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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Jul 19. 2024

아버지의 초상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아흔까지만 살았으면 싶다던 아버지가 아홉수의 문턱이 넘기지 못하고 여든아홉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버지를 선영에 모시고 난 후, 영정 사진을 거실 소파 위 벽에 걸었다. 늘 소파에 누워 TV를 보시던 아버지가 조금은 더 높은 곳에서 묵묵히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삼십여 년 동안 삼대가 함께 웃고 울며 부대끼던 거실에는 여전히 당신의 흔적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억들이 그리움이 되어 켜켜이 쌓여갔다.    

 

  그리움을 그리기로 했다. 벽 위에 걸린 아버지 사진을 내 방으로 옮겼다. 여러 날 사진 속 아버지를 바라만 보다가 스케치북을 펴고 연필을 깎았다. 사진 속 아버지가 웃을 듯 말 듯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마치 할 말이 있으신 듯 나를 바라보신다. 가슴 저편에 흑백사진으로 가라앉아 있던 아득한 기억들이 봉인을 풀고 펄럭인다.


  나의 아버지에 대한 생생한 첫 기억은 내 나이 다섯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여름 저녁 어스름 무렵 동네 고샅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는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부엌과 방을 바삐 오가고 계셨고, 아버지는 마당에서 서성이고 계셨다. 나를 보신 아버지가 다급한 목소리로 마을 건너편 끝 집에 가서 시계를 빌려오라고 하셨다. 그날은 막내 동생이 태어난 날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2학년이 되던 해, 그러니까 둘째 동생이 일곱 살, 막내가 네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우리 삼 형제를 삼례읍내로 데려가셨다. 그날 찍은 흑백사진을 가슴에 품고 아버지는 서울로 떠나셨다. 논 두 마지기와 밭뙈기 한 두락이 전부였던 가난한 살림살이를 벗어나기 위한 결단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우리가 잊을 만할 때쯤 집에 오셨다. 아니, 사진 한 장으로는 그리움을 견디지 못할 때쯤 오셨을 것이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나와 동생들을 가슴에 끓어 안고 오랫동안 얼굴을 비비시곤 했다. 아버지의 껄끄러운 수염과 술 냄새가 싫어 버둥대면, 아버지는 우리를 더욱더 품속으로 끓어 안았다.


결국, 4년 만에 아버지는 우리 가족 모두를 완행열차에 싣고 고향을 등졌다. 가난을 짊어지고 고향 땅을 지키며 살아야 했던 숙명을 과감히 떨쳐버린 아버지의 결단은 대변환이었지만, 엄청난 고난의 시작이기도 했다.   

서울에 오신 아버지는 조경 일을 하셨다. 조경이란 말은 허울일 뿐, 사실상 막노동꾼이셨다. 한잔 술과 함께 집에 돌아오시는 아버지는 늘 배춧잎처럼 어깨가 늘어져있었고, 운동화에는 흙이 한가득이었다. 장남인 나는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아버지의 발을 씻겨드리곤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나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시며 행복해하셨다. 그런 모습이 보고 싶어 저녁이면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아버지를 기다렸다. 식솔들의 한 술 밥을 위해 뛰어든 아버지의 막노동은 우리 삼 형제가 장성하여 취직을 한 후에야 멈출 수 있었다.

    

  아버지는 스물일곱 나이에 스물셋 어머니와 결혼했다. 평생 가난했지만, 아버지의 가슴속 강한 신념과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기도의 힘이 있었기에 우리 삼 형제는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삐뚤어지지 않고 제 갈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아버지는 세 아들과 자부, 손자 손녀를 합하여 열넷이나 되는 작지 않은 왕국을 이루고 사랑을 주셨다. 짧지 않은 세월, 60여 년을 아버지와 함께 했지만, 잠시 우리 곁을 다녀가신 듯, 꿈인 듯 아련하다. 비록 당신께서는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여전히 가슴속에 살아계신다. 그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 여러 날에 걸쳐 그리움을 그렸다. 늘 애틋하게 자식들과 손주들을 바라보시던 눈, 과묵하면서도 자상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는 못다 한 얘기들을 눈물과 함께 나누었다.                

아버지 초상화

  아버지의 초상화가 완성되었다. 사진 속 아버지, 아니 내 가슴속 아버지를 다 그려낼 수는 없었지만, 절절한 그리움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아버지의 초상화를 어머니께 보여드렸다. 부지깽이 같이 바짝 마른 어머니가 웃는 듯 우는 듯 그렁한 눈을 하고 그림 속 아버지를 쓰다듬으신다. 


  어머니 방 머리맡에 아버지의 초상화를 두기로 했다. 함께 했던 60여 년의 세월을 부여잡고, 그리움과 외로움을 견디고 있는 어머니를 초상화 속 아버지가 바라보고 계신다. 이제는 아픔을 떠나 그리움이 된 아버지가 엷은 미소로 웃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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