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싸움을 좋아하는 주나라 선왕이 싸움닭을 잘 훈련시키기로 이름난 기성자란 자를 불러 싸움닭을 훈련시키도록 명했다. 기성자가 닭을 훈련시킨지 열흘이 지나자 왕이 찾아와 물었다.
“이제 훈련이 다 되었는가?”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자기 기량만 믿고 사납게 날뜁니다.”
다시 열흘이 지난 후 왕이 찾아와 물었다.
“이제는 훈련이 다 되었는가?”
기성자가 다시 대답했다.
“아직도 멀었습니다. 다른 닭의 울음소리나 그림자만 봐도 흥분하여 달려들기에 바쁩니다.”
또 열흘이 지나 왕이 기성자를 찾아와 재차 물었다. 기성자가 답했다.
“아직입니다. 흥분하여 달려들지는 않지만 적을 노려보며 기운을 감추지 못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마침내 기성자가 왕에게 말했다.
“이제 훈련이 다 되었습니다. 상대가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어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습니다. 마치 나무로 만든 닭과 같아 다른 닭들이 그 모습에 겁을 먹고 도망칩니다. 이제 그 어떤 닭과 싸워도 이길 것입니다.”
『장자』 달생 편에 나오는 목계(木鷄) 이야기입니다.
감정이 고조된 상태로 어떤 일을 하다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정신없는 출근 준비 중에 눈앞의 스마트폰을 찾지 못해 당황한 경험이 있지 않나요? 여러 사람 앞에서 중요한 발표를 하다가 긴장한 나머지 숫자를 뒤죽박죽 읽기도 합니다. 또, 운동 경기 중에 자신에게 쏠린 이목에 과도하게 흥분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차분함을 잃는 순간, 지극히 간단한 일도 넘기 힘든 벽처럼 느껴집니다.
진정한 고수는 흥분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 채 상황을 두루 살핍니다. 때론 목계처럼 차가운 머리와 가슴을 지녀야 합니다. 혈기 왕성한 마흔은 더더욱 말입니다. 눈앞에 닥친 일을 열정적으로 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고수로 거듭나기 위해선 흥분을 가라앉히고 뒤로 물러서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한 발짝 물러남으로써 큰 도약을 위한 힘을 모으고, 안전하게 착지할 곳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기성자가 승률 100퍼센트를 장담하며 훈련시킨 싸움닭의 마지막 비기는 바로 침착함이었습니다. 차분함을 넘어 나무처럼 움직임조차 없는 경지. 그런데, 일단 목계를 따라 하기엔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게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 만나야 하는 사람 등. 의도적인 쉼 없이는 절대 목계를 따라 할 수 없습니다.
차분함을 유지하기 위해선 자신의 말버릇도 점검해 봐야 합니다.
“큰일났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작은 일, 큰일 구분 없이 습관적으로 “큰일났다.”를 연신 읊조렸습니다. 자기 입에서 튀어나온 그 말은 마법의 주문처럼 모든 일을 수렁에 빠뜨렸습니다. 목계는커녕 쉴 새 없이 잔발을 떠는 정신 사나운 닭이 되고 만 것입니다.
장자를 만난 이후로 어떤 일이 닥치든 “큰일났다.”라는 말을 내뱉는 대신 “음”하고 짧은 탄성을 지릅니다. 그러자 눈앞에 가지런히 놓인 스마트폰이 보이고, 보고서에 또렷이 찍혀 있는 숫자가 보이고, 수 없이 연습한 테니스 포핸드 스트로크를 날릴 수 있게 됩니다.
오늘도 그렇게 마음의 일렁임을 멈추고, 목계처럼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