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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Jun 14. 2024

아버지의 병상일기1

1. 코로나 세상과 입원

    

1.

  여느 때와 같이 산책을 다녀오신 아버지가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더니 이내 누워버리신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어디 아프시냐고 여쭈니까, 아픈 건 아닌데 숨이 가쁘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두어 번 쉬고 오던 산책길을 오늘은 열 번을 더 쉬어도 힘이 들었다고 한다. 좀 쉬시면 괜찮을 거라며 담요를 덮어드리니 곧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한 시간 여를 주무시고 잠이 깬 아버지가 일어서다가 몸을 휘청한다. 깜짝 놀라 부축하여 안방으로 모셨다. 몸 상태가 평소 같지 않아서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많았다. 안 되겠다 싶어 아버지를 모시고 집 앞 가정의원에 갔다. 간호사가 체온을 재더니 39도라며 화들짝 놀란다. 그러면서 큰 병원에 가보라며 급히 문을 닫아버린다.

나 어렸을 적, 문둥병 환자가 동네에 올 때면 어른들은 혹시 문둥이의 손이 닿기라도 할까 봐 아이들 단속하기 바빴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그런 취급을 받은 것 같아 몹시 불쾌했다. 창궐하는 코로나 세상이 만들어 낸 슬픈 현실이다.  

   

  택시를 타고 급히 백병원에 갔다.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다 보니 선별진료소는 사람들의 줄이 심상치 않게 늘어서있다. 접수증을 받고 줄을 서라 한다.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를 한쪽에 앉아 계시게 하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두 시간여 만에 겨우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24시간이 지난 내일 오후 4시 까지는 결과를 알려준다고 했다. 아무 일 없을 거라는 믿음은 시간이 갈수록 초조와 불안감으로 변했다. 기다림의 시간은 잔인했다. 아침이 되어도 아버지의 병세는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38~9도를 오르내리는 열은 여전히 아버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초조와 근심으로 가득한 아버지의 눈빛을 보면서 가슴은 타들어 갔다.  

    

  ‘띠리릭 ~ ~’ 핸드폰에 문자 음이 울린다. 순간,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던 나와 아내 사이에 호흡이 멎는 떨림과 정적이 흘렀다. 음성 확인 문자였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렀다. 안방에 홀로 격리되어 누워계신 아버지께 결과를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애써 환하게 웃으시더니 이내 눈물을 훔치신다. 혹시 코로나에 걸렸을 경우 가족들에게 닥칠 일들을 생각하며 지난밤 혼자서 얼마나 노심초사하셨을까! 아버지의 눈물은 간밤의 모든 걱정을 씻어내는 듯 말없이 흘러내렸다.   

  

코로나가 세상을 너무도 많이 바꾸고 있다. 코로나 전(Before Corona)과 너무도 다른, 코로나 후(After Corona)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열이 39도를 넘나드는 데도 입원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 우리는 지금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앞으로는 또 어떤 일들이 세상을 바꿀 것인지. 사는 일이 참으로 두렵다.     


2.

  코로나 검사결과 음성 문자를 받자마자, 아버지를 모시고 백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은 시장바닥처럼 북적대고 있다. 복도에서 30여분을 대기하다가 겨우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링거를 꽂고 누운 아버지는 곧바로 환자가 되었다. 어제부터 힘든 시간을 보내셔서 그런 것일까?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의사와 간호사가 분주하게 오가지만, 아버지가 누워계신 침상에는 좀처럼 나타나질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간호사를 붙들고 물으니, 조금 더 기다리라고만 하고 뒷모습을 보인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야 아버지는 엑스레이를 찍고, 돌아와 혈액검사도 마쳤다. 그리고 또 한 시간쯤 흘렀다. 간호사가 보호자를 부른다. 긴장한 모습으로 따라가니, 의사가 엑스레이 화면 앞에 앉아 있었다. 그가 다소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아버님께서 급성 폐렴증상이 있습니다. 바로 입원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14층 병동에 입원을 했다.  

   

  입원하신 지 사흘이 지났는데도 생각보다 아버지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있다. 마른 양팔에는 매일 링거 줄이 서너 개씩 걸리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식사량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토할 것 같다며 좀처럼 음식을 넘기지 못하신다. 조금이라도 더 드시게 하려고 한 숟가락 떠드리면 어린아이처럼 손으로 입을 가려버리신다. 며칠 사이에 몰라보게 야위어가면서 퀭한 눈과 까칠한 얼굴이 병색이 완연하다. 피를 뽑고 엑스레이 검사가 정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아침 회진시간에 맞춰 기다리다가 담당의사에게 경과를 물어보아도 시원한 대답이 없다. 조금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뿐이다. 급기야 오늘 아침, 의사가 보호자인 나를 찾는다. 검사결과 결핵증상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한다. 결핵이 치료될 때까지 별도 격리치료를 해야 한다고 한다. 나흘 만에 아버지는 12층 1인실 음압병동으로 병실을 옮겼다.


간호전담병동에서 음압병동으로, 그리고 다시 일반병동으로 병실을 세 번 옮기면서 치료는 계속되고 있다. 매일 아침 순회 진료를 하는 의사는 아버지가 의료적으로는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식사를 제대로 못하시고, 몸은 더욱 야위어지면서 대소변을 간병인에 의탁할 수밖에 없는 진짜 환자가 되었다. 혼자서 하실 수 있는 일은 겨우 식사를 하는 정도이다. 이제 대소변도 손수 가리지 못하는 당신의 신세를 속으로 얼마나 한탄하고 계실까?  생각하며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그토록 강직하고 위엄 있던 아버지는 온데간데없고, 병약하고 슬픈 얼굴의 아버지가 말없이 천정만 바라보고 누워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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