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As always

by 한결




어둠에 시달려 밤새 잠을 설쳤다. 기상 뒤 흥건한 땀이 지난밤을 말해주듯 과거의 나에게 왜 그러지 못했냐는 자책과 후회의 악몽. 옷을 주섬주섬 입고 1층으로 내려가 계단을 올랐다.


삶에는 크게 3가지 삶이 있다. 살아지는 삶, 살아가는 삶, 살아내는 삶. 내 삶은 에스컬레이터를 타듯 편하게 살아지는 삶보다 계단에 한 발자국 내딛는 살아내는 삶에 더 가깝다. 2층에서는 이게 맞을까 생각하고, 4층쯤에서 왜 오를까를 고민하다, 7층에서는 잠시 쉬어갈까, 9층쯤에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단계적 목표에 모든 근육을 쥐어짜서 10층을 도달한다. 숨을 몰아쉬며 존재함을 느꼈다.


부정적인 생각을 물로 씻겼다. 지금은 살아내야만 한다.




일신상의 사유로 긴급 연차를 쓰겠습니다.



새벽 7시, 팀장님께 톡을 보냈다. 마음의 병인 건지 몸의 병인건지 헷갈려 병원에 갔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의사는 내게 독감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한동안 이곳에 오기 싫어 15일 치의 약을 요청했다.


1리터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쥐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손안에 냉기는 마음의 고통을 이길 수 없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힘들다고 말했다. 당장이라도 집으로 올 기세였던 친구에게 참으로 고맙고 미안했다.


노트북을 켜 업무를 시작했다. 온통 영어뿐인 채팅방은 내게 잠시 현재를 잊을 수 있는 도피처였다.





책을 받고 싶어



정각부터 진동이 울려 수면 모드로 전환시켰다. 회사, 교회, 동네 다양한 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해 주려 연락을 해주는 것에 깊은 고마움을 느꼈지만 사색이 필요했다. 30년의 인생을 돌아보며 난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살아온 삶은 치열했다. 항상 심장이 이끄는 곳을 택했고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했다. 당시에는 눈물 쏟으면서 견뎌냈는데 지금은 눈물의 보상을 하나씩 받는 것 같다.


살아갈 삶을 떠올리면 안정된 감정을 받고 싶다. 받는 것보다 주는 행복감을 느끼는 존재를 만나 퇴근 후 장을 보고 마주 앉아 같이 저녁을 먹고 싶다. 거창함보다 사소함을 조잘이고, 서로의 행복을 존중하는. 문득 내면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무엇을 받고 싶냐는 질문에 답을 했다.





정민님이니까 버틴 거지, 다른 사람들은 절대 못 버텨요.



업무가 과중될수록 사람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C대리에게 말했다. C대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버틸 수 있을까요?라는 회의적인 말을 내뱉었다. 잠시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그 말에 끄덕였다.


아무것도 몰라서 버텼다. 이런 게 사회겠거니, 이런 게 회사겠거니, 이런 게 삶이겠거니 하며 오히려 살아내는 모든 이들에 대한 존경심으로 이겨냈다. 현재진행 중인 이야기지만 이제는 제법 마음을 다치지 않는 법도 터득했다.


묵묵히 밥을 먹던 C대리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을 덧붙였다.



정민님이 버텨줘서 저도 버티는 거 같아요. 그게 제게는 큰 위로예요.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