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을 떠나 퀘벡으로 향하는 길. 도로표지판에서 영어가 사라지고 불어만 남는다. 인구의 95%가 불어를 사용하고, 불어가 표준어인 퀘벡은 캐나다 안의 또 다른 세계다. 동·서·남·북 방향표시 마저 불어로 표기된 길 위에서, 불어를 모르는 나는 잠시 길 잃은 사람이 된다. 영어와 비슷한 철자를 더듬어 의미를 짐작하며 차를 몬다.
비가 그치고 해가 고개를 들면서 하늘이 서서히 개이고 있다. 몬트리올을 떠난 지 네 시간 만인 오후 세 시, 퀘벡에 도착했다. 금요일 밤이 되면 숙소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이미 여러 번 경험했다. 우선 숙소를 정하기 위해 시내의 값비싼 호텔을 지나쳐 외곽으로 향했다. 한 시간 남짓 헤맨 끝에 Comfort Inn에 방을 잡았다. 예약을 마치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Place Royale
차를 몰아 먼저 루아얄 광장(Place Royale)으로 갔다. 주차장을 나서는 순간 매서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6월 중순인데도 사람들의 차림은 겨울에 가깝다. 털모자에 두툼한 코트를 입은 이도 보인다. “이곳은 6월에도 이렇게 춥습니까?” 묻자, 지난주는 따뜻했는데 오늘이 유난히 차갑단다. 준비해 온 외투를 꺼내 입었다.
프랑스의 옛 정취를 맛보려거든 퀘벡으로 가라는 말이 있듯이, '작은 프랑스' 별칭이 무색하지 않게 문화와 생활방식이 타 지역과 다르다. 독립을 둘러싼 움직임이 이어져 중앙정부와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특히, 이곳 Place Royale은 북아메리카 프랑스 문명의 발상지라 한다. 1608년 Samuel de Champlain이 요새를 세운 뒤 프랑스 상인들이 정착했고, 1686년 Louis 14세의 흉상이 세워지며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이 땅을 두고 다투던 시절의 흔적도 남아 있다. 요새 아래로는 St. Lawrence 강이 유장하게 흐른다. 그 강이 우리가 지나온 몬트리올과 토론토를 지나 오대호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낯선 물길이 어느새 친근하게 다가온다. 햇살을 머금은 강물이 눈부시다.
퀘벡이라는 이름은 ‘강이 좁아지는 곳’을 뜻하는 원주민어에서 유래했다 한다. 400년 역사의 도시답게 건물들은 세월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루아얄 광장과 이어진 '쁘띠 샹 플랭' 거리는 특히 인상적이다. 좁은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상점과 카페, 화랑이 들어서 있어 마치 유럽의 어느 구시가에 선 듯하다. 마침 축제가 열려 사람들이 모여 있다. 무대 위 젊은 공연자가 관중을 웃기고 있지만, 불어의 장벽 앞에서 우리는 그저 미소로만 화답할 수밖에 없다. 언어를 모른다는 것은 이렇게 또렷한 고립감으로 다가온다. 이곳에서 우리는 이른바 '언어 장애인'이다.
아내의 생일, 그리고 Father’s Day
내일은 아내의 생일, 모레는 Father’s Day다. 미국과 캐나다는 5월 둘째 주 일요일은 어머니의 날(Mother's day), 6월 셋째 주 일요일은 아버지의 날(Father's day)로 정하고 있다. 아이들이 엄마 생일 선물로 옷 한 벌 사겠다며 상점을 오간다. 이 옷을 입어보고, 저 옷을 맞춰보지만 끝내 고르지 못한다. 비싸서, 맞지 않아서,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나 나는 안다. 아내가 망설인 진짜 이유는 ‘돈’으로 받는 선물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결국 아내는 마음으로 선물을 받기로 하고, 나는 선글라스 하나 챙기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해가 지자 공기는 더 차가워졌다. 노천카페는 한산하고, 거리에는 바이올린 선율만 흐른다. 어둠이 내린 뒤 강가에 앉았다. 도시의 불빛이 강물 위에 길게 흔들린다. 바람은 여전히 매섭지만,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이 춥다며 재촉해 숙소로 가는 밤길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낯선 도시의 어둠 속에서 몇 번이나 같은 길을 맴돈 끝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또 하루, 이방인의 밤이 깊어간다.
북미의 지브랄타, Citadelle
토요일 아침, 간단히 빵으로 요기를 하고 시타델(Citadelle)로 향했다. 1820년부터 30년에 걸쳐 지어진 별 모양의 요새. ‘북미의 지브랄타’라 불린다. 위병 교대식을 기대했으나, 행사는 7월 초부터란다. 아쉬움을 안고 성벽을 한 바퀴 돌았다. 아브라함 평원과 세인트 로렌스 강을 끼고 길게 늘어선 성벽은 영국과 프랑스의 치열했던 전쟁의 상처를 안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돌아 나오는 길, 시내를 한 바퀴 돌며 Hotel du Parlement와 Rue du Tresor를 찾았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골목 화가들의 그림이 어우러져 도시 전체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진다.
이제 우리는 이쯤 해서 캐나다 동부 투어를 마쳐야 한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돌아보고 싶은 곳도 많지만, 우리의 여행 일정이 많은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늘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국경을 향해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