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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Jul 05. 2024

아버지의 병상일기4

천국으로 가는 길



1.

 재입원한 지 5주 만에 결국 퇴원절차를 밟았다. 그동안의 경과와 요양원에 모시기로 한 결정을 동생들에게 알렸다. 광주 사는 둘째 동생이 올라와 함께 병원에 갔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환자복이 아닌 일반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계셨다. 나는 묵묵히 옷가지와 물건들을 챙겼다. 수납을 마치고 의사의 퇴원소견서를 기다렸다. 요양원에 입원하려면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코로나 검사결과가 나오고 퇴원절차가 완료되었다.     

  둘째가 모는 차가 백병원을 빠져나와 집 근처를 지나고 있다. 아버지는 아내와 함께 뒷좌석에 앉아 말없이 차창만 바라보고 계신다. 낯익은 풍경이 사라지자, 아버지는 그새 힘이 드시는지 몸을 옆으로 기대셨다. 싸늘한 분위기를 떨치려는 둘째 아들의 너스레에도 아버지는 별 반응이 없으시다. 차가 외곽순환도로를 빠져나가 장흥 입구에 들어섰다. 요양원이 가까워지고 있다. 가끔씩 깊은숨을 몰아쉬며 차창에 기대신 아버지를 보면서, 죄인이 된 가슴을 억누를 길 없었다.      


  요양원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 원장이 마중을 한다. 간단한 수속을 마치고 아버지를 4층 병실로 모셨다.  환복을 하고, 가지고 온 물품을 정리하고 나니 이른 저녁 식사가 나왔다. 숟가락을 든 아버지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죽과 국물을 몇 숟갈 뜨시고는 상을 물리신다. 조금만 더 드시라고 해도 고개를 젓는다.  물 한 모금 마시더니 힘들다며 뉘어달라고 하신다. 자리에 누운 아버지의 팔과 다리를 나와 동생, 아내가 번갈아 주물러드렸다. 작별의 시간이 왔다.

아내가 아버지의 두 손을 꼭 잡으며,  

“죄송해요 아버님! 죄송해요 아버님!”을 반복하며 울먹였다. 

“곧 뵐게요. 편안히 계셔요 아버님....” 눈물의 작별을 했다. 아버지가 말없이 며느리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리셨다.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병실을 나왔다. 복도에서 창 너머로 병실 침상의 아버지를 들여다보았다.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아버지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보인다. 그것이 나를 바라보신, 내 눈과 마주친 아버지의 마지막 눈 맞춤이 될 줄이야.....    

 

2.

  전철로 의정부역까지, 다시 23번 버스로 갈아타고 30분을 달려 송추사거리,  거기서 택시로 10여분 만에 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에 도착했다. 자가용으로 가면 30분 남짓 하는 가까운 곳인데 2시간 정도 돌아서 왔다. 작년 말 폐차를 하고 차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오늘은 차 없는 것이 몹시도 불편하다.     

  오늘로 아버지께서 요양원에 입소하신 지 나흘이 되었다. 그동안 사용 중인 보청기가 기능을 다하였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왼쪽 귀는 젊었을 때 중이염을 앓은 이후 거의 들리지 않았고, 오른쪽 귀에 의존하여 사시다가 10여 년 전부터 보청기를 사용해 왔다. 병원에서 퇴원하시기 전, 수유리에 있는 보청기 제작업체에 들러 새 보청기를 주문했었다. 이번이 세 번 째이다.      

  아버지께 보청기를 드리기 위해 요양원에 갔다. 코로나로 환자의 병실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에 간호사를 통해 보청기를 전달했다. 원장실에 앉아 있는데 아버지한테서 바로 전화가 왔다. 

"지금 막 보청기를 받았는데 잘 들리는지 전화했다"며 목소리가 약간 들뜨셨다. 대여섯 번 전화를 끊고 걸기를 반복했다. 볼륨조정을 하며 듣기 편하게 조정이 되면서 잘 들린다고 좋아하신다. 그러시더니,

"곧 온다더니 왜 이리 안 오냐? 언제 올 거냐? “

원망과 간절함이 묻어있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들린다. 바로 윗 층에 계신데 얼굴도 못 보고 전화만 해야 하는 이 미친 현실이 한없이 원망스럽다. 어제도 백병원에서 한 달 치 약을 타서 이곳에 왔었다. 뵙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왔다. 내가 규칙을 어겨 잘못되면 요양원이 폐쇄될 수도 있는 상황을 알면서 올 때마다 면회를 할 수는 없었다. 며칠 후면 아버지를 뵐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돌아왔었다.      

  입소하기 전 아버지께는 원장이 내 친구라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그리로 모시기로 했다고 말씀드렸다. 입소하는 날, 원장은 진심으로 아버님처럼 모실테니 걱정 말라며, 선한 목소리로 믿음이 가게 말을 했다. 아버지는 원장이 진짜 내 친구인 줄 아셨다. 원장이 병실에 갈 때면 환한 웃음으로 손을 잡으며 좋아하신다는 말을 듣고 한결 마음이 놓였다.      

