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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밤 May 04. 2023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는 삶

수십 년이 지난 중학교 졸업앨범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름 한껏 멋을 부린다고 부린 모습들이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존재감이 없고 평범해 보였던 몇몇 친구들의 모습이 지금의 제 눈엔 더욱 자연스럽고 예쁘게 보입니다. ‘그땐 그렇게 평범했는데 지금은 왜 그럴까?’라고 자문해 봅니다.

<장자> 속에는 지리소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날 초(楚) 나라에 지리소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긴 목 위에 조롱박과 같은 머리가 붙어 있고 턱이 배꼽에 닿았으며 양쪽 어깨는 정수리보다 높이 솟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옆구리가 허벅지에 닿을 만큼 곱사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처참한 용모에도 불구하고 지리소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늘 긍정적인 자세로 살았습니다.

전쟁이 일어나 젊은 장병들의 강제징집이 있을 때, 징집에서 제외된 지리소는 오히려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습니다. 또 각종 부역에도 면제되었고, 해마다 구휼제도의 혜택으로 쌀이며 땔감을 넉넉하게 제공받았습니다. 그리고 남의 옷을 빨아주거나 바느질을 하는 등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하며 천수를 누립니다.

자신의 타고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TV나 SNS 속에 넘쳐나는 만들어진 아름다움을 따라 하며 정작 타고난 자신의 모습은 바라보지 못합니다. 각종 비교로 점철된 요즘 같은 시대에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며 살아가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지리소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았습니다. 타고난 모습을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삶에 긍정의 기운이 넘쳐났고 인생은 술술 풀려갔습니다.

<장자>에 나오는 혼돈(渾沌)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남해의 제왕은 ‘숙’이고 북해의 제왕은 ‘홀’, 그리고 중앙의 제왕은 ‘혼돈’입니다. ‘혼돈’은 인간이라면 응답 있어야 할 얼굴의 7개 구멍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숙’과 ‘홀’은 ‘혼돈’의 영역을 찾아 때때로 쉬곤 했는데, 그때마다 ‘혼돈’은 최선을 다해 그 둘을 맞이했습니다. ‘숙’과 ‘홀’은 ‘혼돈’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이렇게 논의합니다. “혼돈에게 하루에 한 구멍씩 뚫어주어 보고 듣고 먹고 숨 쉬게 해 줍시다.” 그렇게 혼돈에게 하루에 한 구멍씩 뚫어주니 칠일 만에 혼돈은 죽어버렸습니다.

‘혼돈’은 얼굴에 7개의 구멍이 없는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럼 그 모습이 타고난 본연의 모습인 것입니다. ‘혼돈’은 자신의 땅을 찾아오는 ‘숙’과 ‘홀’을 기꺼이 환대하는데, 보통 이런 열린 자세는 자신의 참모습을 부정하는 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삶의 태도입니다. 즉, 그는 7개의 구멍이 없을지라도 ‘숙’과 ‘홀’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7개의 구멍을 뚫는 행위는 도리어 독이 되었고, 그는 7일째 되는 날 죽고 맙니다.

다시 중학교 앨범을 들여다봅니다.

차분하고 자연스러운 머리 모양, 적당히 여유 있는 교복 매무새, 예쁘게 보이는 학생들은 모두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즉,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사회가 만들어 놓은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지라도 본연의 아름다움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꾸미지 않은 그 모습이 정작 자신을 가장 잘 꾸미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라는 말에 ‘그럼 발전 없이 도태되는 삶을 살란 말인가?’라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의 가장 중요한 선제조건은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자신을 아는 것’은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큰 화두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얻고자 한 지혜입니다. 자신을 제대로 알게 되면 자신의 장점과 단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기쁨을 느끼는 이유, 행복의 근원 등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런 것들을 찾아 매 순간 노력하게 되고 삶은 자연스레 윤택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참 의미의 자기 계발입니다. 먼저 자신을 아는 것에서 시작해 자신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정진해 나아가는 것! <장자> 속 지리소처럼 인생이 잘 풀리는 비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듯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이야말로 인생을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자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길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니 늘 생각의 중심을 ‘나’로 두고 거기에서 발산되는 긍정적인 기운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인생이 저절로 풀리는 신비한 기운은 이미 당신 안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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