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범이와 금명이
영범이와 금명이의 이별 순간. 서로는 서로의 미안함을 전달하면서 마지막을 맞이한다. 영범이는 끝까지 금명이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지만, 너무나도 큰 외부의 문제로 실패로 끝났다. 이런 선택을 한 금명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먼저 끝내자고 말을 꺼낸 금명이의 마음은 최소 영범이만큼 아니 영범이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영범이 자체가 나쁜 사람이었더라면 금명이는 덜 힘들었을 것이다. 서로 사랑을 하는 혹은 했던 관계가 완전히 뒤틀려버린 것이었더라면 금명의 선택은 오히려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하는 말에 대한 영범의 반응이 이미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금명이는 훨씬 어른스럽게 힘들고 슬픈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영범에게 말했을 것이다. 금명이는 분명히 자신이 하는 말의 무게감이 어떤지를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오열하는 영범 앞에서 금명이는 울먹거리지고 눈물을 흘리지만 애써 담담하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던 것 같다. 아마 금명이는 영범이가 조금 덜 슬펐으면 하는 마음에 그리고 이 말은 결국 내가 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터질 것 같은 마음을 꾹 참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금명이도 아마 영범이 못지 않게 홀로 눈물을 많이 흘렸을 것이다.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금명이 짓는 약간의 미소는 이 둘의 마지막을 더 감정적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보통 이별을 한 후, 전 연인을 마치 악마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욕을 하고, 최대한 상처주는 말을 하고, 차단을 하고. 하지만 모든 이별이 이렇지만은 않다. 영범이와 금명이처럼 서로의 미안한 점을 말해주며 아름답게(슬프지만) 하는 이별도 있다. 영범이와 금명이는 7년이라는 시간을 같이 보냈다. 서로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연인이었을 것이며 가장 친한 친구였을 것이고 가장 믿음직한 동료였을 것이다. 이들에게 서로를 존중하면서 끝내는 이별을 어찌보면 당연하다. 헤어지는데 걸린 1년의 시간은 7년이라는 시간을 하나씩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사랑을 했던 관계라면 어느 누군가의 큰 잘못으로 인한 이별이 아닐 경우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첫 만남에는 예의를 차리고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쓴다. 영범이와 금명이의 첫 만남도 그랬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첫 만남 순간도 그랬을 것이다. 마지막도 그래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보지 않을 것이라고 못되게 대하는 것은 여러 순간을 같이 나눴던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범이와 금명이도 그동안 마음에 안 들었던 것, 단점들을 쏟아내지 않았다. 특히 금명이는 영범이에 대해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점들은 마음속에 숨겨놓고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로 끝내다는 것에서 둘의 마지막은 성숙한 마지막이라고 볼 수 있다.
극 속 영범이와 금명이의 관계의 끈은 잘라진 것이 아니라 풀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잘라내고 싶어 억지로 가위를 들고 잘라낸 것이 아닌 세게 묶여있던 매듭을 하나씩 풀어낸 느낌이다. 물론 영범이는 매듭을 풀기 싫었겠지만 금명이가 매듭을 천천히 풀었을 때, 영범이도 금명이를 도와 하나씩 풀어냈을 것이다. 단단한 매듭으로 하나가 되었던 끈이 각기 다른 두개의 끈이 되어버리고, 그 끈은 또 다른 끈을 찾아 단단하게 매듭이 지어졌다. 잘라냈더라면 이들의 추억은 잘라낸 끈의 길이만큼 없어졌을 것이고, 잘라낸 날카로운 단면만큼 서로에게 날카로운 감정만 남아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금명이의 결혼식에 갔던 영범이의 마음이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영범이에게 금명이의 결혼식은 전연인의 결혼식이라기보다 마치 과거 앨범을 다시 펼쳐보는 그런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