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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밤 Dec 23. 2024

꽃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방법

눈앞의 사물이나 현상은 진짜일 수도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은 실은 겉모습만 그럴싸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 진위를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한 입 베어 물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온도를 알 수 없는 유리잔 속 음료수도 한 모금 들이켜면 차가운지 따뜻한지 금세 체감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진위를 확인하는 저마다의 직관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장자』 제물론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남곽자기가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형태마저 있은 듯했다. 안성자유가 시중을 들며 그 앞에 서 있다가 말했다.
“어찌 그러하십니까? 지금 모습은 마치 나무와 같고, 마음도 불 꺼진 재와 같습니다. 오늘은 평소와 다른 모습이군요?”
남곽자기가 말했다.
“자유야, 지금 내가 자신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 너는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들었겠지만, 땅이 내는 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이야. 땅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해도 하늘이 내는 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이고.”

장자는 사람이 들어야 하는 소리를 ‘사람의 소리’, ‘땅의 소리’. 그리고 가장 높은 경지인 ‘하늘의 소리’로 구분합니다.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하늘의 소리’를 말 그대로 해석해 우주 만물의 근원인 ‘자연의 소리’로 이해해 봅니다. 사람의 해석이나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지지 않은 순수한 자연이 내는 소리라고 말입니다.

하루는 아이와 식당에 들렀습니다. 아기자기한 장식이 적절하게 배치된 분위기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자리를 잡은 테이블 위에는 작은 꽃병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꽃병에는 이름 모를 꽃 한 송이가 꽂혀 있었습니다. 우리 둘은 말없이 예쁜 꽃을 바라보았습니다. 서로의 짧은 감상이 끝난 뒤,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채원아, 꽃이 참 예쁘네. 그런데 이 꽃은 진짜 꽃일까?”

나의 물음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때론, 꽃이 시드는 걸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꽃이랑 똑같이 생긴 모형을 만들어서 꽂아두기도 하거든.”

그제야 아이는 아빠인 나의 물음을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그럼,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네.”

아이는 말을 마치자마자, 꽃이 살아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습니다. 아마도, 꽃을 향해 손을 뻗어 꽃잎의 살아있는 촉감을 느끼려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꽃을 향해 손을 뻗는 대신 얼굴을 바짝 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습니다. 입은 닫고 오로지 코로만 말입니다.

“아빠, 이 꽃 진짜 꽃이야! 향기가 너무 좋아.”

그랬습니다. 아이는 꽃의 생명력을 향기로 확인했습니다. 어쩌면 꽃은 자신의 살아있음을 향기로 느끼고 기뻐해 준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여느 꽃이라면 자신의 아름다움을 색과 모양뿐만 아니라, 고유의 향기로 세상에 전하고 싶었을 겁니다.

장자가 말한 ’하늘의 소리‘는 거창한 그 무언가가 아닌, 꽃의 향기에 반응하는 아이의 순수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눈을 감고 꽃향기를 맡는 아이는 자연과 소통하며 자신의 존재를 잊고 있었습니다.


눈길을 끄는 아름다움을 때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확인해 보면 어떨까요? 나이를 먹어가며 ’사람의 소리‘만 들으려고 하는 건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이 ‘진짜’가 아닙니다. 오히려 겉만 번지르르한 것은 남의 이목을 끌기 위한 ‘가짜’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땐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켜 고유의 향기를 느껴봅니다. 은은하고 깊은 향이 코끝에 전해진다면 그것은 분명 ‘진짜’일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마흔에는 눈을 감고 꽃향기를 맡듯 ‘하늘의 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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