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저녁, 거실에서 아내가 유난히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 보니, 컴퓨터 화면에 ‘제2회 문경새재 시조 암송대회’ 공고가 떠 있었다.
“여보, 여보. 우리 이 대회에 한 번 나가보면 어떨까요?”
뜬금없는 제안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공고문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며 제법 흥미가 생겼다. 다만 대회 일정이 8월 초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남은 시간은 고작 석 달 남짓, 그 안에 시조 100편을 암송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바쁜 업무를 핑계로 대답을 미루다 보니, 그 이야기는 어느새 기억 저편으로 밀려나 버렸다.
그러던 그해 늦가을 어느 날, 아내가 책 두 권을 구입했다며, 그중 한 권을 내게 내밀었다.
도전. 시조 암송 100편.
잊고 지냈던 약속을 조심스레 다시 꺼내 보이는 아내의 눈빛이 반짝였다.
“여보, 올해는 기간이 짧아 무리였지만, 내년 대회에는 꼭 한 번 도전해 봐요.”
망설이던 나를 붙잡는 아내의 간절함 앞에서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한 번 해봅시다.”
이렇게 우리 부부의 시조 암송 여정은 시작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약속은 했지만,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 해가 바뀌고 어느새 대회까지 6개월 앞에 와 있었다. 처음 시조를 접할 때는 굉장히 난해할 줄만 알았다. 그러나, 현대시조는 시조의 형식을 갖추지만 옛시조에 비해 형식이 다소 자유로워, 현대 시와 결을 같이 하고 있어 접근이 편했다. 하지만, 짧은 시조도 많은 반면, 한 페이지 이상에 달하는 시조도 상당수 있어 그 양이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3개월 안에 각자 100편을 모두 외우기로 다짐했지만, 봄날이 끝나갈 때까지도 나의 암송은 여전히 더뎠다. 그에 비해 아내는 일과 살림을 병행하면서도 훨씬 성실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시 낭송에 진심인 그 모습에 차마 포기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어렵사리 100편을 모두 외우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어제는 술술 외우던 시가 오늘은 중간에서 막히고, 제목과 내용이 따로 놀며, 단어가 가물거리기 일쑤였다. 좌절과 다짐이 교차하던 시간 끝에 대회 날이 찾아왔다. 1차 예선을 거쳐, 16개 팀이 본선에 올랐다. 대회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100개의 번호가 준비된 통 속에서 상대방 팀이 뽑은 번호의 시조를 낭송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도전은 아쉽게도 8 강 문턱에서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실수는 없었지만, 상대 팀 여성의 원숙한 낭송은 아직 준비가 덜 된 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아쉬움이 컸지만 깨끗이 승복할 만한 패배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도전할 자신도 없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아내에게 좋은 경험으로 만족하자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아내였다.
“여보, 우리가 여기까지 준비해 온 시간을 생각하면 이대로 멈추긴 아쉽지 않나요? 내년에 한 번만 더 도전해 봐요.”
그렇게 우리 부부의 두 번째 도전은 이어졌다.
