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여행을 떠나며

by 윤기환

이젠 우리 가족의 가슴속에 제2의 고향으로 자리 잡은 콜로라도!!

미국의 중서부에 위치한 콜로라도는 미국에서 8번째로 큰 주이다. 미국이 독립한 지 100년째 되던 해인 1876년에 38번째로 미국의 한 주로 인정됨에 따라 Centennial State라고 불리며, Rocky 산맥이 가로질러 경관이 수려하여 Colorful Colorado, The Rocky Mountain State, Swiss America 등의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1800년 대에는 은광산이 많이 발견되어 한때는 Silver State라고도 불리기도 하였다. 콜로라도는 주의 2/5가 산으로 구성되어 있고, 4,000m가 넘는 산이 50개가 넘을 정도로 산수가 세계적으로 빼어날 뿐 만 아니라, Rocky Mountain 국립공원, Aspen 국립공원은 겨울철 스키 마니아들의 천국이 되기도 한다. 콜로라도의 주도인 Denver는 미국 중서부 도시 중 가장 큰 도시로서, Colorado Springs와 Boulder 등 인근 지역을 합하여 약 20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덴버는 특히 해발 1 mile의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Mile High City"로 불리는 도시이다.


우리 가족이 미국 콜로라도의 덴버공항에 첫 발을 디딘 것은 2004년 8월 5일이었다.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도착한 미국 땅에서의 첫 생활은 아득하기만 하였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던 아이들을 학교에 입학시키고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운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들은 Middle School 8학년에 입학했고, 딸은 Elementary School 2학년에 입학을 했다. 낯설고 말도 안 통하는 아이들의 초기 학교생활은 힘든 나날이었다. 두어 달 지난 어느 날, 아이들과 학교생활에 대하여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말을 안 하던 아이들이 그동안의 힘들었던 기억들을 더듬으며 눈물을 흘릴 때, 애 엄마와 나 또한 가슴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했다. 점차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익숙해져 가면서, 친구들을 사귀어 가고 변화된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부모의 입장에서 정말 행복했다. 한 학기가 지나면서 아이들이 상장을 받아 왔을 때 부모의 입장에서 그만큼 행복했을 때가 있었을까 싶었다. 미국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된다.


아이들의 생활적응을 위해 우선 여행을 택했다. 아이들이 미국생활을 이해하고 적응하기 위해서는 많이 보고 접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은 미국에 도착한 지 10일 만에 지도 한 장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 다소 무모하다는 생각과 두려움도 없지 않았으나, 여행 첫날 우리 가족이 느낀 감정은 아주 특별했다. 로키산맥과 어우러진 광활한 대지가 주는 그 놀라움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 이후 주말과 방학을 이용하여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여행을 떠났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미국 대부분의 지역을 돌아볼 수 있었다. 2005년 여름방학에는 동부지역을 여행하였다. 시카고와 나이아가라 폭포를 거쳐 캐나다 동부의 토론토, 오타와, 몬트리올, 퀘벡 등 주요 도시를 둘러보고, 미국의 메인 주를 시작으로 보스턴, 뉴욕, 워싱턴, 리치먼드, 애틀랜타, 올랜도 등 동부의 주요 도시와 남부 플로리다 최남단의 Key West까지 10,000 Mile의 대장정을 경험하였다.


텍사스, 루이지애나, 뉴멕시코, 유타, 네바다, 애리조나 등 중부지역은 아이들의 봄․가을의 방학이나 연휴 때를 이용하여 틈틈이 돌았다. 서부지역은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2006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남단의 San Diego를 시작으로 캘리포니아 LA, 샌프란시스코, 포틀랜드, 시애틀을 거쳐 캐나다 밴쿠버, 밴푸와 캘거리 등을 두루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하와이를 거쳐 우리 가족 미국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돌이켜 보건대, 우리 가족의 이러한 여행은 가족의 소중함은 물론, 아이들은 부모를, 부모는 아이들을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여행 중 우리는 미국의 주요 대학도 방문하는 기회를 가졌다. 동부의 하버드, 예일, MIT공대를 비롯하여 서부의 스탠퍼드, UCLA, 버클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들을 둘러보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우리 아이들이 장차 이러한 대학에 들어가 어깨를 나란히 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가 미국에서 만난 인연 중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Don과 Josie 선생님이다. Don은 전직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퇴직한 60대 초반의 나이를 가지신 분이었고, Josie는 현재 중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계신 50대 초반의 중년 부인이었다. 두 분은 우리 아이들의 Tutor로 1년 반 동안 우리 가족과 인연을 맺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그분들 집과 우리 집을 오가며 영어를 배우는 것은 물론, 그분들을 통하여 미국사람들의 사고나 생활상을 함께 배웠다. 그들은 우리 가족에게는 다정한 이웃이며 친구이자 어르신 같은 분들이었다. 특히, 우리 아이들을 자신들의 손자처럼 예뻐해 주셨다. 한 번은 딸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할 상황이었는데 나와 연락이 되지 않자, 직접 자신들이 다니는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까지 해주는 자상함을 보인 그들이다. 여름에는 두 번씩이나 그들의 휴양지인 미네소타주의 '베미지’까지 찾아가 3~4일씩 함께 지내다 오기도 했다. 집 옆에 있는 큰 호숫가에서 낚시를 하며 한가로이 지낼 수 있었던 날들은 우리에게는 정말 소중한 기억 중 하나가 되었다.


내가 다닌 대학은 콜로라도 주립대학(University of Colorado at Denver)으로 13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나는 콜로라도 주립대학에서 2년 동안 공공행정학 석사(Master of Public Administration) 과정을 거쳤다. 영어에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미국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학생들은 토론문화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러한 문화에 적응되어 있는 그들에게는 토론식 수업이 아주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에 익숙하지 않을 뿐 아니라 특히, 영어실력이 토론까지 자유롭지 않은 나에게 수업을 따라가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마지막 논문을 쓰던 4학기에는 더욱 힘이 들었다. 수많은 리포트와 중간․기말고사의 압박 속에서도 과정을 무난히 이수하고 학위를 받던 졸업식 날은 나에게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날이었다.


우리 가족이 먼 이국땅에서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가족이 다니던 “덴버 한미장로교회”는 신도가 60여 명 밖에 안 되는 개척 교회이다. 교회는 작으나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을 비롯한 신도들 모든 분들이 한결같이 정이 많고 믿음이 강하신 분들이었다. 미국땅에 이민을 와서 고생 끝에 자수성가하신 많은 분들을 보았다. 그분들이 미국 땅에서 뿌린 땀과 열정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주일마다 목사님의 기도와 교우들의 따뜻한 정이 있어 미국생활이 덜 힘들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언젠가 다시 만나면 반가울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일 수 있다. 좀은 어렵고 힘든 이국 생활이지만, 믿음 아래서 항상 건강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2년의 세월은 그리 짧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돌이켜 보니 순간처럼 흘러가 버렸다. 재작년 3월, 우리 가족은 10일간의 일정으로 덴버에 추억여행을 갔었다. 그 일정을 기록한 글을 "덴버야 잘 있었니?"라는 제목으로 브런치에 연재했었다. 이 번에는 그리움으로 가슴에 묻어 두었던 20여 년 전의 모든 기억의 편린들을 모아 "추억을 더듬다"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려고 한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된 우리 아이들과의 소중한 기억들을 다시 정리하며 먼 먼 추억을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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