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여행의 또 다른 재미는 세계 지성의 흐름을 바꾸는 대학들을 직접 마주하는 일이다. 보스턴의 MIT와 하버드를 거쳐 뉴욕으로 향하는 길목, 우리는 고딕 양식의 성채 같은 도시, 뉴헤이븐(New Haven)에서 예일 대학교(Yale University)를 만났다.
예일의 자부심, "세상에 남긴 업적은 영원하리라"
캠퍼스를 천천히 돌아본다. 질서 정연하게 배치된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정감 있게 다가온다. 근래에 지어진 것조차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건물 하나하나가 대학의 역사임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다. 하버드와는 또 다른 예일의 모습을 본다. 하버드보다 한결 아늑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방학이라 한산한 캠퍼스 한쪽, 도서관 잔디밭에서 남녀 학생들이 섞여 축구를 하는 모습이 평화롭다. 하지만 그 틈에서 홀로 샌드위치를 먹으며 책에 몰입해 있는 한 학생의 창백한 얼굴은, 이곳이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님을 말해준다.
한 건물 앞 표석에 새겨진 문구가 발길을 붙잡는다.
"예일대학을 거쳐 가는 학생들이 세상에 남긴 업적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오만한 듯한 문장에서 그들이 가진 강한 자부심의 뿌리를 엿본다. 예일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시대를 이끌어갈 '리더의 품격'을 빚어내는 자부심 가득한 곳임을 느끼게 한다.
세 대학의 서로 다른 표정
우리가 거쳐온 세 개의 대학은 미국 유수의 대학임에도 같은 듯 다른 표정이 있다.
MIT는 공학의 정점답게 차갑고 날카로운 지성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현대적인 건축물 사이로 흐르는 긴장감은 마치 인류의 미래를 설계하는 거대한 실험실 같았다
하버드는 붉은 벽돌 너머로 세계 최고의 엘리트들이 뿜어내는 정제된 권위와 전통이 압도적이었다.
예일은 하버드보다 한결 아늑하고 조화롭다. 학생들 간의 유대감이 끈끈하고 '공동체 정신'을 강조한다는 세간의 평이 틀리지 않음을 느낀다.
세 개 대학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MIT는 혁신, 하버드는 권위, 예일은 전통과의 조화라고 말하고 싶다.
노을 속의 휴식, 그리고 다음을 향한 준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예일의 고풍스러운 실루엣을 가슴에 담는다.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로 뛰어들기 전, 이곳에서의 하루는 지적 영감과 정서적 안정을 동시에 선물 받은 느낌이다.
할인 쿠폰으로 잡은 저렴한 모텔, 대형 마트에서 산 신선한 소고기와 소시지 등, 결코 소박하지 않은 풍성한 저녁 식탁을 차렸다.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다. 오랜만에 고기 굽는 냄새와 함께 피로를 녹여내며, 내일 마주할 뉴욕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