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과 너의 세상
영화의 시작은 삼행시 클럽의 해단식으로 끝난다. 고등학생이 삼행시 클럽이라니. 심지어 해단식까지 하다니. 하찮으면서도 귀여운 클럽이 아닐 수 없다. 밴드부라던지 아니면 영화동아리라던지 그런 평범한 클럽활동이었으면 3명이 이만큼 친밀했다는 것을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인들에게 삼행시 클럽 만들건데 같이 할 사람이라고 물어보면 얼마나 될까? 이들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또 얼마나 취향이 잘 맞았는지를 잘 표현해준 소재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의 경우 어떻게 보면 강제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스케쥴로 생활하기 때문에 취향의 차이가 있더라도 가까워질 수가 있다. 하지만 취향이 이토록 잘 맞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해단식을 같이 하는 것을 보더라도 이들의 취향이 얼마나 딱 맞아떨어지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이토록 가깝던 세 친구도 고등학교 졸업 후 점차 멀어진다. 정희는 알바를, 민영은 대구로 대학교를, 수산나는 미국으로 대학교를. 그래도 화상통화를 통해 가끔 만나지만 어쩔 수 없이 멀어질 수 밖에 없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같은 테크트리를 탄다고 볼 수 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모두 같다. 굳이 따지자면 예고나 공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는 각자의 길이 너무나도 달라진다. 정희처럼 바로 일을 시작하기도 하고, 수산나처럼 유학을 가기도 한다. 민영처럼 다른 지방으로 대학교를 가기도 하고 혹은 자신이 살던 곳에 있는 대학을 가기도 한다. 19살과 20살. 단 1살 차이이다. 100세 인생이라고 치면 고작 1%밖에 안 되는 1년에 각자 나아갈 방향이 달라지게 된다. 사실 그러다보니 점점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편입 준비때문에 교수에게 성적관련 문의 메일을 보내는 민영을 정희가 100프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또 민영도 정희가 왜 그런 알바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은 이해심이 많고 적고를 떠나 자신이 겪지 못한 일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수산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민영이 정희에게 모된 말로 알바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것도 민영이 나빠서라기 보다 민영의 시각에서 그 알바는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각자의 세상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3명 모두 자신이 겪지 못하고, 자신이 겪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일들로 인해 서로 서먹해지고, 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세상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서로의 대화가 예전 고등학교 시절처럼 많아진다면 아마 조금씩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점점 각자의 세상에 대해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영의 세상은 어떤지, 정희의 세상은 어떤지, 수산나의 세상은 어떤지. 또 각자의 세상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다. 성적표를 준 정희와 성적표를 받은 민영. 그리고 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수산나. 최소 정희와 민영의 관계는 정희가 민영의 집에 놀러갔을 때와는 다르게 흘러갈 것 같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이토록 솔직한 성적표를 받은 민영은 정희에게 어떤 메일을 보낼까. 교수에게 보내듯 구구절절한 서론을 거친 장문의 메일일까 아니면 본론부터 얘기하는 짦은 메일일까. 개인적으로 삼행시로 보내는 메일이었으면 좋겠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비 오는 날 자전거를 타는 민영과 정희의 모습이다. 비 오는 날 자전거를 타는 이유도 그렇게 하면 수영장에 가는 느낌이라니. 또 뭔가 축축하고 어두컴컴한 비가 아닌 꽤나 밝아 보이는 비라서 더 마음에 들었다. 비오는 날 자전거를 한 번 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