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As always

by 한결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요?



당근에서 오천 원 주고 산 셔츠를 자랑하던 중 C대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난방비 9천 원, 일주일 식비 만 원, 회사 일 외에 소소하게 이어가는 부업들까지. 그의 눈에는 내 삶이 꽤나 신기해 보였던 모양이다.


예전에 누군가 낭만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젊음의 값어치를 아는 것이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마흔이 넘어 해외여행을 가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건 주책일지 몰라도, 이십·삼십 대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젊음을 방패 삼아 여러 경험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시기. 남이 입던 셔츠를 입는 것도, 냉동 김밥을 데워 먹는 것도, 그렇게 아낀 돈을 차곡차곡 적금에 넣는 일도 젊은 시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믿는다.


행복은 누가 정해주는 게 아니라 결국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니까.





“언제 올 거야, 정민아.”



자퇴서를 내기 전 교수님께 연락을 드리자 돌아온 첫마디였다.

청각장애가 있음에도 환갑이 넘은 나이에 강단에 서 계시던 교수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진심으로 존경했고 누구보다 나를 아껴주셨던 분이다.


그동안의 사정을 설명하고, 다른 과로 편입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다. 전화기 너머로 아쉬움과 응원이 함께 전해졌다. 죄송함과 감사함이 뒤섞여 마음이 한동안 복잡했다.


사범대를 선택했을 때부터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이게 내가 정말 원한 길인지, 아니면 부모가 닦아 놓은 길을 그저 안일한 생각으로 가고 있는 건지. 고민이 깊어질수록 세상에 대한 궁금증은 커졌고 휴학을 했다. 3년간의 휴학 생활은 넘어짐과 일어섬의 반복이었다. 많이 울었고 그만큼 단단해졌다. 그리고 결국, 성장했기 때문에 지금은 이 길이 아니라는 결론도 낼 수 있었다.


이제는 남이 정해준 방향과 속도가 아니라

내 속도와 방향으로 가보고 싶어졌다.





700원에 해드릴게요.



업무 중 울린 사내 메신저에 성과금 알림이 떴다. 기대하지 않았던 소식에 통장 잔액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연봉 협상 결과도 나쁘지 않았던 터라 오늘은 자신에게 소소한 외식을 하자 마음먹었다.


퇴근 후 대학가를 걷다가 문득 냉장고에 남아 있던 유통기한 임박 반찬들이 떠올랐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집 쪽으로 방향을 틀다 2개에 1,400원 하는 송이버섯을 발견했다. 혼자 먹기엔 많아 보여 하나만 살 수 있겠냐고 묻자 직원분이 잠시 고민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재워 둔 고기에 버섯과 고추를 넣고 15분간 졸였다. 그렇게 완성된 소박한 축하 음식. 버섯을 한입 베어 물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소중히 살아온 시간들이, 훗날 만날 누군가에게 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내가 아껴 만든 여유 위에서, 그 사람은 조금 더 편안히 기대 쉴 수 있길 바란다고.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