  코로나가 세상을 너무 많이 바꿔 놓았다. 부모자식 간에도 면회가 단절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아래층에 아들이 와있는걸 알리 없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요양원을 나섰다.     

"언제 올 거냐.....?" 

핸드폰을 타고 들리던 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가 돌아서는 발걸음을 자꾸만 잡아당긴다.    

 

3.

요양원에 모신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다. 엄마와 아이들이랑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중에 요양원 원장한테 전화가 왔다. 영상통화였다. 아버지께 가족들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전화를 했다며 아버지를 바꿔준다. 원장의 세심한 배려가 고마웠다. 다른 때 보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있는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시며 화면 속에 나타나신다. 

“아버지! 오늘은 목소리가 좋으시네요? 진지는 잘 잡수셨어요?”

“어, 니 친구 원장이 잘해줘서 잘 있어. 집안 별고 없냐?” 

“예, 아버지 저희들은 잘 있고, 아무 일 없어요. 아버지 건강 걱정만 하세요.”

“그래! 근데,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실 때마다 이 말을 반복하셨다. 그럴 때마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못 가지만 곧 뵐 수 있을 거라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 아내가 번갈아가며 통화를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 손녀와 통화를 할 때는 환하게 웃으시며 손까지 흔들더니 끝내 눈물을 흘리셨다. 애써 웃음으로 통화를 마쳤지만 식구들은 한동안 말없이 눈물만 훔쳤다. 전화를 끊고 밀려오는 그 절절한 외로움을 아버지는 또 어떻게 이겨내고 계실까?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요양원에 입소하신 지 8일째 되는 날, 어김없이 날이 밝았다. 아침 식사를 하며 애 엄마와 아버지의 핸드폰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며칠 전 보청기를 바꿔드렸지만, 핸드폰에 문제가 있는지 통화 때마다 잘 안 들린다고 하신다. 이참에 영상통화가 가능한 폰으로 빠른 시일 내에 바꿔드리자고 의견을 모았다. 아침을 먹고 난 후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어제와는 달리 말이 어눌하셨다. 아버지는 여전히 “왜 안 오냐”는 말씀을 반복하신다. 며칠 후면 아버지 뵐 수 있을 거라고, 또다시 가슴 아픈 거짓말을 했다.      

  답답한 마음에 자전거에 몸을 싣고 달렸다. 중랑천을 따라 한 시간 여를 달려 양주 땅에 도착했다. 천변으로 다시 돌아와 징검돌이 늘어져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 할 일도 없는 한낮의 나른함이 밀려왔다. 팔베개를 하고 하늘을 향해 누웠다. 초가을 하늘은 푸르기 그지없다.     

  갑자기 숨이 막힐 듯 가슴이 답답했다. 왠지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불안한 마음으로 서둘러 집으로 두 바퀴를 몰았다. 집에 돌아오니 아무 일 없었다. 다행이라는 안도와 함께 샤워를 하고, 애 엄마와 아버지 핸드폰을 보러 인근 상가로 갔다. 핸드폰 대리점에서 구매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 내 핸드폰 벨이 울렸다. 요양원 원장이었다. 자주 오는 전화라 별생각 없이 받았다.  

“아버님이 갑자기 이상해요.” 원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때린다. 

“아버님께서 갑자기 호흡곤란이 왔는데, 의사가 심 정지 상태라고 합니다.   엠블런스 안에서 응급처치를 하면서 의정부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통화는 하고 있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내 급한 목소리를 듣던 아내가 무슨 일이냐고 겁먹은 얼굴로 묻는다.  핸드폰 대리점을 뛰쳐나왔다. 아내와 나는 길바닥에 퍼져 앉아 펑펑 울었다.       

  정신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아내와 함께 의정부시립병원으로 갔다. 원장이 입구에 서있다. 원장은 고개를 떨구며 아무 말이 없다. 그의 눈을 보는 순간,  묻지 않아도 모든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를 따라 병원으로 들어가니, 의사가 저승사자처럼 서서 내게 선언하듯 말한다.

“000 님 보호자십니까? 오후 5시 47분에 운명하셨습니다. 안치실에 모셨습니다.” 그는 메마른 몇 마디 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아버지는 하얀 천에 싸여 안치실에 계셨다. 온몸으로 붙들고 짐승처럼 울부짖어도 아버지는 평상시 주무시는 모습으로 말없이 누워계실 뿐이었다. 

아들이 보고 싶어서 눈을 못 감으신 걸까? 아버지는 가는 눈을 뜨고 계셨다.

떨리는 손으로 눈을 감겨드렸다. 이제는 그만 쉬어야겠다는 듯이, 아버지는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2020년 9월 16일(음력 7월 29일). 오후 5시 47분. 아버지의 세상이 그렇게 영원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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