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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밤 Dec 20. 2024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하는 법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하는 법이지.”


이 말은 ‘사람은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경험해야 성장을 이룰 수 있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인생에서 돈을 많이 벌고, 명예를 얻는 것을 성공으로 여긴다면 되도록 큰물에서 노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누리고 있는 일상을 잘 챙기고자 마음먹은 제겐 다소 거리가 있는 말입니다.

『장자』 산목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장자가 조릉의 숲속을 거닐다가 괴이하게 큰 새가 저 멀리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날개의 길이가 사람의 키를 훌쩍 넘고 눈의 크기는 일 촌이나 되는데, 정신없이 장자의 이마를 스치고 밤나무 숲으로 날아가 앉았다. 장자는 새를 잡기 위해 조심히 다가가 활시위를 당긴 채 새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근처에서 한 마리 매미가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나뭇잎 뒤에 숨어 매미를 잡아먹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사마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사마귀를 노려보는 큰 새가 있었다. 매미, 사마귀, 큰 새는 서로 먹잇감을 보느라 자신의 상황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장자가 깨달은 바가 있어 활을 버리고 숲을 되돌아 나가는데, 밤나무 숲의 관리인이 남의 숲에 함부로 침입한 장자에게 소리를 치며 쫓아왔다. 장자는 집에 돌아와서 사흘 동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조릉의 숲에서 눈앞의 일에 매몰된 채 뒤를 보지 못하는 매미, 사마귀, 새, 그리고 장자를 보며 ‘큰물에서 놀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십수 년 전에 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에는 지구에 떨어진 오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룻밤 새 도심 한복판에 거대한 오물이 나타납니다. 그 냄새가 어찌나 심한지 국가기능이 마비될 정도였습니다. 모든 재원과 기술을 투입해 매끈한 원형 유리 틀 안에 오물을 가두자 냄새는 사라졌고, 사람들은 환호를 지르며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순식간에 거대한 유리구슬이 사라지고, 장면은 지구를 넘어 우주로 확장됩니다. 한 외계인이 지구에서 수거한 영롱한 빛깔의 유리구슬을 다른 외계인에게 보여주며 거래하는 장면으로 말이죠. 이야기 속에서 지구는 인고의 시간을 버티며 진주를 만드는 조개와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눈앞의 재앙을 해결하고 기뻐하느라 더 큰 재앙이 뒤따르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조릉의 숲에서 뒤를 보지 못하는 매미, 사마귀, 새, 장자와 같이 말입니다.

큰물에서 놀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에 가까워지는 발판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큰물에서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인생의 ‘성공’이 아니라, 눈앞 일에 매몰되지 않고 평온한 일상을 가꾸는 ‘지혜’입니다.

인생에서 너무 앞만 보며 내달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눈앞 일에 온통 정신을 뺏겨서도 안 됩니다. 때론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뒤에 두고 온 것은 없는지 살필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조릉의 숲에서 먹이사슬 속 누구 하나라도 심호흡 한 번으로 주위를 환기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겁니다.

일상에서 무언가에 매몰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지금보다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힘을 빼고 열중하지 않아야 큰물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이런 차이 하나가 목숨을 부지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를 만듭니다.

마흔 이후에는 큰물에서 놀고 싶습니다. 단순한 성공을 위해서가 아닌, 일상을 두루두루 살필 수 있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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