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by 별이 빛나는 아침


오늘도 많은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해가 다해가니, 그동안의 나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나를 떠올리는 시간이다. 가끔, 내가 나를 어떻게 떠올려야 할지 헷갈릴 때가 있다. 하나는 내가 내 안에 머물러, 내 두 눈을 창으로 삼아 세상을 보는 것이다. 타인은 모르는 지금, 이 순간에 '나'라는 감각과 함께 나의 눈으로 뒤덮여, 알록달록한 물건과 사람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속에, 오감이 농축되어 끈적하게 엉켜있는, 사치스러운 색을 내뿜는데, 이는 세상에 반사되어 다시 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무한한 자기 인식 속에서, 내가 나를 생각하는 것. 이것이 첫 번째 시야이다. 나머지 하나는, 내가 내 밖에 머물러, 내가 내 안에 있지 않은 것이다. 세상이 바라보기에, 내가 나를, '드러나는' 것을 보는 것. 이것이 두 번째 시야이다.

나는 어릴 때 축구선수가 꿈이었다. 다들 한 번씩 이런 꿈이 있지 않았는가? 학교 점심시간에 축구하면 꼭 한 골은 넣어, 친구들의 칭찬에 어깨를 으쓱이곤 했다. 그리고 축구클럽에 들어가서 나름 전문적으로 배워보기도 했다. 이때 내가 나를 봤었을 때,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라는 점을 찍어왔고, 앞으로 축구선수라는 그림을 그릴 것이었다. 내가 나를 밖에서 봤을 때, 나는 축구라는 운명 속에서, 축구공을 보면서 경기 운용을 고민하는 축구 사내였다. 시간이 흘러, 이 그림은 접어두었다. 대신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학원에 갔는데, 나름 재밌었고, 나름 잘했다. 좋아- 나는 붓을 옮겨 수•과학에 점을 찍었다. 그렇게 나는, 수학과 과학에 매료되어, 약간은 괴짜 같은, 세상이 이진법과 공식으로 나열되는 삶을 그렸다. 과학자가 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고, 멋진 기술을 개발하고 세상에 엄청난 파급을 일으키는- 그런 점을 찍어 인생을 그리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시간이 흘러, 그림은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작품명, <세상 구하기>. 그런 멋진 과학자가 되어, 세상에 가득한 문제를 술술 풀어내는, 세상의 영웅이 되는 이야기. 어쩌면 작가는 펜을 내려놓았을지도 모른다. 뭘 할까- 생각하다가, 인생의 개연성을 찾고자 했다. 음. 이런 스토리면 그럴듯한데? 이렇게 여러 번 스토리를 짜고, 덮어두는 시도를 반복하고 있다. 스토리를 짜기 위해 내가 나를 바라보아야 하는 시각,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으로서의 시야가 두 번째 시야인 것이다.

이렇게 첫 번째 시야와 두 번째 시야를 알아보았다. 전자는 나 그 자체, 개인적인 시야이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가 다른 이와 이야기할 때 내가 내 두 눈으로, 첫 번째 시야만으로 상대를 대하지는 않는다. 상대가 보는 나의 캐릭터, 나라는, 드러난 존재를 보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전자의 나보다 훨씬 큰 '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두 번째 시야에 입각한 '나'를 정해야 하는 것인데, 그동안 인생의 글감을 가지고 어떤 글을 써 내려가야 할지 작가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나와 세상을 바라볼 때 첫 번째 시야와 두 번째 시야는 어려운 것이다. 전자가 지나치면 미래로의 동력이 떨어지고, 후자가 지나치면 내면의 나에게 소홀해진다. 또한 부작용이 있는데, 후회하는 것이다. 내가 <그때의 나는 그만큼의 나였다>에서 말한 것처럼, 내 글감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후회는 적절하지 않은 판단이자, 감정이다.

요약하자면, 첫 번째 시야는 지금 이 순간에서, 나와 내면, 밖의 물건 하나하나를 볼 수 있는 시야이고, 두 번째 시야는 인생 전체의 외적 관점에서 나라는 이야기를 만드는 시야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이 둘의 균형점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이 사유도 뭔가 가다 멈춘 느낌이 드는데, 내가 <사유는 어떻게 삶이 되는가>에서 쓴 형식으로 보자면, 구조에서 기준으로 손을 뻗다가 만 형세이다. 앞으로 이 사유를 완성하여 삶으로 내보내고, 다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가 자신을 알아가는 사유를 하기 바라며,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현재의 나와 인생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가 있는지, 그리고 그 균형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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