, 공산당 강령에도 이 문제를 힘주어 강조한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 장족 자치구의 독립운동과 중국 정부의 탄압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중국 정부는 이 두 곳에서 시작된 분리주의를 막고, 강력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
뤼파이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그렇지는 않다.
평범한 중국사람들은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시안에서 만난 20대 중국 여성은 "사람들은 왜 그렇게 뤼파이에 열광하나?"라는 내 물음에 "그냥 예뻐서 입는데?"라고 대답했다.
헝디엔 영화촬영소에서 만난, 윈난에서 왔다는 소수민족 여성은 중국 송나라 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당장(唐装, 당나라 복장)을 입고 촬영소를 활보 중이던 중드팬 모친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했다.)
심지어 하얼빈에서는 러시아풍도 아닌, RPG 게임에 나올 법한 코스튬을 입고 사진을 찍는다.
이쯤 되면 엑조티시즘이 발붙일 자리가 사라진다.
화려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좋아하는 성향 때문인지, 중국사람들은 뤼파이에 열광한다.
'바이두(중국의 구글)'에서 검색해 보면 각 지역별로 퀄리티가 좋은 뤼파이 업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콘텐츠가 쏟아진다.
일종의 유행으로 보면 된다.
하지만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두 가지 이유로 뤼파이가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일제강점기 민족 말살 정책이다.
일제는 한국어, 한글 사용을 금지하고 교육제도를 손 봐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이른바 '황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한 대대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식민사관을 주입해 역사를 왜곡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등 한국인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악을 썼다.
언뜻 보면 일부 소수민족 지역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사실 '공산당 독재'라는 체재 아래서 나고 자란 사람이 보기에는 자국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볼 여지도 있다.
'자본가의 수탈로부터 인민을 해방한다'는 공산주의 이념에 따라 봉건지주의 지배 아래 신음하던 소수민족을 해방했다는 논리는, 공산주의 체재 국가인 중국 내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민족자결주의의 기치 아래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우리나라 사람 입장에서 보면 부조리한 중국 상황은, 그들 안에서는 모순되지 않는다.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독립 요구는 테러리즘으로 치환될 뿐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논쟁을 벌일 자신이 없다.
토론이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다만, 역사적 경험을 계승해 온 한국 사람으로서 저 상황 자체가 불편할 뿐이다.
두 번째는 동북공정 때문이다.
조선족은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 중 하나로 들어간다.
따라서 조선족의 문화, 언어, 역사는 중국의 문화, 언어, 역사로 해석한다.
고작 80년 남짓한 공동체의 역사를 근거로 우리나라 고유문화, 역사에 대한 왜곡과 전유(專有)를 시도한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유행은 강제할 수 없다.
중국에서 뤼파이가 유행하는 건 사람들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뤼파이를 사회학적인 관점으로,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불가하다.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본질을 왜곡하는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이 현상은 어떤 기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중국 여행 가서 뤼파이를 보게 되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느낌을 먼저 받게 된다.
그리고 자국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고 사랑하는 중국인에게 감탄할 수도 있다.
다만, 그 이면에는 이런 부분도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