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지 않는 자세
자공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는 현명한가 보구나! 도대체 나는 그럴 겨를이 없는데.”
子貢方人, 子曰, “賜也賢乎哉! 夫我則不暇.”
자공방인, 자왈, “사야현호재! 부아즉불가.”
『논어』 「헌문」
누군가의 생각에 반대 의견을 내는 것만으로도 마치 자신이 우위에 선 듯한 착각이 든다. 이것이 남을 비판하는 일에 약간의 희열이 따르는 이유이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라는 식의 말은 곧 비판의 기조를 이룬다. 하지만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다.
두 사람이 양쪽 눈동자의 색이 다른 고양이를 양옆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한 사람은 고양이를 바라보며 ‘붉은 눈동자가 강렬하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순간, 맞은 편의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고양이의 푸른빛 눈동자가 신비롭다.”
그 말을 듣고 고양이의 붉은 눈동자 편에 섰던 사람은 실소를 날리며 말한다.
“이런, 당신은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군요.”
그렇게 두 사람은 언성을 높이며 서로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은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상대가 보는 데서 비롯되는 착각이다. 공자는 제자인 자공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을 보고 “너는 현명한가 보구나! 도대체 나는 그럴 겨를이 없는데.”라고 말한다. 공자는 어리석은 말을 쏟는 제자에게 오히려 현명하다고 말하며 스스로 깨치기를 바랐던 것이다. 공자에게 ‘남을 비판하기 위해 잠시 멈춰 서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삶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은 세상 만물이 상대성에 의해 존재함을 알고 저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누군가의 생각을 비판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자기 생각과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만약 상대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자신의 앎이 어설프다는 방증이다. 생각의 깊이를 더해서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고 절대적으로 그른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비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모진 사람이라도 곁에 두고 아우를 수 있다. 만약 삶에서 극심한 의견 차이를 보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생각을 곱씹기보다 자기의 관점을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상대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마음에 들끓는 화를 삭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진실로 믿는 태도는 수시로 발걸음을 멈춰 세워 비판의 말을 쏟게 만든다. 이는 곧 공자가 말하는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다. 그러니 당신이 바라보는 고양이의 눈동자 색을 ‘빨갛다’, 혹은 ‘파랗다’라고 단정 짓지 말라. 그래야 비로소 푸른빛과 붉은빛의 눈동자가 공존하는 고양이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