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 원원
2023년 여름, 호도협 티나 게스트하우스에서 그녀를 만났다.
나는 트레킹을 끝내고 리장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녀는 호도석을 보러 내려갔던 사람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트레킹 복장을 착용한 다른 사람과 달리, 그녀는 헐렁한 티셔츠에 펑퍼짐한 청바지, 운동화 차림이었다.
비에 쫄딱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지만 그녀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원원은 거침이 없었다.
처음 보는 나와 아내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다.
그녀는 중도객잔까지 택시를 타고 들어가 티나 게스트하우스까지 이어지는 6km 남짓한 짧은 거리만 걸은 참이었다.
그녀 역시 리장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같은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리자 그녀가 말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도협을 걸었던 택남이와 그녀의 동행 자웨이, 우리 내외까지 다섯 명이 리장 밤거리를 헤맸다.
그녀는 게임 회사의 온라인 마케터였다.
호도협에서 동행했던 택남이는 원원의 삶이 굉장히 부러운 듯했다.
택남은 고려대학교에서 유학하다가 코로나19 때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 9월 학기에 중국 대학 입학을 앞둔, 푸릇푸릇한 새내기였다.
트레킹을 마친 당일이었지만 청춘은 지칠 줄 몰랐다.
라이브 바에서 2차까지 마친 원원은 자웨이와 택남을 끌고 3차로 향했다.
헤어질 때, 원원이 말했다.
같은 해 11월, 중국을 다시 찾았다.
화산(华山)에 갈 생각이었기에 시안으로 입국했다.
메시지를 받은 원원은 만날 장소와 시간을 알려줬다.
다시 만난 날, 원원은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이 아니라 클럽에 가야 할 것 같은 차림새였다.
원원은 시안의 핫플레이스를 보여주겠다며 종루 뒷골목으로 나를 이끌었다.
서울로 치면 피맛골 같은 곳이었다.
청춘들이 길게 늘어선 줄 끝에 우리도 섰다.
메뉴는 시안 특산, '뺭뺭미엔'이었다.
원원은 국수를 두어 젓가락 덜더니 나머지를 모두 나에게 밀었다.
... 이 새끼가???
하지만 난 배가 고팠기에 속으로 웃었다.
원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난 답을 줄 수 없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산업 구조도 급변하고 있다.
평생직장 개념은 IMF 이후 진작에 사라졌고, 이제는 회사와 개인의 계약 관계가 보다 선명해지고 있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경제 구조 내에서 자신의 필요성, 유용성을 증명하지 못하면 암담한 미래를 마주하는 시대다.
그래서일까?
회사에 구속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디지털 노마드는 선망의 대상이다.
평균적인 생활 수준 상승, 워라밸에 대한 인식, 여가 시간과 여행 수요 증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업무 환경.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실제로 가능한 삶인 듯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원원은 하루가 멀다고 중국 전역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올렸다.
위챗 개인 페이지에 올라온 원원의 표정은 늘 화사했다.
하지만 시안 종루 뒷골목에서 본 그녀의 미간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는 원원은 불안해 보였다.
아직 그 삶을 경험하지 못한 택남은 원원을 선망한다.
하지만 디지털 노마드는 삶의 방식일 뿐, 목표가 아니다.
핵심은 그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자신의 직업과 전문성이다.
내가 세계 어디에 있어도 나를 찾는 수요가 있도록 삶을 설계하는 것.
선후 관계가 바뀌면 디지털 노마드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