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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Jul 20. 2024

너에게 보내는 열 번째 편지

As always



내 시선은 항상 낮은 곳에서 오래 머물렀어.





비행기가 한 시간 지연돼서 지금은 새벽 2시 방콕 공항이야.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시차의 피로감이 몰려오는 중이지.



파타야에서 방콕으로 돌아와서는 다음날 왕궁에 갈 계획을 세웠어. 가기 전날 고등학교 사회교사인 플로이랑 만나서 태국의 정치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90% 이상의 국민들이 왕을 좋아하지 않는 이야기를 아주 은밀하게 들려주더라. 70년 동안 존경받았던 애민정신의 선왕과는 다르게 지금의 왕은 엄청난 논란과 기행을 몰고 다녀 젊은 층에 반감을 품게 하는 존재거든. 하지만 국왕 모독죄가 존재해 최대 15년 형을 받을 수 있어 모두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절대 존엄이기도 해. 한 번은 태국을 여행차 들린 관광객이 국왕의 초상화를 훼손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는 27년형을 선고받고 아직까지도 복역 중이야.


출처 네이버 포토뉴스

호텔로 돌아와서 태국에 관한 영상과 자료들을 찾아봤어. 태국의 역사부터 시작해 왜 트랜스젠더가 많은지, 현국왕의 폭정과 태국 민주화 시위의 과정들을 보고 읽었다. 동남아에 맹주로서 제국주의에 식민지배를 당하지 않았던 왕국, 국경에 근접한 나라들과의 분쟁 속에서 아들을 전쟁에 내보내지 않기 위해 여장시켰던 문화, 죽은 자신의 반려견에게 공군 최고의 지위인 공군대장을 부여한 현 국왕 라마 10세, 부정부패로 얼룩진 정부와 사치를 일삼는 왕가에 대한 분노로 하늘에 치켜든 세 손가락.



영화 헝거게임에서는 가상국가 ‘판엠’의 독재에 12개의 지역구민들이 소리 없는 저항의 표시로 세 손가락을 드는 장면이 나와. 들리지는 않는 저항이지만, 어떤 구호나 함성보다 파급효과가 큰 의미이기도 하지. 하늘을 향해 펼치는 검지·중지·약지는 선거, 민주주의, 자유를 뜻하거든. 그래서인지 왕궁 안으로 입장료를 내며 들어가기가 싫더라. 수백 년간 축적된 짜끄리 왕조의 건축물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현 태국 상황을 알고 나니 오기가 생겼어. 외국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저항이었다고나 할까.



태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6성급 호텔에 묵는 거였어. 물에서 노는 걸 미친 듯이 좋아하는 나라서 시티뷰 수영장이 그렇게 좋더라고. 저녁에 욱이형이 추천해 준 색소폰 펍에 갔어.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충분한 장소라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한국 분들이 많이 오셔서 태국 가수 분이 보고 싶다를 불러주셨는데 많은 사람들의 떼창과 불빛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더라. 비로소 여행이 끝나감을 실감하게 됐어.



10일간의 태국 여행을 마치면서 대표사진을 꼽으라면 난 이 사진을 꼽고 싶다.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따듯한 장면들도 봤지만, 내 시선은 항상 낮은 곳에서 오래 머물렀어. 제대로 된 안전장비 없이 새벽에 모래를 퍼는 인부들, 역 근처에 서서 남자들을 기다리는 워킹걸들, 신문지 하나 걸친 땅바닥에 아이들을 재우며 껌을 팔고 있는 한 어머니. 내게 주어지고,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와 살아내는 이들의 건강과 안녕을 속으로 빌었다.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어 수용의 그릇이 넓어졌고 이해의 범위도 커져 존중의 마음까지 생긴 태국 여행. 시작과 끝은 혼자였지만 그 과정은 결코 홀로이지 않았고 언젠가 다시 만날 인연들로 채우며 또 다른 여행을 기대하게 만들었어. 언제가 다시 온다면 모킹제이가 날아와줬기를 소원해. 그날이 오면 꼭 같이 오자!


From. 방콕 공항에서

한결 :)





p.s 담주는 서울 투어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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