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그만큼의 나였다

by 별이 빛나는 아침


여러분은 후회한 적이 있는가? 크든 작든, 모든 인간이 겪어본 생각일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후회하고, 현재를 후회하며, 미래를 후회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내 기대에 못 미칠 때, 우리는 후회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대를 품었던 사건시가 언제냐는 것이다. 과거에 벌인 일에 대해 현재에 기대를 갖고 후회하는 것과 과거에 기대를 갖고 벌인 일에 대해 현재에 바라보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오늘은 이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보자.

어떤 날은 차분하고, 차분하다 못해 모든 감각과 욕망, 오늘 해야 할 일이 나를 붙잡지 못하고,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날이 있다. 내 감각신경과 영혼이 시공간에 넓게, 얇게 펴져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하나로 묶는다.

고3 때, 정신 차린 지금 보자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남자가 있는데, 해야 할 바가 명확한데, 아마도 그 자신도 알고 있을 사실이 게으르고 둔한 그의 육체에 갇혀 움직이지 못한다. 그를 보면 울리는 소리가, 네가 조금만 잘했으면, 열심히 했으면 지금의 내가 달랐을 것 아니냐? 그리고 화면이 바뀌어, 그 외에도 다양한 모습이 나타나 내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바라본다.

나에게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있다. 맞는가?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현재의 나는 말대로 이 순간의 나이며, 과거의 나는 내 기억 속의 나, 특히 강렬한 감정을 내뿜는, 위에서 말한 예시가 대표적일 것이다. 미래의 나는 이러한 과거를 안고, 현재의 내가 만들 수 있는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이다. 이 생각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이다. 현재가 과거를 메고, 끊임없는 미래의 여정에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여정에는 지도가 필요하며, 우리는 지도를 그리며 미래를 설계한다. 그렇게 나의 경유지라든가, 종착지 같은 목표를 설정하는데, 때문에 우리는 '기대'가 필요하다. 이것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목표로 하므로 이에 요구되는 특정한 기대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돈을 많이 버는, 그리고 명예가 있는 직장을 목표로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좋은 대학교에 가야겠지. 물론 요즘 SKY에 간다고 해서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마저도 못 가면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쉬울 리는 없을 것이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좋은 내신 성적이나 좋은 수능 점수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미래의 나를 그리며, 그 목표를 기준으로 수많은 기대를 파생시킨다. 그리고 그 기대가 가리키는 곳은 하나이다. 어디인가? 바로 과거의 나이다. 과거의 내가, 이러지 못해서, 이렇게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화살은 과거를 가리키고, 우리는, 내가 고3 예시를 든 것과 같이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수많은 과거와 마주친다. 후회, 슬픔, 분노, 자책. 이런 종류의 감정이 섞여 기억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과거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현재의 내가 미래라는 산을 오르려고 하니, 어찌 무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필히 험난한 길인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 자세히 과거의 나를 관찰해 보자. 과거의 나는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고3 때 정신 차리고 공부할 수는 없었을까? 나는 이 질문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 정신을 차렸는지 생각해 보자. 대학교 들어가고 세상을 체험하며, 여실히 느끼며 정신이 든 것 아닌가? 그렇게 얻은 정신을, 책상에 앉아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수험생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겪은 경험이 다르며,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가 다르며, 그렇기에 떠올리는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다. 기존의, 주어진 정보와 주위의 환경이 조합되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과거의 나는 그때의 과거까지의 정보와 환경을 토대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나는 더 할 수 있었는데, 운이 안 따랐을 뿐이다."라고. 비겁한 변명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망상이 우리를 나약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나는 그 수준이었다. 과거의 내가 최선을 다해 도출한 결과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현재를 보아라.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지금의 나는 끓어 넘치는 열정, 몰입할 수 있는 능력, 매일매일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이것은 내 선택의 결과이며, 이는 나의 발현이다. 과거와 비교하여, 나는 이렇게 발전했으며 미래를 꿈꾸고 있다. 과거를 보자. 현재와 비교하면 초라하고, 나약하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인가? 과거로의 여행을 떠났을 때 마주한 그이는 진정 누구인가? 바로,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아무리 부끄럽고, 수치스러울지라도, 그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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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에게 조심히 다가갔다. 교복을 입고 있고, 어딘가 힘이 없는 모습의 사내에게 말이다. 나는 그에게 미소 지으며, 손을 건넸다.

고마워. 지금의 네가 있기에, 현재의 내가 있을 수 있었어. 너는 비록 지금은 힘들지 모르지만,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서, 현재의 나를 이루었어. 정말 고마워. 다 네 덕이야.

그때, 그는.... 그는 밝게, 시공간을 초월하여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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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반부에 질문을 건넸었다. 나에게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있다. 맞는가? 이제 여러분은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요."

나에게는 오직 '현재의 나'만이 있다.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우리의 뼈아픈 과거를 만들며, 허망한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현재의 나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한다. 즉, '나'란 과거, 현재, 미래, 삼세(三世)에 존재하는 총체적 자아이며, 오직 현재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이제 우리는 과거에 벌인 일에 대해 현재에 기대를 갖고 후회하지 않고, 과거에 기대를 갖고 벌인 일에 대해 현재에, 자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다. 더 이상의 후회는 없다. 현재의 순간순간 아쉬움은 있을지라도, 우리는 나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나아감 끝에는 미소 지으며, 손을 건네는 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모두가 자신을 알아가는 사유를 하기 바라며,

여러분은 후회되는 일이 있나요? 그때의 나에게 다정한 미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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