재도전을 결심한 우리는 지난 대회의 부족함을 하나씩 짚어 나갔다. 특히 유일한 혼성팀이자 부부팀이라는 우리의 강점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고민했다. 논의 끝에, 둘이서 번갈아가며 낭송하는 ‘합송’에 어울리는 시조를 선정하기로 했다. 100편 중 먼저 각자 50편씩 맡아 준비하기로 하고, 그중 합송으로 선정한 25편은 둘이서 집중 연습하기로 했다. 부부가 함께 대회를 준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장점이었다. 서로의 실수를 바로잡아 줄 수 있었고, 리듬과 속도, 음의 장단, 표정까지도 자연스럽게 맞춰 갈 수 있었다. 함께 있을 때는 합송 연습에 집중했다. 특히 걸어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나의 출근길을 아내가 종종 동행하면서 연습 시간은 더욱 늘어났다. 천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시를 외우기에 더없이 좋은 무대였다. 함께 걷고, 함께 낭송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실력은 물론 부부의 정 또한 깊어졌다. 특히, 지난해 외운 경험이 있는 시여서 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고, 감정이입도 깊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천변을 걸으며 정광영 시인의 ‘부부'를 함께 낭송하다가,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여보, 이 시처럼, 한 세상 그대와 나 인연의 끈 달고 왔으니, 기쁨이든 슬픔이든 잘 풀어가며 살아요.”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함께 살아온 세월이 길었지만, 지금처럼 매일매일 얼굴을 맞대고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김없이 대회 날이 다가왔다. 대회 전날 오후, 우리는 설렘을 싣고 문경으로 향했다.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보다는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자는 마음이 더 컸다. 저녁 무렵 문경온천 인근에 숙소를 잡고, 저녁 식사 후 맥주 한 잔을 나누는 여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다음 날, 문경새재 여름시인학교 행사장은 참가자들과 시인들로 북적였다. 우리가 책에서 보던 시조 작가들을 직접 만나는 기쁨 속에서 본선의 막이 올랐다. 추첨으로 대진표가 공개되었다. 우리 부부는 말없이 눈빛을 나누며 16강 첫 무대에 올랐다. 세 편의 시를 주고받는 16강전이 긴장 속에 지나갔다. 다행히 8강에 진출했고, 이어진 8강과 4강전은 더욱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특히, 4강에서 만난 상대는 지난해 8강전에서 우리를 탈락시켰던 분이었다. 그분 역시 재도전을 위해 이 자리에 섰다. 두 팀 모두 실수 없이 낭송을 마쳤고, 이번에는 승리의 여신이 우리에게 미소를 지었다. 결승전은 준결승까지와는 달리, 다섯 편의 시조로 승부를 가렸다. 한 수, 한 수가 오갈 때마다 무대와 객석의 공기가 점점 더 팽팽해졌다. “연습한 대로만 하자.” 그 다짐의 눈빛 하나로 버텼다. 상대 팀은 전국 시낭송대회에서도 상을 탈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분이었다. 두 팀 모두 번갈아 가며 다섯 편씩의 낭송을 마쳤고, 단 한 군데 실수도 없을 정도로 쟁쟁한 결전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일곱 명이 앉아계신 심사위원석으로 향했다. 잠시의 정적 후, 심사위원장이 우리 팀의 승리를 선언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긴 여정이 마침표를 찍었다. 대회 사회자가 “저 부부는 싸울 때도 시 낭송하 듯 싸울 것 같다”라고 농담을 던져 관중석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그 순간, 무엇보다도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시와 함께 걸어올 수 있게 해 준 아내가 고마웠다. 또, 아름다운 마무리가 후련하고 행복했다.
돌이켜보면, 시 낭송은 바쁘게만 살아오던 내 삶에 잠시 멈춤을 주었고, 메마른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주었다. 또, 우리의 삶 또한 한 편의 시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시를 외운 것이 아니라, 우리 부부 서로의 마음을 읽는 시간이었음을 알았다. 시조 100편 암송대회는 단지 우승 상장과 상금만을 준 것이 아니라, 우리 부부가 삶의 속도를 맞춰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 부부가 대회에서 우승한 기사가 모 일간신문에 사진과 함께 기사화되면서 직장 내에서 작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자신감을 얻은 우리 부부는 서울과 지방에서 열린 시낭송대회에 나가 작고 큰 상을 받기도 했다. 몇 년 후 직장에서 정년을 마치고 퇴임식이 있던 날, 우리 부부는 직원들 앞에서 시 두 편을 낭송했다. 정광영 시인의 ‘부부’와 김현태 시인의 ‘인연이라는 것에 대하여’라는 시였다. 두 시 모두 부부의 인연에 관한 시로,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시이다.
이제 우리 부부는 60대 중반의 문턱을 넘어섰다. 유난히 더웠던 그해 여름, 천에 발을 담그고 밤늦도록 시를 읊던 기억은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예전 같은 열정은 아니지만, 지금도 가끔씩 시 낭송을 하며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고, 함께 잘 익어가는 부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봄에는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동호인들과 시 낭송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시조 100편이 우리 부부에게 안겨 준 행복은 아름다운 추억이자, 앞으로도 함께 이어가고 싶은 희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