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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카 인연과 추억 2

by 윤기환



그림 그리기가 그랬듯이, 하모니카도 퇴직하기 전 까지는 오랜 세월 잊고 살았다. 돌이켜보면, 뭐 그리 뒤돌아 볼 여유도 없이 살았나 싶다. 세상 사람들 모두 각자의 색깔대로 살아간다지만, 직장을 잡고,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 키우고, 세파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소시민들의 보편적 모습일 게다. 나도 거친 삶의 파도를 헤치며, 때로는 전쟁 같은 삶을 아등바등 잘 버텨냈다.


40여 년 전 내 좋은 친구였던 하모니카가 퇴직이 주는 공허를 메워준다며 내가 내민 손을 잡아주었다. 그 다정한 손이 고마웠다. 약속을 굳게 믿고 가까운 동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하모니카반에 등록했다.


내가 하모니카를 처음 접했던 중학교 2학년 시절, 하모니카는 딱 한 개만 있는 줄 알았다. 솔직히 말하면, 퇴직을 하고 처음 하모니카를 배우러 갔을 때까지도 그리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하모니카는 트레몰로, 크로메틱, 다이아토닉, 베이스, 하모니, 코드 등 모양과 용도에 따라 150여 가지의 다양한 종류가 있다니 참으로 놀랍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트레몰로 하모니카도 15개가 넘는다. 장조(Major)는 C, D, E, F, G, A, B, Ab, Eb, F#, C# 등 10여 개의 키(Key)가 있고, 단조(Minor)도 Am, Dm, Em, Gm, Bm 등 다양하다. 하모니카는 피아노처럼 모든 음을 다 낼 수 있는 악기가 아니기 때문에, 음악에 따라 전용 하모니카가 필요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C키를 시작으로 하나하나 구입하다 보니,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하모니카는 장조 6개, 단조 3개 등 9개가 되었다.


다시 하모니카를 접하면서, 옛 기억을 모두 잊었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모니카를 다시 잡은 후, 내가 중학생 시절 처음 부른 동요와 대중가요 두어 곡을 악보 없이 불어 봤다. 다행히도 몸은 그 옛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릴 적 만화 그리기에 빠졌다가 퇴직 후 다시 잡은 펜이 그때를 기억했듯이, 하모니카도 그랬다. 40여 년 전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웠다. 사실, 기타가 여전히 초보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늦게 시작하기도 했지만 그림과 하모니카만큼 열정을 쏟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몸은 참으로 신기하고 정직하다.


다시 하모니카에 푹 빠졌다.


어릴 적 혼자 불던 하모니카 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어린 시절 작은 열정이 내 삶에 또 다른 행복을 안겨 주리라고는 정말 몰랐다. 함께 배우는 동호회원 20여 명은 거의 내 나이 또래의 황혼을 짊어진 사람들이지만, 익어가는 삶을 하모니카 음률에 담고 싶어 하는 열정 만은 대단했다.


다시 하모니카를 잡은 지 1년쯤 지났을 때, 하모니카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10여 명으로 봉사단을 구성해서 처음으로 자치구 축제 때 거리 공연을 했다. 그 인연으로 성당에서도 공연 요청이 들어왔다. 또, 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구민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취미활동이 작은 봉사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공연은 요양원 봉사였다. 서울 인근에서 200여 명을 보호하고 있는 제법 큰 요양원인데, 거동이 불편하거나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는 분이 대부분이라서 공연에 함께 할 수 있는 분은 50여 분이 채 안되었다. 누군가의 아들 딸로 태어나 부모가 되고, 세월 흘러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 안타까운 노년이 그곳에 있었다. 네 명으로 구성한 우리 공연팀은 고향의 봄, 어머니 은혜, 아리랑, 찔레꽃, 섬마을 선생님, 울고 넘는 박달재, 꿈꾸는 백마강 등 추억의 노래를 준비했다. 공연에 함께 한 분들 중 일부는 손뼉을 치시며 노래도 따라 했지만, 휠체어에 앉아 아무 감흥 없이 멍하니 바라보고 계시는 분들이 많았다. 모습이 가슴 아팠다.


우리의 공연을 지켜보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오더니, 당신께서도 한 곡 부르면 안 되겠냐고 조심 물으신다. 그분은 이곳에서 요양하고 있는 부인을 면회 왔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앞에 앉아 계신 당신의 부인을 위해 '도라지 타령'을 멋들어지게 연주하시고 앙코르까지 받았다. 당신을 위해 하모니카를 불어주는 사랑꾼 남편을 멍하니 바라보시던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날 우리는 위로를 드리러 갔다가 위로를 받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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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공연


하모니카는 '호주머니 속 피아노'라고 불릴 만큼 작고 가벼워 어디서든 연주가 가능하다. 또, 그 음의 다양성은 배우면 배울수록 심오한 악기다. 지금도 나는 자전거를 타고 야외에 나갈 때면, 가끔씩 호젓한 곳에 앉아 하모니카를 부르곤 한다. 나에게 음악을 알게 하고, 음정, 리듬, 코드 감각을 키워 준 하모니카 친구가 늘 고맙다.


하모니카를 불 때면 문득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나에게 하모니카를 선물한 형이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형의 선물이 아니었다면, 나는 하모니카와 가까이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첫 곡을 완성하고 자랑스럽게 뛰어가 하모니카를 불었을 때, 내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해 주던 다정한 형이었다. 그때 불었던 '그 옛날에'와 형이 좋아했던 '황성옛터'를 그리움을 담아 나직이 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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