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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밤 May 20. 2023

윽, 이 냄새는? 괜찮아, 곧 적응하잖아.

싫은 것도 좋은 것도 무뎌지는 법

직장 근처에 밭 몇 필지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데 지독한 거름냄새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 냄새가 어찌나 심한지 두통까지 올 지경입니다. 오전 내내 인상을 찌푸리며 일하다가 퇴근 무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통스러운 오전의 기억은 사라지고 평소와 다름없는 무난한 퇴근길임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새 코가 거름냄새에 적응한 겁니다.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냄새도 반나절 만에 무취가 되어버렸습니다.

얼마 전 여행길에 향수 하나를 샀습니다. 평소 로션도 바르지 않았던 터라 향수를 뿌리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며칠을 열심히 뿌려봅니다. 최대한 저자극의 은은한 향수로 골랐지만 막상 몸에 뿌리니 그 냄새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특정 몸짓에 순간순간 느껴지는 향수냄새가 ‘아, 나 향수 뿌렸지’라는 자각을 하게 해 줍니다. 며칠 동안은 향수냄새가 느껴져 아침마다 향수를 뿌리는 행위를 잊지 않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딱 3일이었습니다. 이제는 생활 속에서 향수를 뿌렸다는 자각을 일깨워줄 ‘향수냄새’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새 코가 또 적응한 겁니다. 그 향수는 거의 새것으로 지금까지 화장대에 놓여 있습니다.

인간의 적응력은 냄새뿐만 아니라 생활 모든 면에서 대단한 힘을 발휘합니다. 처음에는 힘들었던 일도 적응기를 지나면 심지어 지루하게 느껴지니 말이죠. 이런 적응력을 일상 곳곳에 적절히 심어둔다면 삶이 얼마나 편해질까요? 하지만 적응에 따른 무뎌짐은 좋아하는 것에서도 똑같이 작용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소중한 것일수록 늘 새로운 면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소중함의 이유를 마음속에 되새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그것들이 익숙함이라는 그늘에 가려지지 않게 말이죠.

아침에 일어나 아내와 딸아이를 바라봅니다. 오늘은 아내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려봅니다. ‘아,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이구나’ 그날의 기억이 따스한 햇살이 되어 익숙함이라는 그늘을 거둬들입니다. 오늘 하루 아내를 대하는 나의 몸짓과 표정, 말투가 다르리라 짐작해 봅니다. 그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딸아이는 매일이 새로움의 연속이라 익숙함이 조금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것에는 되도록 적응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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