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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우 Jul 23. 2022

다른 존재 되기

이희경의 『낭송 장자』,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장자』에는 흥미로운 우화가 많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소요유편의 대붕 우화가 대표적이다. 내용은 이렇다. 북쪽 깊은 바다에 곤(鯤)이라 하는 물고기 한 마리가 살았다. 그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곤은 변하여 새가 되는데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그 등 길이도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힘차게 날아올라 날개를 펴면 하늘을 뒤덮은 구름 같았다. 붕은 바다가 크게 출렁이면 남쪽 검푸른 바다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곳이 바로 천지(天地)다.      


  물고기 곤(鯤)의 한자 뜻은 ‘물고기 뱃속의 알’이다. 장자의 우화 이후 ‘큰 물고기’의 의미가 더해졌다고 한다. 아주 작은 물고기 알이 거대한 물고기가 되고 다시 큰 새가 되려면 얼마나 큰 에너지가 필요했겠나를 생각해 봐야 한다. 알이 큰 물고기가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완전히 다른 존재인 붕새가 된다는 것은 어머어마한 일이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렸을 때 가능한 일이란다.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내적인 힘을 믿고 전 존재를 다 던져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변신 혹은 변화 모티프에 나비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장자의 호접몽에도 나비가 나오지만 존재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는 내겐 언제나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다. 그 내용을 자세히 소개해 본다.     


  알에서 깨어난 줄무늬 애벌레는 먹고 또 먹어 크게 자라자 삶에는 먹고 자라는 것보다 더 나은 생활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자신이 태어난 나무를 떠난다. 다른 애벌레들이 꼭대기에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는 애벌레 기둥을 보며 흥분을 느끼고 그 더미 속으로 들어가 기둥을 오른다. 거기엔 밟고 기어오르느냐 밟히느냐 그것뿐이었고 아무도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르던 줄무늬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와 얘기를 나눈 이후 그녀를 밟고 오르는 것에 미안함을 느낀다. 그들은 기둥을 내려와 푸른 풀밭에서 즐겁게 뛰어놀고 먹으며 서로를 사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무늬 애벌레는 기어 다니는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애벌레 기둥을 오르는 일을 갈망했다. 줄무늬 애벌레는 다시 기둥으로 가는 것을, 노랑 애벌레는 남는 것을 선택한다. 방황하던 노랑 애벌레는 어느 날 늙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본다. 어떻게 해야 나비가 되는 건지를 묻는 노랑 애벌레에게 늙은 애벌레는 애벌레이기를 포기할 만큼 날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민하던 노랑 애벌레는 나비가 되는 모험을 하기로 결심하고 고치를 짜기 시작한다. 

     

  줄무늬 애벌레는 거의 기둥의 꼭대기까지 올랐지만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기둥이 수천 기둥 중의 하나라는 것도. 그때 찬란한 노랑 날개의 생명체가 기둥 주위를 나는데 자기를 알아보는 듯한 것을 느낀다. 그것이 나비이고 노랑 애벌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기둥을 내려온 줄무늬 애벌레는 지난날 노랑 애벌레와 지냈던 장소로 가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노랑나비가 자기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그에게 따라오라는 듯 행동했다. 노랑나비는 자기의 고치가 있는 곳으로 줄무늬 애벌레를 인도했고 줄무늬 애벌레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점점 어두워지자 두려웠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줄무늬 애벌레도 나비가 되었고 그들은 꽃들을 향해 날아간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는 변화는 단순히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질적인 변화이고 다른 차원의 삶을 사는 것이다. 애벌레들이 할 수 있는 포옹의 사랑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된다. 그런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고치 속에서 죽은 듯이 있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를 다 던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줄무늬 애벌레가 기둥을 내려가기로 결정하고 다른 애벌레들에게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알려주며 우리도 나비가 될 수 있다고 외칠 때, 다른 애벌레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대부분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어떤 애벌레는 “그건 여우의 신포도 같은 얘기야. 장담하지만 그는 꼭대기에 올라가 보지도 못했다구”라고 말하고, 몇몇 애벌레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고뇌에 찬 목소리로 “그것이 설령 사실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우리도 별 도리가 없잖아?”라고 한다. 이 말들은 먹고 자라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삶과 기둥을 오르고자 하는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고자 할 때 우리가 듣는 말이다. 반면에 가던 길을 돌이켜 자기 전부를 다 던지는 용기로 나비가 된 존재들이 우리에게 외치고 있다.      


  “우리는 날 수 있어. 우리는 나비가 될 수 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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