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always
어쩌면 나는 얼룩진 창문을 보며 구름 없는 하늘이 흐리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To.
난 청주에서부터 오는 이모를 카페에서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어. 가족과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 상담심리학 교수인 이모를 이곳까지 모셔 상담을 하기로 했지. 낙관적이고 밝은 성격의 외부생활과는 달리 집 안에서는 끊임없이 비관론자로 변하는 자신이 너무 싫고, 무엇보다 동물과도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믿는 내가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가족과는 왜 대화를 하지 못할까에 대한 좌절감이 가득했거든.
이모를 만나고 2시간 동안 내 마음을 쏟아냈다. 어린 시절 일부터 시작해 여러 사건들을 거치면서 바뀌었던 가치관, 그리고 경험 안에 얻은 철학에 대해서 말하니 묵묵히 듣고 있었던 이모가 젊은 철학자와 대화하는 기분이라고 말씀하시더라. 그렇게 시작한 가족상담에서 4시간가량을 이야기했는데 중간에 아버지가 그러셨어 ‘네가 그런지 상태인지 몰랐다. 이제야 알게 된다’고. 사실 처음 말했던 게 아니라 그동안 쭉 이야기해 왔는데 이제야 들렸던 거지. 허탈감도 있었지만 내 입장을 납득시켰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어.
난 대화를 할 때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생각하고 말을 하는 편이야. 살아온 인생들이 다르니 단정적인 언어를 쓰지 않겠노라 다짐도 하고 어떤 피드백이 나에게 주어졌을 때 수긍하고 그것에 대해서 깊이 성찰해. 돌이켜보면 그런 내가 가족과 대화를 하지 못했던 건 나와 부모를 동일시 여겼던 태도에서 비롯됐던 거 같아.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야 하지 않나? 의 오만은 이해했을 거라는 오판을 낳았고 그게 문제의 원인이었던 거지. 그동안 대화를 이어갈수록 분노가 더 차올랐던 이유는 바로 이 자만에 있었다고 생각해.
상담이 끝난 뒤 술이라고는 맥주 한잔 밖에 못 마시는 아버지가 내게 술 한잔 하러 가자고 말했어. 치킨을 먹으면서, 잔을 부딪히면서 서로의 철학과 사상을 주고받는 시간이었다. 아빠의 유연한 사고와 생각의 깊이에 대해 경청하며 나의 이러한 철학적 원론은 이 사람으로부터 나왔구나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지. 어쩌면 나는 얼룩진 창문을 보며 구름 없는 하늘이 흐리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공활한 가을 하늘을 보며 네게 해주고 싶은 나의 성찰이었다.
From. 얼음이 녹은 아메리카노를 바라보며
한결 :)
p.s 데이트하기 좋은 날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