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기환 Jul 02. 2024

아버지의 병상일기 3

재입원

      

1.

  예약한 통원치료 날이 왔다.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상담을 하면서 담당의사에게 그간의 상황을 얘기하니, 재입원을 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집에 오신 지 8일 만에 8층 일반병동으로 다시 입원하셨다.

  재입원을 하신 후 몇 날이 지났다. 여전히 식사를 못하시고 링거에 의존하시는 아버지. 날로 야위어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누워만 계신 것이 안타까워 복도에 있는 휠체어를 끌고 병실에 가니, 아버지께서 물끄러미 쳐다보신다. 

“아버지! 답답하실 텐데 휠체어 타고 복도로 나가보실래요?”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 몸을 싣고 복도로 나갔다. 바깥세상이 보이는 복도 끝으로 가서 창밖을 보실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셨다. 

지금 아버지께서 바라보고 계신 저 바깥세상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평생을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시던 세상을 창 너머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지금의 심정은 어떨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휠체어 옆에 서서 묵묵히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바깥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시던 아버지가 힘이 든다며 그만 들어가자고 하신다. 병실로 돌아와 침상에 눕기 전에  

“아버지! 혼자 서보시겠어요?”나는 아버지께 넌지시 제안을 했다. 

아버지는 나의 부축을 받으시며 휠체어로부터 몸을 떼었다. 부축하고 있던 내 손을 천천히 놓았다. 아버지는 잠시 서는가 싶더니 이내 비틀거리신다. 얼른 부축해서 휠체어에 앉혔다. 두어 차례 더 반복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휠체어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다 틀렸다. 이제 더 이상 못 설 모양이다.......” 

탄식처럼 혼잣말을 하셨다. 그 작은 목소리가 묵직한 망치가 되어 가슴을 때렸다.     

 

2.

  다시 입원을 하신 지 한 달이 지났다. 정기적으로 엑스레이를 찍고, 피검사를 하는 것 이외에, 이제는 링거도 주렁주렁 달지 않고 별다른 주사도 없다.  단지, 삼시 세끼 식사와 약 처방만 있을 뿐이다. 담당의사와 면담을 했다. 폐렴과 결핵 증상이 거의 완치가 되었다고 한다. 입원을 해서 치료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했으니 퇴원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첫 번째 입원했을 때와 똑같은 말을 한다.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좋아진 것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했지만, 의사의 입장은 다소 완고했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을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무적으로 내뱉는다. 며칠 말미를 달라는 말을 하고 나왔다.      

  아버지께서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만 해도 의료적 치료를 받으면 곧 회복하셔서 집으로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가졌었다. 아니, 그리 되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아버지는 강하신 분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대안 없이 퇴원을 해야 한다는 상황을 아버지께 말씀드릴 수 없어 몇 날을 망설이다가, 오늘은 아버지께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 병원에서는 며칠 전부터 퇴원하라고 하는데 걱정이에요. 곧 퇴원은 해야 할 것 같은데, 퇴원하시면 어디로 가시는 게 좋을지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다른 말씀 없이 묵묵히 듣고만 계셨다.

“아버지를 집에 모시는 것을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버지를 집에 다시 모시는 건 아버지한테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걱정이에요.”

그러면서, 아버지가 말씀하신 집 근처 요양병원에 다녀온 얘기를 했다. 시설도 답답하고 면회도 안 되고, 여러 가지 여건상 거기는 아닌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는 낙담한 표정으로 날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말이 나온 김에, 엊그제 다녀온 양주의 요양원에 대하여도 말씀드렸다. 

이 요양원은 사회복지 분야에서 오랜 경력이 있는 지인으로부터 엊그제 소개를 받았었다. 다음날, 곧바로 시설을 방문했다. 작년에 새로 개원한 시설로, 나지막한 산자락 밑에 자리하고 있었다. 작지 않은 정원이 있고, 5층짜리 단독 건물로 깨끗하고 안정감이 있었다. 특히, 시설장이 지인과 잘 아는 사이라서 믿음이 있었다.

  내가 보고 온 것을 아버지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말없이 듣고 계시던 아버지가 가는 숨을 내쉬며 입을 떼셨다.

“그래, 잘 알았다. 생각해 보마.”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집에 모시는 것과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모시는 것에 대하여 엄마와 아내하고 상의를 했다. 엄마는 답을 주지 않고 아무 말 없이 한숨만 쉬었다. 아내는 아버님께서 집에 계시길 원하시면 집에 모시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나의 생각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일단 집에 모시다가 상황을 보면서 다시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모시는 일이다. 아버지는 분명 집으로 오시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집에 모시는 것이 효도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의료적인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방치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을 또다시 재현하는 것이 오히려 불효라는 생각에 마음속 갈등은 더욱 깊어갔다. 이와는 달리,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모시는 것은 안정적이기는 하나, 면회가 제한적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더욱이 아버지의 결심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고민만 깊어갔다.     


3.

  채 동이 트기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께 온 전화다. 

“오늘은 언제 올래?”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철렁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무슨 일 있어요? 아침 먹고 곧 갈게요” 대답하니

“그래, 얼른 오너라” 하며 다음 말을 하기도 전에 전화가 끊긴다.

  서둘러 병원에 갔다. 힘없이 자리에 누워계시던 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하신다.

“내가 많이 생각해 봤는데.... ” 약간 가쁜 숨을 몰아쉬시며 말을 끊으시더니

“날 요양원에 보내다오. 집에 가는 건 니들한테 못할 짓 같다” 더듬거리며 말씀하신다. 얼마나 많은 생각 끝에 내린 말씀이시겠는가를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대답대신 말없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는 분명 집으로 가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아버지의 속마음이지만, 자식들 힘들게 하지 않으려는 차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는 아버지가 반대를 하더라도 무조건 집으로 모시고 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차선의 선택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내가 죽도록 싫었다.            

이전 06화 아버지의 병상일기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