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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밤 Dec 23. 2024

발에 꼭 맞는 신발은 자주 닦아주어야 한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입니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10여 분을 주행하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 내가 언제 여기까지 왔지? 아침에 일어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출근하는 차 안이네.’

반복되는 일상을 기계적으로 겪다 보면, 특정 순간들이 마치 기억에서 사라진 듯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불안 요소 없이 편안하게만 흘러간다면 더더욱 생략가능한 루틴이 됩니다.

『장자』 달생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신발이 편하면 발을 잊게 된다. 허리띠가 편하면 허리를 잊게 된다. 마음이 편하면 옳고 그름을 잊게 된다. 안으로는 마음이 변하지 않고 밖으로는 외물을 따르지 않는 것은 일을 이해함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비롯됨이 적절할 때 적절하지 않음이 없는 것은 적절함을 잊을 만큼 적절하기 때문이다.”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으면 발에 신경 쓸 일이 없습니다. 허리 사이즈에 알맞은 허리띠를 매면 허리띠의 존재 자체를 잊습니다. 그런데 발 크기보다 너무 작거나 큰 신발을 신으면 한 걸음 한 걸음이 신경을 거스릅니다. 또, 알맞지 않은 허리띠는 옷매무시를 정리해 해주기는커녕 당장이라도 풀어버려야 하는 쓸모없는 물건일 뿐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무탈한 출근길은 마치 발에 꼭 맞는 신발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덧 속도를 내 달리는 차 안입니다. 그런데 만약, 차의 배터리가 방전된다거나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다 접촉 사고가 난다거나, 하다못해 지난 밤새 눈에 띄는 문콕 사고를 당했다면 잊었던 ‘출근 루틴’은 생생한 현실이 됩니다.

주변의 인간관계에서도 꼭 맞는 신발과도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항상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부모님, 한결같은 마음으로 가족을 위하는 아내, 늘 명랑한 딸아이, 언제 연락해도 마음 편안한 친구. 때론 내 마음과 그들의 마음이 꼭 맞다고 착각하며 그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잊고 살아갑니다.

장자는 알맞음이 주변에 넘쳐날 때 마음의 근심이 사라지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익숙함이 경지를 넘어서 그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다면 처음의 설렘과 소중함을 마음에 간직하는 일이 쉽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발에 꼭 맞는 소중한 신발은 자주 들여다보고 닦아주어야겠다’라고 말입니다. 나에게 꼭 맞는 존재들은 평생을 두고 그 은혜를 갚아야 할 소중한 관계입니다. 그들의 안부를 묻고, 그들에게도 나의 존재가 꼭 맞는 신발인지 생각해 봅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은 여느 날과 다른 루틴입니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다 작은 접촉 사고가 있었습니다. 잊고 있던 출근길은 급히 보험회사를 부르고, 사고 현장 사진을 찍고, 상대 차주와 연락처를 주고받는 일로 정신없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작은 사고가 도움이 된 덕분에 보험회사에는 어떤 정보를 주어야 하는지, 현장에서 대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상대 차주와는 어떤 얘기를 해야 하는지를 알았으니 말입니다. 일상을 단단히 챙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유용한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발에 꼭 맞는 신발은 꼭 맞는 대로, 작은 신발은 작은 대로, 큰 신발은 큰 대로 괜찮습니다. 어떤 신발이든 내가 필요해서 내 마음에 들인 신발이기 때문입니다. 그 신발들을 하나씩 꺼내 자주 들여다보고 닦아줍니다. 그리고 내 마음의 모양을 잘 다듬어 신발 하나하나를 맞춰 신을 수 있는 날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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