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의 속성

사다리탈출기

by 바라

우리는 지금 무수한 경쟁의 사다리가 세워져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학생들은 시험에서, 회사원들은 승진과정에서, 운동선수들은 출전하는 대회에서 각자 경쟁의 사다리를 치열하게 올라가고 있다.


사다리는 몇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1. 높이 올라갈수록 보상이 많아진다 - 높이 올라간 사람이 얻는 부와 명예는 무지막지하다. 일례로 회사원의 경우 사장이 된 사람은 엄청난 연봉을 얻음과 동시에 회사 안과 밖에서 큰 명예를 얻게 된다. 운동선수로 보면 대한민국에서 축구 사다리 중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손흥민 선수도 엄청난 부와 함께 국가대표 주장으로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명예를 가지고 있다.


2. 높이 올라갈수록 한 칸을 올라가기가 더 어려워진다 - 학창 시절 '9등급에서 3등급으로 올라가는 것보다 96점이 100점이 되기가 더 어렵다'라는 말을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9등급에서 3등급을 가기 위해선 적절히 쉬운 문제들만 학습하면 된다. 하지만 94점이 꾸준히 100점을 맞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갖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경우의 수들을 고려하며 공부를 해야 하고, 그 과정을 인내할 수 있는 끈기도 요구된다.


3. 언제나 내 윗 칸에는 사람이 있다 - 경쟁의 사다리 중 가장 꼭대기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다. 즉, 그 한 명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내 위에 누군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4. 사다리 칸의 넓이는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진다 - 사회의 시스템은 피라미드와 같이 짜여 있다. 어떤 회사, 어떤 조직을 가더라도 상급자의 수는 적다. 군대에서는 별을 단 사람의 숫자가 극히 적고, 회사에서는 회장의 수가 제일 적다. 반면 군대에선 일반 병사의 수가 제일 많고, 회사에선 일반 사원의 수가 제일 많다.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이 사다리를 어떤 모습으로 타는지 상상해보자. 두 팔은 사다리를 잡고 있고, 두 다리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팔보다 아래쪽의 사다리 칸을 밟고 서 있다. 이렇게 사다리를 잡고 오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등 뒤에 있는 세상을 보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그리고, 위쪽을 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위로만 시선이 향해있을 뿐이어서 아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볼 수 없게 된다.


이제 사다리의 속성을 우리의 삶에 대입하여보자. 사다리를 오르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윗 칸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위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부, 명예를 누리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사실을 안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은 더 위로 가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러나 냉혹하게도 높이 위치한 칸일수록 한 칸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인내, 그리고 희생을 요한다. 나아가 윗 칸은 내가 현재 위치한 칸보다 훨씬 좁다. 따라서 내가 앉아있는 칸에 위치한 사람들 중 누군가는 어떠한 희생을 하여도 절대로 윗 칸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경쟁을 하게 된다. 어떤 사다리를 타고 있느냐에 따라 경쟁 과목은 달라진다. 경쟁 과목은 시험일 수도 있고, 상사로부터의 고과 평가일 수도 있고, 국민들의 투표일 수도 있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 번째로, 내가 올라가고자 하는 칸이 높을수록 나와 같은 칸에 위치한 사람들은 괴물일 확률이 높다. 밑에서의 잔혹한 경쟁들을 모두 뚫고 올라왔기에, 능력, 인내심, 노력, 사회성 등 수많은 자질들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더 큰 능력, 더 좋은 사회성, 더 큰 인내심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어느 과목을 택하든 내가 가고자 하는 사다리 칸이 위쪽에 위치해있을수록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아마 그 포기해야 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당신의 건강일 수도 있으며, 당신의 양심일 수도 있다.


윗 칸에 있는 달콤한 보상들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 칸으로 가기 위해서는 갖추고 있어야 할 것과 희생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는 사다리의 위쪽만을 바라본 채 사다리를 열심히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더 높이 가려고 할수록 내 경쟁자들은 더욱 무시무시해졌으며, 내가 포기해야 하는 건강과 자유는 커졌다. 경쟁의 사다리의 측면에서 보면 나는 더 위로 올라갈 재목도 아니고,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포기하고 싶은 사람도 아니었다. 난 경쟁의 사다리 위에서 패배한 사람이었다.


패배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패배한 사람은 그냥 내가 앉아있는 칸에 만족하며 '그래 여기까지 올라온 게 어디냐'라고 되뇌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 칸에 위치하고 안주한 순간 나는 그저 사다리에 종속된 인간일 뿐이었다. 나는 사다리에 종속되어 살기 싫었고, 패배한 전장에서 철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사다리에서 탈출하기로 했다. 사다리를 내려와 뒤를 바라보니 여기저기서 사다리를 세우고,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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