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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Jun 22. 2024

아버지의 병상일기2

2. 퇴원


1.

결국 아버지는 입원한 지 20일 만에 퇴원을 했다. 아니,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의사는 의료적인 치료를 다했기 때문에 퇴원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며칠 전부터 반복했다. 의료기관의 냉정함에 분노가 치밀었다. 몇 날을 고민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일단 퇴원을 하고 다시 상황에 따라 재입원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고통스러운 결론을 내렸다.

    

집에 오신 후 아버지는 마음이 편하다고 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는 건 좋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편한 마음과는 달리, 몸은 좋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맛없는 병원 밥 대신, 입에  맞는 음식을 해드리면 잘 드실 줄만 알았다. 그러나 퇴원하신 후에도 제일 큰 문제는 음식을 못 드시는 거였다. 조금이라도 드시게 하려고 애 엄마가 평소 좋아하시는 음식을 이것저것 만들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끼니때 드시는 건 미음 조금, 들기름을 탄 날달걀 1개, 그리고 과일(수박, 토마토, 복숭아 등) 갈아서 몇 모금 드시는 게 전부다. 몸보신을 위해 막내가 끓여 온 장어 즙과 평소 좋아하시던 족발 국물을 드려 봐도 몇 숟갈 드시면 헛구역질을 하신다. 더 드릴 수가 없다.     

  또, 밤에는 잠을 못 주무시고 가끔씩은 호흡곤란을 호소하신다. 병원에서도 밤이 그랬다. 체온 측정기를 사서 수시로 체크를 했다. 열은 정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병원에 계실 때는 링거라도 맞고 정기적으로 의사와 간호사의 진찰도 받으니까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집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병원에서 준 약을 때에 맞춰 드리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자식으로서 이를 지켜보는 것은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에서 대책 없이 모시는 것은 효도가 아니었다. 무책임한 불효였다. 어쩌면 방치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자식으로서 자괴감마저 들었다. 고민 끝에 집 근처 요양병원에 상담하러 갔다.


  몇 달 전 아버지와 함께 불암산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버지께서 집 근처 큰 도로변에 있는 요양병원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혹시 많이 아프게 되면 저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어떻겠냐? 집에서도 가깝고, 생긴 지도 얼마 안 되어서 시설도 괜찮을 것 같은데.....”하셨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버지 말씀에 “아버지! 저 병원에 가보신 거예요?” 했더니,

“가본 건 아니고, 집에서도 가깝고, 새로 지어서 좋을 것 같아서...... “ 하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그런 일이 벌어지려면 한 20년은 더 있어야 할걸요?”

매일 두어 시간씩 불암산 둘레 길을 돌며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실 정도로 건강하신 아버지이기에 나는 큰 목소리로 스스럼없이 농을 쳤다.

“쓸 때 없는 소리 마라, 오래 사는 게 좋은 게 아니다. “ 하시며 정색을 했다.

나는 아버지의 그 거짓말이 재밌어서 유쾌하게 웃었다.   

    

  상담결과, 이 요양병원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새로 지은 건물이긴 했으나, 5층 건물에는 좁은 병실에 침상은 다닥다닥 붙어있고, 어두운 기운마저 감도는 분위기였다. 오히려 병을 얻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월 200만 원 정도의 비용은 차치하고라도 특히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 면회도 되지 않고 한 달에 한번 유리창 너머로 면회만 가능하다고 했다. 병원에 계실 때는 코로나로 인해 다소 제한적이긴 하지만, 언제든지 면회를 할 수 있는 시스템과는 너무도 상황이 달랐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아버지가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길가의 요양병원은 집에서 가깝다는 것 이외에는 아버지의 바람과는 영 딴판이었다.  


2.    

  밤이 깊어가고 있다. 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띵동 띵동’ 벨이 울린다.  거실에 누워계신 아버지가 날 부르신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신 후, 막내 동생이 인터넷에서 구입한 벨을 두 개 보내왔다. 위급할 때 쓰는 비상벨이다. 아버지가 계신 안방과 거실 머리맡에 누르는 벨을 부착해 놓고, 울리는 벨은 내 방에 설치했다. 비상벨을 설치해 놓으니, 도움이 필요할 때나 위급한 상황이 생겨도 즉시 대처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이 한결 놓였다. 거실 소파에 누워계신 아버지가 나에게 휑한 눈을 맞추며 말없이 손으로 엉덩이를 가리키신다. 말씀 안 하셔도 안다. 대소변을 혼자 못 가리시는 아버지의 엉덩이가 축축해진 것 일게다. 이제 아버지 기저귀 가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아내뿐 만 아니라 손자도 할아버지의 성실한 간병 역할을 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돌아가며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옷을 갈아입히는 일을 주저 없이 했다. 이제 가족 모두 기저귀 갈고, 약과 끼니 챙기는 일은 익숙해져가고 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힘든 날의 연속이다.

          

 내일이 통원치료 예약일이다. 아버지께 내일 통원치료할 때 의사와 상담해서 재입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절대 병원에 다시 입원은 안 한다”며 고개를 완강히 가로저으신다. 더 이상 아버지를 설득할 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아버지에게 가장 최선은 무엇인지를 수없이 생각하고 있지만, 뾰쪽한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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